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짓는 사람
누쿠이 도쿠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한 번 읽으면 멈출 수 없다. 일요일 오전에 읽기 시작한 누쿠이 도쿠로의 『미소 짓는 사람』은 그런 소설이다. 휴일에 일찍 일어나버렸다. 예전에 사두고 잊어버린 책의 목록을 불러온다. 꽤 된다. 자고로 책이란 사 놓고 잊어버리는 맛이 쏠쏠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읽어볼까 마음이 들면 펼쳐든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미소 짓는 사람』을 펼쳤다. 날짜를 보니 일 년 전에 산 책이다.

저질 체력이라서 다시 잠들뻔했다. 그런데 도저히 이야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미소 짓는 사람』을 전부 읽어버렸다. 물에 빠진 사람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조 대원의 회상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아이와 여자였다. 그 곁에서 인공호흡을 하는 남자가 있었다. 남편이었다. 묘하게 침착한 얼굴이었다는 기억을 들려준다. 사고사로 결론이 나고 화장을 기다렸다. 목격 전화가 걸려온 건 그즈음이었다.

목격자는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 없어서 바로 신고를 하지 못했다고 밝힌다. 물놀이하기에는 이른 철이었다. 남자가 여자를 물속으로 밀어 넣었고 남자의 등에 업힌 아이는 울고 있었다. 자신이 잘못 본 것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다음날 신문에 실린 사고 기사를 보고 신고를 했다. 살인자가 자신을 쫓아올게 두려워서 바로 알리지 못했다고도 밝혔다. 화장을 하기 직전 부검이 이루어졌고 여자의 손톱에서 남자의 DNA가 검출되었다. 남자는 그제서야 시인했다.

범행 동기는 충격적이었다. 집안에 책 놓을 공간이 없어서 아내와 딸을 살해했다는 것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미소 짓는 사람』은 한 남자의 범행 동기를 밝히기 위해 분투한다. 이상한 범행 동기에 호기심을 느낀 소설가는 이 사건은 논픽션으로 쓰려고 한다. 그 과정에 남자의 주변 인물을 찾아가 평소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묻는다. 책을 놓고 싶어 가족을 죽였다는 남자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사건을 취재하던 중에 남자의 주변에 죽음이 많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남자의 직장 동료, 학교 친구, 옆집 남자…. 소설은 묘하게 흘러간다. 주변인들에게 평판이 좋은 남자는 누구를 죽일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의 주변에서 일어난 일련의 죽음들. 우리가 살인자에게 기대하는 건 납득할만한 범행 동기이다. 동기를 알아야지 안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와 나의 다름을.

『미소 짓는 사람』은 남자의 범행 동기를 찾아가는 듯했다. 그가 가지고 있던 과거의 트라우마를 밝히는 데까지 성공한다. 소설가는 남자의 초등학생 시절의 친구와 만나 숨겨진 이야기를 듣는다. 남자가 이상한 이유로 사람을 죽이게 된 계기를 찾아 논픽션을 완성 지으려고 한다. 하지만 논픽션의 서사는 실패한다. 살인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유를 알아내는 일의 의미 없음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남자의 다층적인 내면과 성향을 살인자의 정체성이라는 틀에 맞추어 이해하려고 했던 시도는 실패한다. 이유는 없고 그는 그저 한낱 광기로 물든 살인자에 불과하다. 내 옆의 누군가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대체 누구를 이해하려 든단 말인가. 사람들은 사실 보다 자신이 이해 가능한 범위 안에서의 합리적 이유만을 알기를 원한다. 『미소 짓는 사람』은 독자의 믿음을 배반한다. 그가 왜 그랬을까 보다 나는 무엇을 알기를 원한 걸까를 묻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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