90년생이 온다 - 간단함, 병맛, 솔직함으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임홍택 지음 / 웨일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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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범죄인 인도법 반대로 홍콩에서는 연일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다. '시위의 주역...홍콩에도 90년 대생이 온다'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홍콩 시위대를 구성하는 연령 중에 10~20대가 절반을 넘는다는 내용이었다. 198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가 시위를 이끌면서 변화의 바람을 이끌어 내고 있다는 내용을 읽으며 뭉클했다. 기존의 낡은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바라는 열망이 그곳에 모이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하려고 했었고 성공 했었던 시도였다. 멀리서나마 응원과 지지의 마음을 보낸다. 임홍택의 『90년생이 온다』에서도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90년 생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90년생이 가지는 사고방식과 생활 패턴을 쉬운 언어로 분석한다. 그들이 쓰는 언어와 기존 질서를 바꾸려는 시도, 소비 세대로서 호갱이 되지 않으려는 모습이 담겨 있다.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모험 보다 안정된 생활을 추구하려는 것으로 보이는 그들의 속내를 탐구한다.

그들은 새로운 기술에 저항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와 모바일 기계를 능숙하게 다루었다. 생각도 간단하게 그러나 유머는 잃지 않으면서 영리하게 살아가기를 꿈꾼다. 어른들이 물려주지 못한 안정됨을 꿈꾸기보다 스스로 안정을 찾기를 원한다. 드립력을 가지면서 병맛 문화를 추구하며 팍팍한 현실을 살아간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소비 세대로서 90년 생들의 활약이다.

호갱이 되지 않기 위해 인터넷의 바다에서 정보를 찾고 윤리적인 기업의 물건을 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정보를 받아들이는 일방적인 주체가 아닌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능동적인 소비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기업은 90년생을 직원으로 받아들일 때와 소비자로서의 면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밝힌다. 회사에 충성하며 헌신하며 헌신이 되어가는 세대가 아니다. 광고를 보고 현혹되어 그것만을 사는 충성 고객의 세대도 아니다, 90년생은.

『90년생이 온다』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시대의 흐름을 이끌어 가야 할 90년생의 마음의 지형이 어떤 모습인지 알려준다. 우리가 함께 이룩해낸 새 시대는 어리다고 꼰대처럼 가르치려던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책에도 나오지만 우리는 모두 꼰대이거나 미래의 꼰대이다(꼰대 테스트라는 것이 있는데 몇몇 항목에 예를 해버렸다). '얘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라는 마음으로 쓴 책은 '얘네 이런 생각을 하네'라는 공감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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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여름 2019 소설 보다
우다영.이민진.정영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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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 보다 여름 2019』에 실린 세 편의 소설은 '시간'을 연결어로 읽을 수 있다. 과거를 들여다보며 이곳의 시간이 현재인지를 가늠해 보는 소설 우다영의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을 시작으로 「RE:」에서 이민진은 소설을 쓰려는 미래를 계획해 본다. 정영수의 「내일의 연인들」은 과거의 연인과 지금의 연인들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애를 쓴다.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도 문득 이곳의 나는 실제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살아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나는 죽은 상태로 과거에서 온 시간 여행자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소설은 현실이라는 세계를 떠도는 유령들의 말잔치 일지도 모르겠다. 이곳의 나는 죽었다.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환생을 꿈꾸며 사라진 고대의 언어로 문장을 적어 가는 것이다. 소설은 이제 아무도 읽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누가 소설을 읽나. 죽은 몸으로 시간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그들만이 남아 이 세계를 기억하려 한다.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은 삶은 사는 것이 아닌 꿈이었을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과거를 떠올리며 여행하는 화자를 통해 이 세계는 다른 동굴로 잘못 들어와 버린 다른 세계라고 말한다.

죽은 자의 메일함에서 보내온 편지를 받고 과거를 회상하는 이민진의 「RE:」의 시간은 이질적이다. 우리가 보낸 시절은 존재하는가. 『소설 보다 여름 2019』에 실린 소설을 읽고 나면 의문과 추측으로 시작하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소설의 임무는 기존의 질서에 길들여진 우리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정영수의 소설 「내일의 연인들」의 마지막은 쓸쓸하다. 이혼한 아는 누나의 집에 한동안 살면서 현재의 연인 관계를 유지하려 하지만 그마저도 불안하다.

현실은 고통으로 들어차 있지만 내일은 좀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낙관으로 소설은 쓰인다. 다행히 우리는 죽지 않았음을 소설로써 확인받는다. 계절별로 나오는 『소설 보다』 시리즈를 읽고 나면 이 계절을 열심히 살아냈구나, 안심이 된다. 살아 있고 살아가리라는 다짐을 해본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떠났고 나만 남아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여름, 이 계절의 소설'이라는 제목으로 보내온 편지 같은 소설을 읽으며 가능하지 않은 미래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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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의 내 삶은 형편없었다
임승훈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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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요즘엔 가끔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가끔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게 그것 말고도 생각할 게 많기 때문이다.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것들. 돌아오는 날짜에 맞춰 준비해야 하는 것. 이것저것 빼고 더하고 해도 늘 0이 되고야 마는 절댓값이 찍히는 통장을 보고 있으면 한숨 내지는 두 숨, 세 숨 그러다 심호흡. 이렇게 쓰고 보니까 나는 하루를 온전히 그것만 생각하는 것 같아 우울해지다가도 이러면 안 돼 다시 명랑해져야지 하고 감정을 다스리는 척하고야 만다.

황정은의 단편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에는 누구도 죽지 않는 이야기가 나오는 소설을 쓰겠다는 주인공이 나온다. 그이의 심정을 이해할만한 것이 소설도 그렇고 현실에도 죽음이 도처에 널려 있기에 자주 침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고를 당하고 병에 걸리고 황당한 일에 휘말려 결국에는 죽음으로 간다. 죽으면 끝이야라는 체념과 죽으면 죽은 이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으로 남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하고 의문을 가져보기도 한다.

임승훈은 「이서진을 닮은 탐정-새가 된 아내」에서 죽음의 상징을 '새'로 보여준다. 소설가의 이름과도 같은 주인공 승훈은 자신이 이서진을 닮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만나는 이들에게 이서진을 닮았다고 한 번씩 말할 정도이다. 당신 누구를 닮았는데 하면 네 맞습니다, 저는 이서진을 닮았습니다 하는 식으로. 이서진을 닮은 탐정 승훈에게 한 사내가 찾아온다. 새로 변신한 아내를 찾아달라는 황당한 의뢰를 한다. 아내는 아내인데 그 아내가 새로 변신해서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온갖 사람들이 찾아와 이상한 의뢰를 하고 그걸 받아들이는 게 일이기에 승훈은 새를 찾는 일에 착수한다. 자본주의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답게 의뢰 비용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사내의 집에 방문해 사진과 아내로 추정되는 새의 깃털을 가지고 나온다. 마지막으로 아내를 그러니까 새를 목격한 이웃의 집을 사내는 알려준다. 승훈은 골목과 골목 사이를 돌아 새를 목격한 이들을 찾아 나선다. 그곳에서 사내와 아내와 새에 관한 진실의 조각을 모은다. 「이서진을 닮은 탐정-새가 된 아내」는 쓸쓸한 소설이다.

사건을 따라가다 만나는 진실의 무게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야 만다. 사내의 폭행에 시달리는 아내는 죽어 버렸다. 그녀는 죽어서도 이곳에 남고 싶어 했다. 파랑새가 되어 생전에 자신에게 친밀하게 대했던 이들에게 나타난다. 결국 죽어서까지 아내를 놓지 못한 남편에게 잡힌다. 임승훈은 무엇이든 찾아내는 게 직업인 탐정을 등장시켜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가치를 찾아내는 임무를 부여한다. 찾아냈다고 하지만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진실이었다. 슬픔이었다.

파랑새를 찾아다니는 이서진을 닮은 탐정 승훈은 진실을 알아갈수록 진실은 어디에도 없음을 깨닫는다. 자신이 찾아다니는 진실이란 한낱 종잇조각에 적어 놓은 메모에 불과한 것이었다. 낱말과 낱말 사이에 숨겨진 의미를 찾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사건은 벌어졌고 누군가는 죽었다. 살아 있는 자는 죽음의 의미를 캐고 단서를 찾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보내줘야 하는 것이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마음 아픈 의문 따위를 갖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임승훈은 승훈을 빌어 「이서진을 닮은 탐정-새가 된 아내」에서 한 사람의 죽음 뒤에 남겨진 의미를 파악하려고 한다. 삶에서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 용서, 만남, 기쁨의 순간에 가질 수 있는 '마음'을 생각하면서. 좁은 빌라에 갇혀 살다시피 한 사내의 아내는 '그녀'가 되어 떠나간다. 자주 돈에 대해만 생각하다가도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흐름 때문에 죽음을 떠올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죽을 수 없는 나라가 있다면 어떨까 하다가도 그건 소설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임을 상기한다.

죽음이 있어서 겸손해지고 가끔 마음이 아플 수도 있다. 죽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을 읽으며 지구에서의 삶이 그럭저럭 괜찮은 것임을 우주로 돌아간 이들에게 쏘아 보낸다.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곧 알게 될거면서.
그런가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아직 읽어야 할 책이 많아서 나중에 갈게요. 「이서진을 닮은 탐정-새가 된 아내」를 읽고나니 『지구에서의 내 삶은 형편없었다』의 다른 이야기가 궁금해졌어요.
그러든지, 알아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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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사람
윤성희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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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의 소설은 문단을 잘 나누지 않는 형태이다. 대화도 문장 안으로 집어넣는다. 책을 펼치면 빽빽하다. 그럼에도 읽기 어렵지 않다. 술술 읽어 나갈 수 있는 이야기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사연을 넣어서 쓴 소설은 작위적이지 않으며 억지로 슬픔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이번에 나온 장편 소설 『상냥한 사람』을 꼭 읽어보시라. 실패와 좌절, 죽음의 이야기가 뭉쳐 있지만 살아갈 수 있다는 작은 용기가 솟아오른다.

어린 시절 엄마 가게에 찾아온 드라마 프로듀서의 눈에 띄어 아역 배우가 된 형민이 주인공이다. 드라마 속 이름인 진구로 한동안 살았다. 드라마가 끝나도 사람들은 형민이라는 이름 대신에 진구라고 불렀다. 그게 싫기도 하고 좋기도 했다. 진구라고 더 이상 불리지 않게 될 때는 서운하기까지 했다. 자신을 잊어가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상냥한 사람』의 줄거리를 옮기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소설 안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 즉 사연들이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사연이 모여 소설을 이룬다.

주로 사고와 죽음의 순간을 이야기한다. 행복해지기 위해 살아가지만 예고 없이 찾아오는 사고의 순간에는 어쩌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 때가 있다. 어떻게 이겨 내야 할까. 『상냥한 사람』의 인물들은 주로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쪽을 선택한다. 그때 어떻게 했더라면으로 시작하는 무수한 가정법을 실행하지 않는다. 뒤늦은 후회가 밀려들기도 하지만 이제는 다 잊었다는 듯이 살아간다. 살아가는 동안 선택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상냥한 사람』은 선택에 대한 책임을 말하는 소설이다.

형민이라는 이름 대신 진구로 살아간 그때를 회상하며 시작하는 소설은 이야기와 이야기를 무수히 나열해 놓는다. 《인간극장》에 등장하는 우리 이웃이 경험했을 과거를 풀어 놓는다. 세상에 무슨 그런 일이 있나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저 그 이야기 안에는 언젠가 내가 겪었을 시절이 담겨 있어 책을 읽다 말고 과거 속으로 역행해 들어간다. 사람에게는 한 번의 삶 밖에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하면 야박하게 느껴진다. 『상냥한 사람』은 나에게 두 번의 삶이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상냥한 사람』은 인물의 이름에 대한 사연을 많이 소개한다. 마치 이름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존재하기도 하는 것처럼. 사고를 당하고 불운이 닥치는 것이 이름 때문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남은 생을 쉽게 버틸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하는 것이다. 누구를 탓해야 하나. 나에게 닥친 슬픔의 원인을 찾다가 이름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그렇게라도 해야 타인에게 '상냥한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다. 상실을 경험한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소설 『상냥한 사람』.

소설을 읽을 때 천천히 읽었다. 기구한 자신의 삶을 담담히 말하는 것이 애써 슬픔을 눌러 보려는 움직임이 너무 빨리 지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이야기를 천천히 들어주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살다 보니 의외로 사람들은 상냥하지 않았다. 상냥한 척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다. 상냥함이란 대놓고 드러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것. 이름을 자주 불러주며 살아가는 것. 이 세계가 내게 부여한 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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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구 - 로마의 열병 / 다른 두 사람 / 에이프릴 샤워 얼리퍼플오키드 2
이디스 워튼 지음, 이리나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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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스 워튼의 단편집 『징구』에 실린 네 편의 소설을 읽다 보면 깜짝 놀라고야 만다. 소설이 쓰인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 년 전이다. 시간과 장소를 그대로 두고 인물들을 지금으로 데리고 와도 전혀 위화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소설은 현대적이다. 그들이 겪는 상황과 마음 상태는 이 시대를 사는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 정도의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고전을 읽는 이유 중에 하나는 시간이 지나도 인간이 겪는 마음 상태는 비슷하므로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어머, 이건 내 이야기 아닌가. 내가 그때 느낀 그 감정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징구』를 읽어 나갔다. 먼저 첫 번째 소설 「징구」는 한 번쯤 경험해봤을 허세와 잘난 척 끝에 남는 쓸쓸함을 위트 있게 그려낸다. 당신이 여자들이라고 말할 때는 그 말에 어떤 감정이 실려 있는가. 뭉뚱그려 성격을 특정 짓고 행동을 규정하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이디스 워튼은 여자이자 소설가로서 여자들이 가지는 그들만의 특별함을 「징구」에서 풍자한다. 한 가지 주제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북클럽에서 은근히 따돌리고 무시하는 여인에게서 한 방 얻어맞는 여자들의 허무한 저녁 풍경을 묘사한다.

「로마의 열병」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무시무시한 여자들의 질투 섞인 과거사 폭로는 소설의 마지막에 가서야 대미를 장식한다. 누구의 승리라고도 볼 수 없는 것이 그녀들은 이미 상처받을 대로 받고야 말았다는 것이다.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생각뿐이었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대결은 치사하고 굴욕으로 삶에 오점을 남긴다. 「로마의 열병」은 텔레비전을 틀면 이른 아침부터 나오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요소를 갖추고 있다.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 아님을 두 친구, 슬레이드와 앤슬리를 통해 보여준다.

한 여자의 세 번째 남편이 된 화자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한 「다른 두 사람」은 이해에 대한 소설이다. 여자와 남자를 떠나서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온 마음과 열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앨리스의 존재로 형상화 한다. 사람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살아가는 대신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대할 것을 강조한다. 부인의 전 남편들과 한자리에 만나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어쩐지 그들은 친구까지는 아니지만 얼굴을 붉히거나 오해를 하는 일 없이 남은 생을 살아나가리라는 희망적인 결말이 예측된다.

「에이프릴 샤워」는 요즘 말로 말하면 핵공감이 되었던 소설이다. 안타깝지만 사랑스럽고 응원해주고 싶은 주인공 테오도라에게 무한정 감정 이입이 되었다. 아픈 어머니 대신 집안일을 책임져야 하고 그럼에도 소설을 쓰고 싶어 결국 완성한 테오도라. 출판 기회를 얻기 위해 예쁘게 리본을 묶어서 소설을 보낸다. 이후에 일어난 일은 읽어 보시길. 그녀와 나의 앞날에 응원을.

시대적인 몇몇 장치(당대를 알 수 있는 작품, 고유 명사)만 빼놓고 본다면 네 편의 소설은 지금 쓰였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현실적이다. 오래전부터 소설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현재를 이야기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일을 해오고 있었다. 언어와 시간이 달라서 이곳에 도착하지 못한 소설이 있을 뿐이다. 이디스 워튼의 『징구』는 무사히 이곳에 도착했다. 2019년 한국으로 날아온 『징구』는 우리가 왜 주체적이고 역동적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나직이 말해준다. 목소리를 내고 잘못을 직시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징구』의 문장은 솔직하고 위선을 드러내는 데에 거침이 없다. 잘못을 숨기지 않고 허위를 드러내면서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징구』는 관계를 말하는 소설이다. 인간과 사회를 이루는 관계에서 늘 긴장하고 있는 당신에게 최적의 소설이다. 단편의 묘미와 이야기의 반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징구』의 세계로 초대한다. 『징구』, 아시죠? 모르신다고요? 어머머, 어떡해. 그럼 우리 같이 『징구』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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