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징조와 연인들
우다영 지음 / 민음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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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지 않을 일을 미리 걱정하며 사는 남자가 있다. 과거의 불행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현재의 행복을 의심하며. 그런 남자를 바라보는 여자가 있다. 둘은 연애의 길로 들어서지만 결말은 뭐 그렇게 된다. 짐작대로. 이별의 수순을 밟는다. 이 세계의 밤은 아무리 밀어내도 곧 다시 밀려드는 안개처럼 그들을 에워싸고 있다. 우다영의 소설집 『밤의 징조와 연인들』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에서는 이런 만남과 계산된 헤어짐이 빈번하다.

상처받은 과거를 꺼내 놓고 자신의 슬픔을 알아달라고 한다. 계획된 미래를 꿈꾸지만 현재는 흔들리기만 한다. 과거 함께 했던 연인의 부고를 들으면서도 그와 함께한 시간이 정말이었는지를 되묻는다. 한 여자를 기다리면서 그녀에게 닥쳤던 꿈이 상실되는 순간을 떠올린다. 우다영의 소설적 세계는 폴 오스터가 그려내는 우연의 변주가 배경처럼 펼쳐진다.

핍진성. 필연. 소설에서는 인과 관계가 확실해야 하며 꾸며낸 세계일수록 완벽하게 서사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우다영은 그걸 비웃는다. 알지 않은가. 우리가 만나서 사는 현실에서 우연은 빈번하고 자주 등장한다는 것을. 당장 카페에 앉아 있다가도 낯모르는 이와 대화를 시작하면 그와 나는 비슷한 과거를 공유했고 취향을 가졌으며 기억을 더듬어가면 누군가를 공통적으로 알고 있다.

개에 물린 적이 있는가. 「조커」에서 '나'는 소개받은 여자를 기다리면서 우연히 한 여자와 합석한다. 휴대전화를 가져오지 않아 시작된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 나아가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얼굴 없는 딸들」에서 여자아이들의 과거는 이상할 정도로 비참하게 기록된다. 아이들에게 도덕적인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 감정이 태도가 되는대로 살아간다. 하나의 세계가 열리면서 건너온 세계의 문은 닫힌다. 문밖에 두고 온 세계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우다영의 인물들은.

묻지 마 테러에 희생된 딸아이의 지갑을 보며 사실은 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현실을 자각하는 아버지. 뒤늦은 깨달음은 후회와 가정을 반복하게 만든다. 도덕성을 벗어던진 여자아이들은 자란다. 「얼굴 없는 딸들」의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된 이야기를 그린 것 같은 「셋」은 비밀은 결국 깨어진다는 기이한 여운을 남긴다. 『밤의 징조와 연인들』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과거를 반추해 낸다. 그렇게 하면 불행한 현재가 괜찮아질 것이라고 믿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현재는 현재다. 과거에 사로잡힐 일도 아니고 다가오지도 않을 미래를 걱정할 것도 없이 살아가야 한다. 우다영의 연인들이 연애에 실패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들은 현재를 버거워한다. 아름다운 미래를 원하면서 왜 현재를 두려움으로 방치해 놓을까. 닫힌 문을 바라보며 답을 할 수 없는 의문에 사로잡혀 다음 세계의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문을 열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밤의 징조와 연인들』을 읽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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