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누아르 달달북다 3
한정현 지음 / 북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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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합계 출생률이 0.78명이라고 했더니 미국의 법학자 조앤 윌리엄스는 와,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라고 말했다. 이 인터뷰는 유명해져서 조회 수가 100만을 넘겼다. 영상 밑에 달린 댓글도 화제가 되었다. EBS는 조앤 윌리엄스를 초청해 다양한 세대들과 만나 대한민국의 망해가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연하게 본 영상을 보면서 전통적인 성 역할과 왜 출생률이 낮을 수밖에 없는지에 생각해 보았다. 


힘들게 공부해서 대학 가고 취업까지 했는데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경력단절. 결혼 하고 아이를 가지는 과정에서 남성은 승진을 여성은 퇴사를 고민한다. 회사 내규상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돌아오면 근무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된다고 했지만 오랫동안 승진의 문턱에서 좌절했다고 조앤 윌리엄스와 이야기를 나누는 한 여성은 말했다.


여기 시간을 2024년에서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한정현의 소설 『러브 누아르』의 시간적 배경으로 말이다. 37년 전에 한국은 어땠을까. 어때긴 뭐 어때. 여전히 지옥이면서도 누군가에게만 천국이었지. 이름은 박선. 한양 물산 2층 사무실에서 미쓰 박으로 불리는 그녀. 9남 1녀 중에 다섯째. 직업 고등학교를 나왔고 나중에 뭐가 되고 싶냐는 미쓰 리의 질문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주판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지금은 미쓰 막걸리로 불리는 선.


같은 곳에서 일하지만 이름은 모른 채 미쓰 박, 미쓰 리, 미쓰 김, 미쓰 윤, 미쓰 최라고만 불리는 그녀들이 『러브 누아르』에 존재한다. 선은 경리 일을 하면서 노트에 무언갈 자꾸만 쓰고 있는 미쓰 리를 만난다. 미쓰 리는 선에게 조언한다. 여기에서는 웃지 말라고. 웃게 되면 임신 아니면 낙태를 하게 된다고. 살벌한 인생 조언이다. 


『러브 누아르』는 달달 북스에서 칙릿이라는 주제로 쓰인 소설이다. 작품을 읽어가다 보면 성공한 여자의 일과 사랑을 다룬다는 칙릿의 서사와는 조금씩 어긋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소설이기도 하다. 주로 역사, 여성, 연구와 관련된 주제로 소설을 쓰는 한정현에게 칙릿이라는 장르를 쓰게 하다니. 대체 여성이 일과 사랑에 성공할 수 있는 게 지금 시대에 가능하기나 한 걸까. 


일을 하려면 사랑을 포기해야 하고 사랑을 하려면 일을 포기해야 한다. 합계 출생률 0.78명이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어렸을 때 그땐 완전 어렸을 때 나도 결혼하고 애 낳아서 훌륭하게 키워야지 했더랬다. 지금은 책임감이라는 걸 감당할 자신이 없기에 현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조앤 윌리엄스는 말한다. 한국의 청년들이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낳을 수 없는 상태에 처한 것이라고. 


한정현의 칙릿은 1987년에 이름도 없이 미쓰로 불리는 여성들의 노동과 사랑, 현실을 반짝이 없는 흑백의 질감으로 그려낸다. 달달한 배경음악? 그런 거 없다. 화려한 입성의 여성들? 역시 없다. 가슴 설레는 로맨스? 당연히 없음. 남성이라고는 대통령 측근이라는 부장이 나올 뿐이고 그마저도 인성 쓰레기로 등장한다. 선은 남영동에 끌려가고 미쓰 리의 이름을 알지 못해 풀려나온다. 


우리에게 필요한 장르는 러브가 아닌 누아르라고 선은 말한다. 사랑하는 대신 싸우고 배신하고 쟁취하는 것. 사랑을 하게 된다면 살벌하게 해내는 것. 한정현의 칙릿은 환상 소설이 되었고 결코 여성은 현실에서 일과 사랑에 성공할 수 없고 그런 서사를 보고 싶다면 장르를 바꿔야 한다. 오로지 상상과 환상에 기반한. 미쓰들에게 사랑을 해서 결혼이라는 엔딩만 있어야 하고 누아르는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기필코 살아남아야 한다고 『러브 누아르』는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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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내연애 이야기 달달북다 2
장진영 지음 / 북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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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지금껏 장진영이라는 소설가를 몰랐을까. 그래. 내가 모든 소설가를 다 알 순 없지. 내가 문학의 신도 아니고 어떻게 모든 작가를 다 알 수 있겠어.라고 위안 삼아 보지만 소설 더 열심히 읽어내자 다짐도 다시 한다. 내가 알든 모르든 작가들은 쉬지 않고 아니 쉬엄쉬엄 자신만의 속도로 글을 쓰고 있다. 참, 정말, 제대로 다행이다. 


장진영의 소설 『나의 사내연애 이야기』는 앉은 자리 혹은 누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한 번에 읽어낼 수 있는 분량의 소설이다. 나는 이 책을 누운 자리에서 옆으로 돌아눕지도 않고 낄낄대며 폭풍 공감하면서 읽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시원한 바람은커녕 눅눅한 습기만 남은 이 늦여름에 지쳐 있더라면 『나의 사내연애 이야기』를 추천한다. 


살면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 두 가지를 이야기해 주면서 소설은 시작한다. 그 두 가지란 CC와 사내연애. 주인공 배수진은(맞다. 배수의 진을 친다고 할 때 그래서 주인공 이름을 배수진이라고 소설가는 작업 일기에서 밝힌다) 고졸이라 CC는 안 해보고 어렵게 들어간 모델 에이전시 회사에서 사내연애를 그것도 두 명의 남자와 한다. 


어떤가. 이쯤 되면 소설의 흥미가 마구 생기면서 읽어봐야 할 의무감이 끓어오르지 않는지. 미리 보기로 앞 장을 읽고 도파민이 싸악 돌아서 주문했다. 바로 다음날 도착해서 작고 귀여운 판형의 『나의 사내연애 이야기』를 읽어 나갔다. 우리의 주인공 수진은 고졸로 입사를 해서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업무를 한다. 


산책 삼아 숙취해소 음료 사러 가기. 산책 삼아 모델의 바나나우유 사러 가기. 산책 삼아 콜라 사러 가기. 대표가 부르면 달려가서 거래처 돌 때 대표의 클러치백 거치대 역할. 대표가 기르는 난과 분재에 물 주기. 모델 발굴해서 키우는 업무는 하지도 못하고 산책 삼아 물건 사러 다니는 수진. 그래도 긍정의 아이콘인가 할 정도로 수진은 밝다. 


그 와중에 부서가 다른 팀장 두 명과 몰래 만난다. 한 명은 입사 초기부터 무뚝뚝하게 굴다가 담담하게 반했다고 고백한 목지환 팀장. 한 명은 대표가 갈굴 때 상담과 위로를 해준 이승덕 팀장. 수진은 두 명과 만남을 이어갔고 불굴의 의지로 모델을 발탁하면서 일도 해나간다. 『나의 사내연애 이야기』는 심각하지 않고 간간이 웃기고 어이없어 기가 막힌데 또 웃겨서 읽으면 읽을수록 이상하게 신이 나는 소설이다. 


심부름만 하다가 회사 생활 끝나는 거 아닌가, 우리의 수진이. 그렇지 않고 소설은 신이 나서 신이 나는 대로 흘러간다. 소설가 본인이 쓴 『나의 사내연애 이야기』의 작업 일기 역시 재미있다. 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 소설뿐만 아니라 모든 책이 재미있어야 하지 않을까. 재미 정도는 기본으로 있어야 텍스트힙인가 그런 게 유행한다던데 재미가 있어야 책을 사서 읽겠지. 


텍스트힙이든 뭐든 책을 사서 책을 읽는 척만 해도 즐거울 수 있다면 문학의 역할은 다했다고 생각한다. 하지 말라는 건 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 두 가지를 하지 말라고 하면 두 가지를 해봐야 한다.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놓고 후회하는 게 짧디짧은 인간사를 볼 때 개이득.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을 때 배달음식 시켜 먹고 책 주문해서 나를 설레게 하기. 책 읽다가 시간이 훌쩍 간 거 보고 다시 잠들기. 아드레날린에 이어 도파민의 힘으로 하루 보내기. 나만 이상한 거 아니잖아. 위안 받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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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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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가면 무엇이 있으면 좋을까. 생각나는 도시 괴담 하나. 침대 밑에 사람이 있는 것보다 귀신이 있는 게 더 괜찮다는 이상한 밸런스 게임. 그치. 사람이 있으면 죽을 텐데 귀신이 있다면 내가 지금 미쳐 있구나 하는 정도겠지. 다행히 센서 등은 고장이 나지 않아서 문을 열면 2초 후에 불빛을 내어준다. 그전에. 집 앞에 택배가 있으면 내돈내산이지만 선물 같은 착각으로 일시적으로 마음이 환해질 수 있겠다. 


매일의 택배라면 무엇이 좋을까 하다가 그래 책! 만 오천 원 이상이면 무료배송이니 딱 한 권씩 책 택배가 오게 하자. 13년 만의 장편소설 신간이라는 말에 시간이 그렇게 되었단 말인가 하면서 주문한 김애란의 『이중 하나는 거짓말』을 받아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정리 다 해놓고 책을 펼쳤을 때 그 안에 책표지와 같은 엽서가 있었다. 이런 게 좋다.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뜻밖의 선물 같은 한 장의 마음을 받아드는 일. 주황색 불빛 아래에서 천천히 엽서를 읽어갔다. 그중에.


나이 들어 더 느끼는 바지만 시간은 가차없고 시간은 무자비하지요. 하지만 가끔 출발점과 도착점 사이에 어떤 선이 생겨, 이런 이야기를 선물해 주는 게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그 '선' 덕분에 저 또한 사람을 대하는 마음과 눈이 더 깊어졌고요. 그 사이 여러분은 어떤 시간을 보내셨나요? 어떤 이야기에 다치고, 어떤 거짓말에 기대고, 또 어떤 말 때문에 웃으셨을까요? 그 시절을 제가 감히 다 짐작할 순 없지만, 지금도 또 앞으로도 여러분이 가증한 한 좋은 이야기 속에 머무셨으면 좋겠습니다.

(2024년 늦여름 김애란)


장편소설은 쓰지 않았지만 그동안 단편과 산문을 썼다고 소설가 김애란은 밝힌다. 13년의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장편소설만을 쓰지 않았을 혹은 쓰지 못했을 뿐이다. 쓰지 않아도 쓰지 못해도 쓰는 시간이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을 읽어 가기 전 엽서에 적힌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어떤 이야기에 다치고'(모든 이야기에 다친 것 같아요), '어떤 거짓말에 기대고'(우리, 나중, 계획이라는 말이 거짓말 같았어요), '어떤 말 때문에 웃으셨을까요?'(일상 대화하다가 뜬금없는 말들에 웃어요)


이런 다정한 질문들이라면 새벽이 가깝도록 내밀한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행히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하는 독자라서 소설가의 늦여름에 도착한 소설과 편지에 주접을 떨지 않을 정도의 슬픔과 기쁨을 표현할 수 있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에는 소리, 지우, 채운이라는 세 아이가 등장한다. 모두 혼란스럽고 어쩔 줄 모르는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다. 그 시절 세상은 왜 내게만 각박하게만 구는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징징대고 싶었다. 


세계는 나로 인해 돌아가야 하는데 한편으로는 나를 제외한 채 잘만 굴러가는 듯해 억울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는 시기, 청소년기. 세 아이는 각자의 비밀을 끌어안으면서 시절을 지나온다. 같은 반이지만 접점이 없이 지내던 세 아이는 그림과 도마뱀, 손의 감촉을 통해 서로를 알아간다. 그들이 모인 반의 담임 선생님은 특이한 자기소개를 제안한다. 다섯 문장으로 자기소개를 하는데 그중 하나에는 반드시 거짓말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 


다섯 문장 안에 들어 있는 하나의 거짓말을 맞춰야 한다. 나를 표현하는 문장을 만들고 거짓말을 섞으면서 진짜 나의 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 속에 진실처럼 숨어 있는 거짓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거짓말로 위장했지만 실은 무거운 진실이어서 차라리 거짓이면 좋을 나의 비밀. 나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 했지만 나조차도 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미래라고 부르는 어느 시간, 그러나 현재. 


나는 친구 만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나는 불량학생이었습니다.

나는 부모님이 있습니다.

나는 미래를 계획합니다. 

나는 사랑이 전부입니다.


이중 하나는 진실이다. 소설 속 자기소개와는 반대로 가보았다. 모든 것이 거짓이어도 단 하나의 진실만을 내게서 찾을 수 있다면 당신의 어느 시간과 나는 함께 할 수 있겠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 속 세 아이들에게 나이만 먹은 채 어른이 되어 버린 내가 겨우 해줄 수 있는 말은 기쁘게도 없다. 대신 손을 잡아주고 엉망인 글씨로 편지를 써주는 정도. 매일 내가 나에게 선물을 해줄 수 있는 오늘을 지낸다면 그걸로 괜찮은 정도. 지쳐도 괜찮고 아파도 괜찮다. 늦여름인 오늘을 살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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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국을 말하다
장강명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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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에는 너무 많은 자극과 도파민이 몰려온다. 전화를 하고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대체로 나는 이해력이 부족해 한 번 이야기하면 이해하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건 안 좋다. 나를 어느 정도 알면 그러려니 넘어가는데 나를 잘 모르는 인간들이 대부분이라 내가 예? 하는 순간 공기의 흐름이 달라진다. 그래도 무조건 네네 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일을 망칠 수도 있기에. 상대가 뭐라 하든 한 번 더 말해달라고 한다.


그리하여 금요일 밤부터는 고요와 침묵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한때 밤을 새워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기도 했다. 지금은 집에 들어와 마음에 드는 노래 한 곡을 반복해서 틀어 놓고 멍 때리는 게 힐링이다. 그동안 나 어떻게 시리즈물을 지치지도 않고 본 건가. 지금의 나는 스트레스와 도파민에서 벗어나고 싶은 걱정이 많은 한 사람일 뿐이다. 


책이 있다. 책을 산다. 책을 읽는다. 아무도 없는 침묵의 시간에 책을 사서 읽는다. 밥 먹을 때 영상 보는 걸 제외하고는 주말에 책을 읽는다. 활자 중독인 사람처럼. 주로 빨리 읽을 수 있는. 성취감이 들만한 책들로 고른다. 일하다가 기분이 짜치면 인터넷 서점 앱에 들어가 신간을 훑는다. 왜 이렇게 쿠폰을 계속 주는 걸까. 나 사찰하고 있는 거임? 


『소설, 한국을 말하다』 역시 다 때려치우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고개를 숙이고 올라온 신간 목록을 스크롤 하다가 발견했다. 문화일보에 연재된 4000자 안팎의 짧은 소설을 모았다. 당대, 지금, 여기의 한국을 말할 수 있는 소재로 말이다. 새벽 배송, 돈, 식단, 거지방, 고물가, 다문화 가족, 팬심, 중독 등의 한국을 조명할 수 있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걱정이 사라지는 건 아닐 테고. 그럼에도 걱정에 충실한 여기의 한국 독자는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위로를 받고 싶다. 구박사 님의 탁월한 혜안의 알고리즘만으로는 걱정과 불안과 외로움이 사라지진 않는다. 주말 아침에 일어나 유튜브만 보고 있는 것도(그게 왜 나쁘냐? 쉴 때는 쉬자, 나님아) 게을러 보이기에(누가 그렇게 보는데? 너 님이?) 『소설, 한국을 말하다』를 펼친다. 


명품 가방을 사기 위해 줄서기 알바를 하고 거지방에 들어가 오늘의 절약 생활을 보고 한다. 오랜 공부 끝에 공무원이 되었지만 악성 민원인에게 시달리고 가족을 위해 타국에 와서 일을 하지만 억울한 일의 연속이다. 한 주 동안의 노동, 한 주 동안의 불안, 한 주 동안의 이해할 수 없음에 대해. 요동치는 마음을 보고만 있기에 그런 걸 방관하지 않으려고 『소설, 한국을 말하다』를 읽다가 미래라는 말은 쉽게 가질 수 없을 것 같아 현재를 끌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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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긍정의 말들 - 삶이 레몬을 내밀면 나는 레모네이드를 만들겠어요 문장 시리즈
박산호 지음 / 유유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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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죽는 거 아닐까.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할 정도로 아팠다. 근육통과 오한이 들어서 (이런 걸 몸살이라고 한다지) 어제는 내내 힘들었다. 이렇게 아파본 지가 참으로 오랜만이라서 어떻게 병증을 맞이해야 하는지 당황스러웠다. 한때 여름만 되면 아팠는데 그 시간이 다시 찾아온 것 같아 두려웠다. 병원에 가도 어지럼증과 구토 약만 줄 뿐이라서 병원에 가지 않고 버틴다. 


빨리 낫고 싶어서 빈속에 약을 계속 먹어댔다. 자면서 꿈을 꿨던 것 같기도 한데 다 까먹었다. 옷이 다 젖을 정도로 땀을 내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프기 전에 아플 것 같은 예감이라니. 이런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번역가 겸 소설가인 박산호의 『긍정의 말들』을 읽지 않았다면 이런 처지를 비관만 했겠지. 아프기 전에 읽어두길 다행이다. 


박산호가 읽고 보고 들었던 긍정의 말을 한 페이지에 띄워 놓고 그 옆엔 자신의 사유를 펼쳐 놓는다. 주로 경험하고 느낀 내용이라 이해가 쉬웠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프리랜서라는 직업의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주고 나이가 먹으면서 따라오는 신체의 변화, 딸아이가 가지는 불안함과 삶을 사는 것 자체의 고단함이 긍정의 말과 함께 책에 실려 있다. 


그중에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말 '지금 밑바닥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진짜 밑바닥이 아니라는 뜻이다.' 와 로버트 브롤트의 말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간 다음 뒤로 한발 물러서는 것은 재앙이 아니라 차차차를 추는 것이다.' 가 인상에 남는다. 모두 절망과 바닥, 힘겨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을 때 마음에 확 꽂히는 문장은 지금의 심정을 대신 말해주는 문장이다. 


요즘도 그렇지만 한때는 내가 감정 쓰레기통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진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봐야 하는 인간들이 하나같이 나에게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통에 내가 고통에 빠질 지경이었다. 부정적인 말을 많이 듣다 보니 안 그래도 불안과 걱정을 달고 사람인데 세상의 모든 부정스러움이 내게로 달려드는 경험이었다.


좋아, 해보자, 가보자, 만나자, 치맥, 그날에 우리가 가야 하는 곳, 도시락, 수박, 개봉 예정의 영화. 좋고 이쁜 말들이 이렇게나 가득한데. 일로 만난 사이여도 말해보는 거다. 사귀는 사이에는 더더욱 상대를 위해주는 말을 해보는 거다. 각자의 부정을 나누는 게 아닌 각자의 긍정을 보여주고 가질래? 간지럽지만 말하면서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가야지. 그래야 지구 종말의 위기에도 사랑이 남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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