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
이주윤 지음 / 한빛비즈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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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다 살다 이런 맞춤법 책은 처음 봤다. 내 본디 공부가 부족하고 머리가 나빠 문장을 제대로 쓰지 못해 여러 책들을 참고해 보긴 했다. 그래도 문장력은 안 늘더라. 가끔 맞춤법을 틀려서 비관에 빠지기도 한다. 백성을 어여삐 여긴 세종대왕님의 탁월한 능력과 재능에 힘입어 한자를 쓰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길 정도이지만 한글, 어려울 때가 있긴 하다. 아, 절대 투정 부리는 거 아닙니다요, 세종대왕님. 그래도 조금 헛갈릴 때가 있어용.

이주윤의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은 연애서인가, 문법서인가. 재기 발랄한 글솜씨를 가진 이주윤은 맞춤법 책을 쉽고도 병맛 요소를 가미하여 만들어 냈다. 새벽 두시 남들 다 자는 시간에 자니?라고 문자를 보내오는 오빠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이제 막 썸을 타기 시작해 밥이라도 먹자고 톡을 날리는 언니들이 필히 읽어야 할 책이다.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단계에서 문자로 주고받는 그 단계에서 이미지를 깎아 먹지 않으려면 지켜야 할 건, 바로 무엇이냐.

맞습니다. 맞춤법. 틀린 글자로 연락이 오면 왠지 이 사람에게 호감이 들지 않는다. 안과 않을 구별 못하고 되와 돼, 굳이와 구지를 못 쓰는 그와 그녀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세종대왕님이 엉엉 울고 계실 것만 같다. 연애에 성공하고 싶은 비결을 이주윤은 한글 맞춤법부터 제대로 쓰자고 말한다. 자니 하고 뜬금없이 문자를 보내놓고 내일 밥 먹지 안을래라고 쓰면 밥은커녕 얼굴도 보기 싫을 테니 말이다.

이 책 정보와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결제와 결재를 언제 쓰느냐. 설거지, 베개, 찌개를 틀리지 않고 쓰려면?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을 읽어보시라. 읽다가 뒤로 자빠져도 난 모르는 일. 딱딱하고 어렵지 않다. 각각의 맞춤법 표기에 맞는 예문이 웃기고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서 해준다. 어려우면 어렵다고 말하고 모르면 몰라도 된다고 하니.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선 보고 연애에 실패하고 전남친에게 맞춤법을 가르치다가 폭발한 경험이 쌓여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이 탄생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정신이여 눈물 난다. 저자 자신도 잘못 알고 있었던 맞춤법을 부끄럽지만 알려주고 직접 그린 그림은 이해가 잘 되게 도와준다. 글만큼이나 그림도 웃기다. 가르치다 와 가리키다를 구분하기 위해 교사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교사 친구는 현장 경험이 담긴 골 때리는 구별법을 들려준다. 유유상종.

맘 먹고 읽으면 한 시간이면 읽는다. 한 시간 투자해서 마음에 드는 이를 사로잡을 수 있다면 밑져야 본전이니, 우리 다 같이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을 읽어보자. 낄낄대면서 웃을 수 있고 공부도 되고 사랑하는 그이에게 환심도 살 수 있다. 이거야말로 일석삼조.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마당 쓸고 동전 줍고. 어부지리도 되나, 막 갖다 부치면 하나는 맞겠지. 일거양득도 추가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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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주윤 지음 / 한빛비즈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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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비혼 남녀 여러분들 이번 설은 무사히 보내셨습니까? 혹시 잔소리에 지쳐 조용히 전을 부치다 집을 나오시지는 않으셨는지요. 공원에 앉아 지나가는 커플을 쳐다보며 한숨을 푹푹 쉬지는 않으셨는지요. 아니면 너 님은 말하세요, 나는 안 들을 테니라는 포즈로 소파에서 떨어지지 않으셨는지요. 결혼은 언제 할 거냐. 얼마 버냐. 선 자리 있는데 어때 생각 있니. 이런 말을 들으며 산적과 동태전과 육전을 입속으로 욱여넣으셨나요. 그래도 맛있지요? 원래 명절 음식은 살이 안 찐답니다. 살은 내가 찌는 거지요.

대체 휴일이 있었지만 대체 연휴는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출근 날이 되어 버스를 기다리며 잔뜩 부분 뱃살을 만지작거리며 우울해했나요. 조카들 용돈 주느라 얇아진 지갑을 쓰다듬으며 속상해했나요. 자 자 그러지 말고 이 책 한 번 읽어봅시다. 전직 간호사에 일러스트레이터에 소설가 지망생 그리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누워 있는 걸 좋아하고 누워 있는 걸 좋아하는 이주윤의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입니다.

원래 그렇습니다. 책을 고르는 기준이라는 게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 이걸 읽어라 저걸 읽어라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재밌다고 해도 상대는 난 재미없는 데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추천하기가 상당히 조심스럽지요. 나는 상행선. 너는 하행선. 노래 가사대로 각자 살고 각자 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책 꼭 읽어보세요. 그러니까 당신. 명절 때 들은 잔소리로 스트레스 지수가 팍팍 올라간 당신. 결혼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당신.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를 추천합니다.

처음 알게 된 작가 이주윤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그녀의 말발과 드립력에 감탄하고 맙니다. 참으로 즐겁고 세상을 무한대로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제가 현실에서 사람 만나는 걸 즐겨 하진 않는데 책을 읽으며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알아가는 걸 낙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주윤 작가는 저와 비슷한 점이 많기도 하고 제가 가지고 있지 않은 유머력이 있어 이후에 나올 책들을 기대하게 합니다. 비혼 주의자로서 살아가는 일상의 단면이 즐겁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주윤 작가의 아버지, 어머니는 선 자리를 알아봐 놓고 결혼을 종용합니다. 어머니는 매일 전화를 걸어와 안부를 묻습니다. 부모님은 평택에 살고 그녀는 서울에 삽니다. 명절 날 전 부치러 가는 에피소드는 가히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웃기고 슬프고. 웃기고 슬프고를 번갈아 하면서 현실 웃음을 짓게 만듭니다. 선 보는 자리에 서강준 닮은 이가 나타나 설레었다가 이내 멸치남이 등장합니다. 평소 그녀의 성격대로 화끈하게 대했겠지요. 멸치남은 그런 그녀에게 "자기주장이 굉장히 강하시네요."라고 합니다. 주윤은 '알아, 안다고. 아니까 닥쳐!"라고 속으로 말합니다.

글로 읽지만 말로 들립니다. 입말이라고 하지요. 명절을 보내고 다음날이 출근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서 집어 든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를 읽으며 배를 두드리며 웃었습니다. 평소 느끼던 삶의 부조리를 쉽고 재미있게 표현해주니 웃지 않을 수가 있나요. 노처녀라고 합디다, 세상은. 주윤 작가의 아버지 말에 의하면 여자는 서른이 넘으면 '쭈그렁방탱이'라고 하네요. 하. 한숨. 하하하. 이것은 웃음. 노처녀라고 하면 어떻고 쭈그렁방탱이라고 하면 어떻습니까.

늦잠 자고 일어나 낮잠 자고 그러다 늦잠 자는 주윤. 광화문에 있는 교보 문고에 가는 걸 좋아하고 형부가 하는 카페에 앉아 글을 쓰는 주윤. 혼자 지내니 시간을 온전히 자기에게 쓸 수 있어서 즐거워하는 주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다양한 사람들만큼이나 삶의 다양성도 존재해야 합니다. 그걸 무시하며 자신들이 정해 놓은 기준 안에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세상의 규칙을 주윤은 가볍게 무시해 버립니다.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는 결혼을 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이런 삶도 있으니 너도 괜찮고 나도 괜찮다고 말하는 책입니다. 광화문에 집을 살 수는 없으나 카페는 언제든지 갈 수 있고 불의와 무책임 앞에서는 유머 삼단 콤보를 날리며 스스로를 웃게 만들 수 있으니 주윤의 삶은 행복해 보여요. 자신만의 기준으로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용기가 생깁니다. 명절 잔소리를 이겨낸 그대들에게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를 바칩니다. 부디 받아주시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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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징조와 연인들
우다영 지음 / 민음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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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지 않을 일을 미리 걱정하며 사는 남자가 있다. 과거의 불행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현재의 행복을 의심하며. 그런 남자를 바라보는 여자가 있다. 둘은 연애의 길로 들어서지만 결말은 뭐 그렇게 된다. 짐작대로. 이별의 수순을 밟는다. 이 세계의 밤은 아무리 밀어내도 곧 다시 밀려드는 안개처럼 그들을 에워싸고 있다. 우다영의 소설집 『밤의 징조와 연인들』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에서는 이런 만남과 계산된 헤어짐이 빈번하다.

상처받은 과거를 꺼내 놓고 자신의 슬픔을 알아달라고 한다. 계획된 미래를 꿈꾸지만 현재는 흔들리기만 한다. 과거 함께 했던 연인의 부고를 들으면서도 그와 함께한 시간이 정말이었는지를 되묻는다. 한 여자를 기다리면서 그녀에게 닥쳤던 꿈이 상실되는 순간을 떠올린다. 우다영의 소설적 세계는 폴 오스터가 그려내는 우연의 변주가 배경처럼 펼쳐진다.

핍진성. 필연. 소설에서는 인과 관계가 확실해야 하며 꾸며낸 세계일수록 완벽하게 서사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우다영은 그걸 비웃는다. 알지 않은가. 우리가 만나서 사는 현실에서 우연은 빈번하고 자주 등장한다는 것을. 당장 카페에 앉아 있다가도 낯모르는 이와 대화를 시작하면 그와 나는 비슷한 과거를 공유했고 취향을 가졌으며 기억을 더듬어가면 누군가를 공통적으로 알고 있다.

개에 물린 적이 있는가. 「조커」에서 '나'는 소개받은 여자를 기다리면서 우연히 한 여자와 합석한다. 휴대전화를 가져오지 않아 시작된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 나아가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얼굴 없는 딸들」에서 여자아이들의 과거는 이상할 정도로 비참하게 기록된다. 아이들에게 도덕적인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 감정이 태도가 되는대로 살아간다. 하나의 세계가 열리면서 건너온 세계의 문은 닫힌다. 문밖에 두고 온 세계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우다영의 인물들은.

묻지 마 테러에 희생된 딸아이의 지갑을 보며 사실은 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현실을 자각하는 아버지. 뒤늦은 깨달음은 후회와 가정을 반복하게 만든다. 도덕성을 벗어던진 여자아이들은 자란다. 「얼굴 없는 딸들」의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된 이야기를 그린 것 같은 「셋」은 비밀은 결국 깨어진다는 기이한 여운을 남긴다. 『밤의 징조와 연인들』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과거를 반추해 낸다. 그렇게 하면 불행한 현재가 괜찮아질 것이라고 믿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현재는 현재다. 과거에 사로잡힐 일도 아니고 다가오지도 않을 미래를 걱정할 것도 없이 살아가야 한다. 우다영의 연인들이 연애에 실패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들은 현재를 버거워한다. 아름다운 미래를 원하면서 왜 현재를 두려움으로 방치해 놓을까. 닫힌 문을 바라보며 답을 할 수 없는 의문에 사로잡혀 다음 세계의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문을 열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밤의 징조와 연인들』을 읽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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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윤의 알바일지 - 14년차 알바생의 웃픈 노동 에세이
윤이나 지음 / 미래의창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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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거보다 없는 게 더 많은 인생. 적금 통장, 4대 보험, 집, 통장의 잔고, 고정 수입, 일자리…. 뜨이씨. 눈물이 앞을 가려서 더는 못 쓰겠다. 『미쓰윤의 알바일지』를 쓴 윤이나의 이야기이다. 한 달 수입이 0원이라고 국민연금 상담원에게 자신의 재정 상태를 밝힌다. 상담원은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었다. 웬만하면 설득해서 보험을 들라고 할 텐데. 14년 동안 했던 각종 알바 경력이 총망라되어 있다. 알바 백과사전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우려나.

『미쓰윤의 알바일지』는 대학교 입학을 시작으로 언론사 입사 시험을 준비하면서(입사 시험을 준비하는데 공부가 아닌 알바라니) 겪은 알바의 다채로운 세계를 다룬다. 과외, 초콜릿·빼빼로 판매원, 카페촌 서빙 알바, 방청객, 모니터 요원, 방송 작가, 닭공장, 독서 논술 지도, 영화제 취재, 소셜커머스 페이지 구성 작가…. 더 있는데 이쯤에서 줄인다. 알바 일지답게 알바명, 제일 중요한 급여, 알바 강도, 추천 대상이 친절하게 나와 있다.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기한 있는 쿠폰으로 여겨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떠나기도 한다. 그곳에서의 고생담이란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날 정도이기는 하나 윤이나는 긍정과 활기를 잃지 않는다. '말이 프리랜서'로서 청탁이 들어오면 원고지 1매당 얼마인지부터 계산한다. 고정 수입이 없는 사람으로서 내일에 대한 불안함, 오지도 않을 미래 때문에 움츠러들기도 하지만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닌 게 당장 오늘 내야 할 월세와 공과금, 통신비 때문에 알바와 알바를 해야 한다.

추석 상여금으로 포인트를 받고 일하던 곳이 망해서 돈을 받지 못해 법원에 가서 내용 증명을 하며 각자 알아서 살아가야 할 처절한 현실과 싸운다. 판매의 여왕답게 초콜릿과 빼빼로, 선글라스를 기록적으로 팔아 치우기도 한다. 호주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은 쏘리,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걱정 마였다. 가수 최진희한테 직접 하루 일당을 받기도 한다. 『미쓰윤의 알바일지』는 생생한 체험담이라서 감동과 웃음 그리고 눈물이 흘러넘친다. 알바를 하며 틈틈이 글을 쓴다. 이게 책이 될지도 모르면서 썼을 텐데. 대단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만난 일화. 세계적인 감독임에도 일일이 언론사와 만나 인터뷰를 하는 그에게 왜 이렇게 하냐고 물었다. 그는 당신의 눈을 보며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톰 크루즈에게 '한국의 전통 장난감 공기'를 전달하고 국민 MC의 가발을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미쓰윤이 되어 쓴 알바일지는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숨만 쉬어도 돈이 들어 숨조차 쉬지 못하는 이들을 위하여 『미쓰윤의 알바일지』는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없는걸 없다고 말하는 솔직함.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고 말하며 위로를 찾기도 하겠지만 없는 건 없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 가오도 갖기 힘든 세상.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 나 때는 말이야 하며 라떼를 먹고 싶게 만드는 말을 들으며 지쳐 있을 당신에게 『미쓰윤의 알바일지』를 건넨다. 이 책에는 웃음이 있다. 이름대로라면 윤이 나게 살아가야 맞지만 현실은 윤이 나게 닦을 나만의 집이 없는 윤이나는 자신의 삶을 갈아 웃음을 준다.

'공모전 이벤트 참여' 알바를 해서 오만 원을 받아 월세를 내는 윤이나. KFC 닭공장에서 철야 작업을 하고도 KFC 치킨버거를 먹는 윤이나. 과외 알바를 잘리면서도 초등학생에게 큰 수의 뺄셈을 가르치는 윤이나. 미쓰윤은 그렇게 세상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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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짓는 사람
누쿠이 도쿠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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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읽으면 멈출 수 없다. 일요일 오전에 읽기 시작한 누쿠이 도쿠로의 『미소 짓는 사람』은 그런 소설이다. 휴일에 일찍 일어나버렸다. 예전에 사두고 잊어버린 책의 목록을 불러온다. 꽤 된다. 자고로 책이란 사 놓고 잊어버리는 맛이 쏠쏠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읽어볼까 마음이 들면 펼쳐든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미소 짓는 사람』을 펼쳤다. 날짜를 보니 일 년 전에 산 책이다.

저질 체력이라서 다시 잠들뻔했다. 그런데 도저히 이야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미소 짓는 사람』을 전부 읽어버렸다. 물에 빠진 사람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조 대원의 회상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아이와 여자였다. 그 곁에서 인공호흡을 하는 남자가 있었다. 남편이었다. 묘하게 침착한 얼굴이었다는 기억을 들려준다. 사고사로 결론이 나고 화장을 기다렸다. 목격 전화가 걸려온 건 그즈음이었다.

목격자는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 없어서 바로 신고를 하지 못했다고 밝힌다. 물놀이하기에는 이른 철이었다. 남자가 여자를 물속으로 밀어 넣었고 남자의 등에 업힌 아이는 울고 있었다. 자신이 잘못 본 것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다음날 신문에 실린 사고 기사를 보고 신고를 했다. 살인자가 자신을 쫓아올게 두려워서 바로 알리지 못했다고도 밝혔다. 화장을 하기 직전 부검이 이루어졌고 여자의 손톱에서 남자의 DNA가 검출되었다. 남자는 그제서야 시인했다.

범행 동기는 충격적이었다. 집안에 책 놓을 공간이 없어서 아내와 딸을 살해했다는 것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미소 짓는 사람』은 한 남자의 범행 동기를 밝히기 위해 분투한다. 이상한 범행 동기에 호기심을 느낀 소설가는 이 사건은 논픽션으로 쓰려고 한다. 그 과정에 남자의 주변 인물을 찾아가 평소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묻는다. 책을 놓고 싶어 가족을 죽였다는 남자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사건을 취재하던 중에 남자의 주변에 죽음이 많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남자의 직장 동료, 학교 친구, 옆집 남자…. 소설은 묘하게 흘러간다. 주변인들에게 평판이 좋은 남자는 누구를 죽일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의 주변에서 일어난 일련의 죽음들. 우리가 살인자에게 기대하는 건 납득할만한 범행 동기이다. 동기를 알아야지 안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와 나의 다름을.

『미소 짓는 사람』은 남자의 범행 동기를 찾아가는 듯했다. 그가 가지고 있던 과거의 트라우마를 밝히는 데까지 성공한다. 소설가는 남자의 초등학생 시절의 친구와 만나 숨겨진 이야기를 듣는다. 남자가 이상한 이유로 사람을 죽이게 된 계기를 찾아 논픽션을 완성 지으려고 한다. 하지만 논픽션의 서사는 실패한다. 살인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유를 알아내는 일의 의미 없음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남자의 다층적인 내면과 성향을 살인자의 정체성이라는 틀에 맞추어 이해하려고 했던 시도는 실패한다. 이유는 없고 그는 그저 한낱 광기로 물든 살인자에 불과하다. 내 옆의 누군가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대체 누구를 이해하려 든단 말인가. 사람들은 사실 보다 자신이 이해 가능한 범위 안에서의 합리적 이유만을 알기를 원한다. 『미소 짓는 사람』은 독자의 믿음을 배반한다. 그가 왜 그랬을까 보다 나는 무엇을 알기를 원한 걸까를 묻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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