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징구 - 로마의 열병 / 다른 두 사람 / 에이프릴 샤워 ㅣ 얼리퍼플오키드 2
이디스 워튼 지음, 이리나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9년 7월
평점 :





이디스 워튼의 단편집 『징구』에 실린 네 편의 소설을 읽다 보면 깜짝 놀라고야 만다. 소설이 쓰인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 년 전이다. 시간과 장소를 그대로 두고 인물들을 지금으로 데리고 와도 전혀 위화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소설은 현대적이다. 그들이 겪는 상황과 마음 상태는 이 시대를 사는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 정도의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고전을 읽는 이유 중에 하나는 시간이 지나도 인간이 겪는 마음 상태는 비슷하므로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어머, 이건 내 이야기 아닌가. 내가 그때 느낀 그 감정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징구』를 읽어 나갔다. 먼저 첫 번째 소설 「징구」는 한 번쯤 경험해봤을 허세와 잘난 척 끝에 남는 쓸쓸함을 위트 있게 그려낸다. 당신이 여자들이라고 말할 때는 그 말에 어떤 감정이 실려 있는가. 뭉뚱그려 성격을 특정 짓고 행동을 규정하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이디스 워튼은 여자이자 소설가로서 여자들이 가지는 그들만의 특별함을 「징구」에서 풍자한다. 한 가지 주제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북클럽에서 은근히 따돌리고 무시하는 여인에게서 한 방 얻어맞는 여자들의 허무한 저녁 풍경을 묘사한다.
「로마의 열병」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무시무시한 여자들의 질투 섞인 과거사 폭로는 소설의 마지막에 가서야 대미를 장식한다. 누구의 승리라고도 볼 수 없는 것이 그녀들은 이미 상처받을 대로 받고야 말았다는 것이다.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생각뿐이었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대결은 치사하고 굴욕으로 삶에 오점을 남긴다. 「로마의 열병」은 텔레비전을 틀면 이른 아침부터 나오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요소를 갖추고 있다.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 아님을 두 친구, 슬레이드와 앤슬리를 통해 보여준다.
한 여자의 세 번째 남편이 된 화자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한 「다른 두 사람」은 이해에 대한 소설이다. 여자와 남자를 떠나서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온 마음과 열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앨리스의 존재로 형상화 한다. 사람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살아가는 대신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대할 것을 강조한다. 부인의 전 남편들과 한자리에 만나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어쩐지 그들은 친구까지는 아니지만 얼굴을 붉히거나 오해를 하는 일 없이 남은 생을 살아나가리라는 희망적인 결말이 예측된다.
「에이프릴 샤워」는 요즘 말로 말하면 핵공감이 되었던 소설이다. 안타깝지만 사랑스럽고 응원해주고 싶은 주인공 테오도라에게 무한정 감정 이입이 되었다. 아픈 어머니 대신 집안일을 책임져야 하고 그럼에도 소설을 쓰고 싶어 결국 완성한 테오도라. 출판 기회를 얻기 위해 예쁘게 리본을 묶어서 소설을 보낸다. 이후에 일어난 일은 읽어 보시길. 그녀와 나의 앞날에 응원을.
시대적인 몇몇 장치(당대를 알 수 있는 작품, 고유 명사)만 빼놓고 본다면 네 편의 소설은 지금 쓰였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현실적이다. 오래전부터 소설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현재를 이야기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일을 해오고 있었다. 언어와 시간이 달라서 이곳에 도착하지 못한 소설이 있을 뿐이다. 이디스 워튼의 『징구』는 무사히 이곳에 도착했다. 2019년 한국으로 날아온 『징구』는 우리가 왜 주체적이고 역동적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나직이 말해준다. 목소리를 내고 잘못을 직시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징구』의 문장은 솔직하고 위선을 드러내는 데에 거침이 없다. 잘못을 숨기지 않고 허위를 드러내면서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징구』는 관계를 말하는 소설이다. 인간과 사회를 이루는 관계에서 늘 긴장하고 있는 당신에게 최적의 소설이다. 단편의 묘미와 이야기의 반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징구』의 세계로 초대한다. 『징구』, 아시죠? 모르신다고요? 어머머, 어떡해. 그럼 우리 같이 『징구』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