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일본산고(日本散考)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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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대 11년간을 서울에서 살았고 진짜 콜론(식민자)의 아들이었다고 말하는 다나카 씨는 그 시절에 대한 짙은 향수를 토로하고 있는데, 특히 독립운동가, 그 시대의 독립정신에 대해서는 감탄과 외경의 염(念)까지 느꼈다고 했는데, 일본 특유의 그런 감상은 상당히 메스껍다.
그는 말했다. 그 시절이 좋았다고, 그 시절의 민족정신은 고귀하고 긴장되고 아름다웠다고. 한데 지금은 뭐냐, 그렇게 그는 말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도 그 시절의 비극을 가슴 아프게 아름다운 것으로 회상한다. 그러나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돌아가고 싶은 것은 "천만의 말씀!"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우리는 현재 반일(反日) 하는 것이며, 역사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반일하는 것이며, 다나카 씨 같은 일본인이 있기 때문에 반일하는 것이다.
(박경리, 『일본산고』中에서)

박경리의 『일본산고』의 저 부분이 요즘을 대변하는 시대의 말이다. 왜 우리가 독립운동은 하지 못해도 불매 운동을 해야 하는지 박경리는 철저하게 가르쳐 준다. 강단 있는 언어로 일본을 뼈 때리는 『일본산고』에는 밑줄을 긋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맞아 맞아하며 읽어야 할 문장이 너무나 많다. 나는 멍청이였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나는 이제 멍청이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멍청이었음을 알고 멍청이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역사와 현실에 대해. 소외와 불의에 대해. 알지 못했고 알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는 아니다. 조금씩 무지의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고군분투 중이다. 뉴스를 챙겨 보기 시작했으며 잘 이해가 안 되더라도 문학이 아닌 다른 분야의 책도 읽고 있다. 박경리의 『일본산고』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해방이 되기까지 제국주의 역사에서 살아간 작가의 일본론이다. 박경리는 일제 강점기를 온몸으로 겪었으며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생각하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견해를 읽으며 우리는 어떤 자세로 지금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먼저 일본 역사의 허상으로 시작한다. 신국(神國)이라 칭하면서 가지는 일본이라는 정체성의 오류를 밝혀낸다. 신(神)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들에 대해. 일본이 원폭의 피해자임을 강조하면서 은근슬쩍 전쟁과 식민의 잘못을 가리려는 가해자의 만행까지도. 소설가답게 일본 문학이 가지는 탐미주의와 죽음의 대한 선망 역시 엽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섬나라라는 지형학적 위치 때문에 그러려니 하는 것이라 해도 그들은 잘못을 감추고 피해 사실만 드러내는 왜곡과 반성을 모르는 민족이라고 말한다.

2019년을 사는 우리에게 날아든 한 편의 예언서인 『일본산고』는 한국인이 가져야 할 태도를 일러준다. 다나카가 쓴 "한국인의 '통속민족주의에 실망합니다'라고 쓴 편지를 읽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그 편지에 적힌 말이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그 편지를 받고 박경리는 "일본인은 한국인에게 충고할 자격이 없다"라는 제목으로 구구절절 옳은 소리로 일관하는 답장을 날린다. 이쯤 되면 그가 살아 있어서 쓰려고 했던 '일본론'이 베스트셀러로 올라와 반일하는 우리들의 목소리를 대신했을 것 같은데. 무척이나 아쉽다. 안타깝다.

다나카 씨는 일본에 유학 온 각국 학생들의 예비 코스인 일어학교 교사로부터 들은 얘기부터 풀어놨다. 한국인이 싫다는 내용의 중국인 학생 작문에 관한 것인데 그 입김이 대단히 나약했다.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나는 너를 그렇게 생각지 않는데 아무개가 너를 싫어하더라" 투가 그랬다. 이것은 고자질이다.
'내가 싫다 하기는 좀 거북하고 아무개가 싫다더라 해야지.'

몇 해 전의 일이다. 일본의 어느 잡지사 편집장이 내 집을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을 기억한다.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일본이 이웃에 폐를 끼치는 한 우리는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피해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류로서 손을 잡을 것이면 민족주의도 필요 없게 된다."
(박경리, 『일본산고』中에서)

나도 싫은데 내가 싫다고 하는 것은 그러니 누가 너 싫다더라 하는 식의 이간질로 역사 왜곡과 반성 없는 일본의 야비한 속성을 박경리는 간파한다. 지식인이라고 한 자의 역사 인식이 저 정도인데 역사 교육을 받지 않고 제국주의의 화려한 시절만 학습한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더할 것인가. 일본을 이웃으로 둔 불운함이 우리에게 있을 뿐이었다. 위안부 문제에 앞장선 활동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일본은 사과할 기회를 스스로 날리고 있는 것이라고. 박경리는 말한다. "일본인에게는 예(禮)를 차리지 말라. 아첨하는 약자로 오해받기 쉽고 그러면 밟으려 든다. 일본인에게는 곰배상을 차리지 말라. 그들에게는 곰배상이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고 상대의 성의를 받아들이기 보다 자신의 힘을 상차림에서 저울질한다."

반일과 친일은 어떻게 다른가. 그것은 책을 읽은 자와 읽지 않은 자의 차이로 규정한다. 역사에 빚을 지지 않은 세대. 역사에 객관을 유지한 채 거리 두기를 할 수 있는 세대. 우리. 박경리는 일본 문학지의 편집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자신을 "철두철미 반일(反日) 작가다"라고 소개했다. 그 말을 듣고 그들은 놀랐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그때가 지나도 한참 지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용서라는 거룩한 마음으로 일본을 대해야 한다고 뻔뻔하게 여기는 마음. 용서라는 것은 사과를 하고 반성해야지 따라오는 수순 아니던가. 『일본산고』는 지켜볼 것이다. 이제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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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파이 살인 사건
앤서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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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호로비츠의 『맥파이 살인 사건』은 대단한 소설이다. 올해 읽은(아직 올해가 가진 않았지만) 추리 소설 중 최고로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전자책으로 읽어 종이책의 압도적인 무게를 느끼지 않았다. 내가 가진 리더기 그랑데로 보니 전체 페이지 수는 738쪽이다.(폰트와 글씨 크기, 상하좌우 여백 비율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놀랐는가. 놀라지 마시라 『맥파이 살인 사건』은 시작부터 끝까지 독자와 추리 게임을 하느라 페이지가 넘어가는 줄도 모르게 만든다. 방대한 페이지수는 잊어 버리는 것이다. 대체 어디 있다가 이제야 나온 작가란 말인가, 앤서니 호로비츠는.

그는 영국 태생으로 아서 코넌 도일 재단에서 처음 출간하는 공식 셜록 홈즈 작가로 지정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영국이 어떤 나라인가. 고전 추리 소설의 아버지, 어머니를 모두 보유한 나라 아닌가. 『맥파이 살인 사건』은 영국의 고전 추리 소설 문법을 그대로 따라간다. 액자 소설 방식으로 외화와 내화의 이야기가 맞물려 돌아간다. 문장은 탄탄하고 비유는 최고급만 쓴다. 사건의 진상은 의외로 간단하지만 범인을 찾는 구성 방식은 치밀하다.

클로버리프 북스 출판사의 편집자인 수전은 주말을 앨런 콘웨이가 쓴 원고 『맥파이 살인 사건』을 읽는다. 장면이 바뀌면서 『맥파이 살인 사건』의 무대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색스비온에이번의 한 공동묘지로 말이다. 얼마 전 매그너스 파이경의 가정부로 일하는 메리가 죽었다. 그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다. 메리는 같은 집에서 일하는 브렌트에 의해 발견되었다. 청소를 하다 전선에 발이 걸려 계단을 구른 것이다. 사고사로 처리되지만 그녀의 아들 로버트가 의심을 받는다.

로버트의 약혼녀 조이는 아티쿠스 퓐트라는 영국 최고의 탐정을 찾아가 약혼자가 받는 의심을 벗겨줄 것을 부탁한다. 퓐트는 뇌종양에 걸렸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아 그녀의 제안을 거절한다. 얼마 후 같은 마을에서 이번에는 메리의 고용주 매그너스가 목이 잘려 죽는다. 퓐트는 탐정의 직감으로 두 사건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수사에 착수한다. 그는 마을로 가서 메리와 매그너스 주변을 탐문한다.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력으로 범인을 알아낸다.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려는 순간 소설이 갑자기 끝나버렸다.

결말이 사라진 것이다. 『맥파이 살인 사건』의 바깥에서 소설을 읽던 수전은 황당해하며 월요일 아침이 되기를 기다린다. 경악스러운 소식을 듣게 된다. 『맥파이 살인 사건』을 쓴 작가 앨런 콘웨이가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수전은 다년간의 추리 소설 편집자의 감으로 앨런의 죽음에 의문을 가진다. 소설은 두 가지 사건을 뭉쳐 놨다. 먼저 앨런이 쓴 『맥파이 살인 사건』 속 메리와 매그너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맥파이 살인 사건』을 빠져나오면 만나는 앨런의 자살 이야기.

현실과 소설이 만나면서 독자를 점점 알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몰아간다. 소설 속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의 범인과 현실 속 앨런의 죽음의 배후를 알아내야 한다. 나는 추리에 실패했다. 곳곳에 작가가 숨겨 놓은 단서를 하나로 모으지 못했다. 눈 밝은 독자라면 두 개의 이야기 안에 숨겨진 조각을 맞추어 가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과연 그럴까?) 소설 『맥파이 살인 사건』은 새롭고 놀랍다는 수식어를 쓸 수밖에 없다. 마치 독자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전개로 소설을 이끌어 나간다.

탐정 소설을 쓰는 작가가 남긴 마지막 소설. 결말이 사라졌고 작가는 자살을 했다. 그가 쓴 소설과 비슷하게 작가 주변에서 사건이 벌어진다. 힘을 모으시라.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앤서니 호로비츠는 고전적인 수법과 현대적인 기법으로 재미있는 추리 소설을 써냈다. 그의 다음 소설을 기대하며. 『맥파이 살인 사건』을 읽지 않은 당신은 좋겠다. 곧 재미있는 시간이 펼쳐질 테니까. 『맥파이 살인 사건』을 읽은 당신도 좋겠다. 방금 막 재미있는 시간을 경험했으니까. 『맥파이 살인 사건』은 우리에게 추리 소설을 읽는 순수한 즐거움을 안겨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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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방문자들 - 테마소설 페미니즘 다산책방 테마소설
장류진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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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에 잠금장치를 달아야 되는 거 아닐까. 『새벽의 방문자들』을 읽고 든 생각이다. 여섯 편의 소설이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로 묶인 책을 읽으며 겨우 든 생각이란 나의 안위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장류진의 소설 「새벽의 방문자들」을 시작으로 여기 미약하지만 또렷한 목소리가 담긴 소설이 있다. 화자는 달라도 그들이 말하고자 한 이야기는 한결같았다. 여기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당신이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은 누군가에게 상처로 돌아간다고.

「새벽의 방문자들」은 포털 사이트에 달리는 악성 댓글을 지우는 일을 하는 '여자'의 하우스 호러를 그린다. 새로 이사 간 오피스텔에서 새벽에 뜻밖의 방문자를 맞이한다. 택배가 올 수 있는 시간도 아니었다. 추측과 가정을 통해 알아 본 그들은 성매수자들이었다. 처음에 여자는 놀라지만 이내 그들의 얼굴을 찍어 프린트해 놓는다. 자신의 집과 비슷한 다른 오피스텔과 헛갈려 잘못 찾아온 것으로 생각하니 그럴 수 있는 행동이었다. 여자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같은 호수의 맞은편 오피스텔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마주한 진실은?

하유지의 「룰루와 랄라」는 프리랜서 여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남자의 현실을 웃프게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같은 동에 사는 여자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 엄마에게 룰라라는 별명을 붙여 주기도 한다. 그들과 아이 엄마가 헤쳐 나가야 할 현실에는 반말과 하대로 일삼는 개념을 밥 말아 먹은 사람들이 없기를 바란다. 정지향의 「베이비 그루피」는 인디밴드의 공연을 보다가 밴드의 한 멤버와 사귀는 고등학생이 나온다. 그루피라는 단어를 소설에서 처음 알았다. 소설은 이렇듯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로 데리고 가곤 한다.

「예의 바른 악당」에서 박민정은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체를 밝힌다. 연대라는 이름으로 베푸는 폭력에 대해 과감하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다들 예의 바르게 악당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반성을 하는 것이다. 김현의 「유미의 기분」은 스쿨 미투를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그때는 몰랐다. 자의식도 아직 생기기 전이었으니까.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우리를 우리로 살지 못하게 했음을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다. 김현진의 「누구세요?」는 낯설지만 익숙한 서사의 구조를 보여준다. 소설의 주인공 지윤이 자신을 낯설게 여기게 되는 과정이 현실적이다.

한 여자 한 남자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새벽의 방문자들』에 담겨 있다. 낯선 누군가가 집까지 따라와 문을 두드리고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무섭게 눌러대는 게 소설의 일만은 아니었음을 우리는 얼마 전에 보지 않았는가. 어머니뻘 되는 사람에게 반말과 욕설을 하며 업무 지시를 하는 상황은 왜 이토록 또 익숙한지(「룰루와 랄라」). 어리다고 너희들이 뭘 알겠느냐며 수행평가 점수를 인질로 삼아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던지며 배움을 행하는 자들의 뻔뻔함까지(「유미의 기분」).

더치페이는 당연한 것 아니냐며 데이트 통장에 넣을 돈을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 헤어지면서 돌려달라고 하니 증거가 없고 너의 잘못으로 헤어졌으니 이건 위자료라며 경찰에 신고해 보라고 말하는 전 남자친구(「누구세요?)」은 소설에서만 과장되게 그린 인물일까. 평등과 정의 구현을 말하면서도 자신의 애인을 흙수저라고 깔보는 사람까지(「예의 바른 악당」). 모두 소설의 일로 치부하기엔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보고 경험했다. 집에 들어갔는데 침대 밑에 귀신이 있는 게 무섭겠는가 사람이 있는 게 무섭겠는가라는 질문에서 주저 없이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로 귀신 보다 무서운 사람에 대한 공포.

낯선 자의 방문은 소설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어서 잠깐 공포의 기분을 맛보는 것이면 좋겠다. 『새벽의 방문자들』에 담긴 이야기가 불편하고 낯설게 느껴지지 않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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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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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바뀌는 게 사람 마음이다. 어떤 순간에는 좋았다가도 이내 마음이 어두워지기도 한다. 호들갑을 떠는 나와 금세 시무룩해지는 나. 어느 게 진짜 나의 모습일까. 항상심을 유지하며 살 수는 없을까. 고민하며 매일을 전투적으로 살아간다. 감정은 요동치는데도 그걸 무시하며 지내는 것이다. '나'를 숨기는 일에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다. 그러다 마음이 경고를 하는 때가 찾아온다. 이곳에 너의 마음이 있다며 신호를 준다.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초조해지고 불안감이 수시로 드는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실감은 뒤늦게 찾아왔다. 그때는 절차와 형식의 반복을 거치느라 지쳐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중에야 엄마라는 존재의 부재를 감지했다. 길을 걷다 나이 든 사람을 볼 때. 냉장고 안에서 엄마가 준 참깨, 미숫가루를 털어먹을 때. 그리움이 몰려왔다. 순식간에 마음이 허물어지는 경험을 했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마음 때문에 사는 것이 힘들다고 느꼈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를 읽으며 그때 내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립다 못해 우울하다고까지 느낄 수밖에 없었는지를.

감정도 그렇다. 슬픔이나 무기력, 외로움 같은 감정도 날씨와 비슷하다. 감정은 병의 증상이 아니라 내 삶이나 존재의 내면을 알려주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우울은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높고 단단한 벽 앞에 섰을 때 인간이 느끼는 감정 반응이다. 인간의 삶은 죽음이라는 벽, 하루는 24시간뿐이라는 시간의 절대적 한계라는 벽 앞에 있다. 인간의 삶은 벽 그 자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우울한 존재다.
(정혜신, 『당신이 옳다』中에서)

『당신이 옳다』는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쉬운 언어와 다양한 사례로 풀어나간다. 개인이란 보편적인 것이 아닌 개별적인 존재로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우울증(기분부전장애)이라는 것 역시도 특수한 질병의 범주가 아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일반적인 감정임을 역설한다. 어떤 사람의 감정을 우울증이라는 병으로서 해석하면 안 된다고 그는 다정한 치유자의 언어로 이야기한다. 한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일은 가볍게 여겨질 일이 아니었다. 『당신이 옳다』를 읽으며 내가 느꼈던 불안의 이유를 더듬어 나가 보았다.

이유를 찾는 일은 쉬웠다. 이유를 찾지 않으려고 했던 내가 이유였다. 우울과 불안을 느꼈던 것은 한 사람의 말 때문이었다. 얼른 털어 버리고 웃으면서 보자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부러 웃음을 가장하고 명랑한 척 굴었던 것이다.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 죽음 이후의 시간은 불현듯 찾아오는 그리움과의 싸움이었다. 『당신이 옳다』는 '적정 심리학' 이론을 내놓는다. '적정 심리학'은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첨단 기술보다는 상황에 맞는 적정한 기술이 필요하다는 이론에서 출발한다.

우울과 불안으로 대변되는 마음의 고통은 질병이 아니다. 그것은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와 늘 함께 한다. 학교와 직장, 가정에서 닥치는 '나'를 향한 위협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가. 『당신이 옳다』는 당신의 마음이 힘들 때 혹은 누군가 당신을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일러준다. 우리 사회가 가지는 우울증에 대한 진단 사례와 치료 방식이 편견으로 가득 차 있음을 주저 없이 이야기한다. 당신의 감정을 우울증이라는 질병으로 가둬 버리는 것을 경계한다.

우리가 느끼는 고통의 원인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나'라는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 '나'는 왜 불안해하는가.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를 알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당신이 옳다』에서 가장 중요하게 말하는 것은 '공감'이다. '나'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나'를 이해하려는 공감이 필요하다. 그 상황에서 '나'는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그 마음은 어땠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정혜신은 말한다. '나'에 대한 공감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당신'에 대한 공감이 가능해진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잔소리와 충고의 차이를 초등학생에게 물었다. 잔소리는 기분 나쁜데 충고는 더 기분 나쁘다고 한 것이다. 모든 이들의 공감과 웃음을 불러일으킨 말이었다. 초등학생도 아는 것이다. 누군가 자신에게 하는 말이란 도움이 되라고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받아들이는 자신은 기분이 나빴음을. 그것도 대단히. 『당신이 옳다』에서는 타인이 고민을 이야기 해올 때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상황이 발생했고 상처를 받은 이가 생겼다.

그가 당신에게 구조 요청을 한다. 이런 일이 생겼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그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실제로 나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정신없을 때 상황에 대한 '공감'보다는 앞으로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던 것이다. 그것이 잊히지 않고 지금까지 나도 모른 채 가슴 한구석에 서운함으로 숨어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서야 고통으로 다가온 것이다.

『당신이 옳다』는 우리를 우리 자신이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책이다.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어, 넘어질 수 있는 거잖아. 그럴 때 네 마음은 어땠니라고 물어오는 책이다. 고통받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치유는 시작된다고 말한다. 저 사람 왜 저래?라는 소외의 언어를 들려주는 것이 아닌 이제 당신을 들려주세요라며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우리가 되게 만든다. 자격증이 있는 전문가만이 마음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공감자'가 될 때 다정한 치유자가 되어 어려운 한 시절을 통과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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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디 걸 클래식 컬렉션 1
요한나 슈피리 지음, 이경아 옮김 / 윌북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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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엄마에게 책을 사달라고 조른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약간의 돈을 주었다. 돈을 주면 서점으로 가서 책 한 권을 사서 달려 나왔다. 그때 서점에 진열된 책들은 얼마나 황홀해 보이던지. 생각 같아서는 몽땅 그 책을 가지고 나오고 싶었다. 한 권의 책을 사서 읽는 것으로 허전한 마음을 달랬다. 한 번은 진지하게 다른 집에는 세계 명작 동화 같은 책들이 전질로 쌓여 있다고 부럽다고 말했다. 엄마는 백과사전을 사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동화를 읽기보다는 지식을 쌓을 수 있는 백과사전을 보면서 딸이 똑똑해지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때 엄마가 세계 명작 동화를 사주었다면 어땠을까. 요한나 슈피리의 『하이디』를 읽으며 가정해 본다. 여자아이들의 세계에서 활발하고 명랑하게 생활하지 않았을까. 그 애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때 그 백과사전은 숙제를 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빳빳한 종이를 넘기며 온갖 지식의 나열을 베꼈다. 나이가 들고 책을 살 수 있는 형편이 되어서야 독서의 체계를 잡아나갔다. 무엇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의 목록을 보면서 한 권 한 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이모와 살게 된 하이디는 그마저도 사정이 여의치 않아 알프스 삼촌이라고 불리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 끝에 마음을 다쳐 마을 사람들과도 만나지 않고 산 위에서 혼자 살고 있다. 할아버지의 아들 토비야스가 죽고 남은 딸 하이디를 돌보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걱정한다. 괴팍하다고 소문난 그가 어린 손녀를 잘 돌볼 수 있을지. 데테 이모는 갑자기 나타나 할아버지에게 하이디를 맡기고 홀연히 떠난다.

그날부터 하이디의 시간이 눈부시게 펼쳐진다. 걱정은 마시라. 할아버지는 다정한 사람이었고 하이디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재주가 있는 아이였다. 하이디는 염소를 모는 소년 페터와도 친해진다. 염소의 이름을 불러주며 알프스 산에 동화된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안 계시는 상황에서도 하이디는 긍정적이고 활발한 성격으로 자라난다. 건초 더미를 모아 침대로 만들고 고원에 있는 꽃을 보러 다니고 눈이 먼 페터의 할머니 그래니와도 친구가 된다. 하이디의 시절은 꿈과 빛으로 충만할 것 같았다.

데테 이모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는 느닷없이 나타나 하이디를 프랑크푸르트로 데려가 버린다. 부잣집에 사는 병약한 소녀의 말 벗이 되어주어야 한다면서 말이다. 하이디는 낯선 곳으로 가고야 만다. 그곳에서 클라라를 만나며 글을 익히고 자신에게 친밀감을 표현하는 제제만 부인과 이야기를 나눈다. 하이디가 글을 읽을 수 있도록 도움의 말을 주는 제제만 부인의 행동은 감동적이었다.

"…그런데 하이디가 거의 하룻밤 만에 철자를 다 익혔습니다. 이제 글을 '읽어요.' 글을 처음 배우는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보아도 하이디가 훨씬 더 정확하게 잘 외우고 있었습니다. 눈에 띄게 성장했어요."
"이 세상에는 신기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죠." 제제만 부인이 흐뭇해하며 말했다. "아마도 이제야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생겼나 봅니다. 이유가 무엇이 됐든 우리 모두 그 아이가 여기까지 온 것을 하늘에 감사하도록 하죠. 앞으로도 더욱 발전하기를 기원하고요."
(요한나 슈피리, 『하이디』中에서, 157쪽)

『하이디』는 나를 책이 읽고 싶어서 엄마를 졸랐던 그 시간으로 데리고 간다. 그때는 속상했다. 세계 명작 고전 전집을 사주지 않아서. 이제는 다르게 생각해본다. 내게는 원하는 것이 있으면 들어주려고 하던 다정한 엄마가 있었고 글을 알아 책을 읽을 수 있던 어린 시절이 존재한다. 어쩌면 세계 명작 고전 전집에는 『하이디』가 실려 있을 수도 있었겠지.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보다 남의 아픔을 먼저 들여다보는 착한 소녀 하이디를 일찍 만났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괜찮다. 지금 어른이 되어 만나도.

도시에서 다시 할아버지가 있는 알프스 산으로 돌아간 하이디는 전보다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게 되었다. 경험이 하이디의 마음에 쌓인 것이다. 그래니 할머니에게 줄 롤빵을 모으는 착한 하이디. 클라라의 마음이 다칠까 봐 할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섬세한 하이디. 다시 돌아온 하이디는 할아버지가 계신 산에서 매일 아침 기쁘게 눈 뜨는 행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오늘이라는 말은 얼마나 달콤한 말인지. 『하이디』는 그걸 내게 알려주었다. 별을 보고 잠들고 일어나면 전나무의 기척을 먼저 알아채는 하이디가 있는 다락방으로 달려가고 싶다. 하이디의 손을 잡고 그 애가 하는 말을 들으며 기쁘게 웃고 싶다. 오늘 눈을 뜨고 새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일이란 기쁘고 소중한 것임을 『하이디』을 읽으며 다시 깨닫는다. 하이디의 손을 잡고 과거로 가 보았다. 그곳에는 우리가 미처 고맙다고 말하지 못하고 보낸 아름다운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제제만 부인의 손을 꼭 쥐었다. 하지만 너무나 고맙고 행복한 나머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이디가 다시 그래니를 포옹했다. "모든 일이 행복하게 끝났네요, 그죠?" 아이가 말했다.
(요한나 슈피리, 『하이디』中에서, 358쪽)


모든 일이 행복하게 끝나는 것은 동화 속에나 나올만한 결말인지도 모른다. 동화의 시간은 끝이 나지만 현실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이디』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라고. 당신과 나, 우리는 행복한 하루를 살아갈 의무가 있다고. 계산하지 않고 이해관계로 따지지 않는 다정한 사람으로 누구에게나 즐거움을 주며 살아갈 수 있다면 오늘은 행복하게 살아간 것이라고 말이다. 지금 어른이 되어 읽는 『하이디』에는 오늘에 대한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 역시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다가오지도 않을 미래에 대한 근심이 아닌 내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반짝임을 놓치지 않으며 살아가야겠다. 조금 늦게 도착한 『하이디』를 읽을 수 있는 오늘이어서 행복하다. 하이디와 클라라의 우정이 동화의 시간 속에서도 영원하기를 소망한다. 당신에게 곧 찾아올 『하이디』를 환영한다. 명랑하고 쾌활한 친구 하이디와 함께라면 내일이라는 시간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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