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흘리는 글 - 내일도 일터로 나아갈 당신을 위하여 땀 시리즈
송승훈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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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힘든 거 아니다. 모두 지치고 힘들다. 힘을 내보자. 해도 힘들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얼굴에는 티가 난다. 찬물을 들이키고 심호흡을 한다. 애를 써보자. 없는 영혼이라도 불러오자. 멘탈이 탈탈 털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더 지치곤 해. 내 뒷모습에 패닉의 달팽이 노래가 깔리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노동은 신성하다고 했다. 누군가 그랬다. 누가 그랬냐. 신성하다고 하니 열심히 노동을 했다.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고 했다는 말까지 덤으로 들으면서. 학교 졸업하고 바로 일을 구했다. 엄마가 한 달까지만 생활비를 준다고 했다. 100만 원이라고 했는데 실수령액은 90만 원을 받았다. 1년 6개월을 90만 원 받고 차비로 30만 원을 썼다. 뭘 모르고 몰라서. 출퇴근이 힘들어서 그만두고 쉬었다. 벌어 놓은 돈을 까먹으면서. 통장 잔고가 0으로 다다를 때 다시 일을 구했다.


일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다시 들까 봐 마음을 다잡기 위해 『땀 흘리는 글』을 읽었다. 창비교육에서 나오는 '땀 흘리는 시리즈' 중의 한 권이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글의 모음이다. 노동의 현장에서 직접 겪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글을 읽으며 이렇게 쓰고 싶다고 나는 왜 이렇게 못 쓰는 건가 생각했다. 진솔하고 구체적이다. 화려한 기교 없이도 마음을 울린다. 모두 체험의 글이기 때문이리라.


작사가, 소설가, 선생님, 의사, 간호사, 교도관, 요리사, 아르바이트생, 콜센터 직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노동을 하며 느꼈던 감정을 풀어 놓는다.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일을 하며 겪어야 했던 부당함, 자신을 놓을까 봐 두려웠던 시간까지 들려준다. 부당 해고 이후의 시간. 일을 하다 다쳐 산재를 받기까지 과정. 일과 생활의 균형에 대해. 퇴사를 소비하는 행태.


『땀 흘리는 글』에는 꼭 알아야 하고 필요한 정보가 위로의 글과 함께 있다. 알바도 산재를 신청할 수 있고 비용이 부담 되면 고용노동청에 가서 노무사에게 무료 상담을 받을 수 있다. 고수익 보장한다는 구인 광고는 피해야 하고 스트레스에 짓눌리지 말고 적당히 달래고 져주기도 해야 한다는 것. 나만 힘든 게 아닌 땀 흘리며 살아가는 모든 이가 오늘 하루도 수고하고 있음을 한 번 더 깨닫는다.


힘들면 때려치우면 되는 거 아냐. 말할 수도 있지만 『땀 흘리는 글』에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용기가 아닌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버티는 내가 바보가 아니라고 말해주어서 고마웠다. 노동은 신성하지 않으며 신성한 건 노는 것이라고도 일러준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월요일이 두렵지 않을 때까지. 성실, 근면, 노력, 열정이라는 허울 좋은 말로 우리의 내일을 압류 당하지 않게 되기를.


'토요일 땀의 방향'이라는 챕터 아래에는 이런 해시태그가 달려 있다. #퇴사하면 #입사하고싶고#입사하면#퇴사하고싶고. 힘들다고 징징대지만 내일도 알람이 울리면 성실하고도 근면하게 씻고 버스를 타러 갈 것이다. 스트레스에 비례해 통장 잔고가 쌓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날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착각 같은 마음을 품고서. 숨쉬기를 잊지 않으며. 이래저래 지쳐 있다면 『땀 흘리는 글』을 추천합니다. 일단 글이 짧고요. 쉬워요. 내 마음이 네 마음? 공감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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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크린 말들 - 말해지지 않는 말들의 한恨국어사전 우리시대의 논리 24
이문영 지음, 김흥구 사진 / 후마니타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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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제일 좋아한다. 중학교 때 읽은 책인데 여전히 나만의 최애 소설 1위에 자리 잡고 있다. 소설을 읽으며 받은 충격을 잊을 수 없다. 단문으로 끊어치며 이야기를 끌고 간다. 아름다운데 슬프다. 집을 잃어버린 난장이 가족의 비애. 1970년대에 쓰인 소설에서 현재를 읽을 수 있었다. 빈곤과 고독이 소외와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 난쏘공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서류를 준비하는 일이 어렵다. 책을 좋아해서 글을 많이 읽는다고 자부하는데도. 한국말로 적힌 문서를 해독하는 일은 지난한 일이다. 공부할 때도 그렇지 않았는데 밑줄을 치고 수없이 반복해서 읽었다.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 내가 자격 조건이 될 수 있을까. 그런 마음으로. 모든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해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고 해보지만 매일의 실패를 경험한다.


이문영의 『웅크린 말들』은 한국어의 의미를 재해석한다. 나라 한韓을 쓴 한韓국어가 아닌 한스러움의 한恨으로 쓰이는 한恨국어의 진위를 찾아간다. 외면한 채 발화되지 않는 말을 보여준다. 노동하는 자가 있다. 시위하는 자가 있다. 진실을 밝히려는 자가 있다. 우리말은 간악한 속임수를 써서 약자를 괴롭힌다. 말로 장난을 친다. 광부, 노동자, 에어컨 기사, 콜센터 직원, 알바생, 이주 노동자, 성소수자, 밀양 사람들, 세월호 가족 들을 문장으로 불러온다.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받아 적는다. 때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고독사로 세상을 떠난 경우. 이미 죽은 그들과 어떻게 만난단 말인가. 이문영은 만난다. 죽은 이를 불러온다. 그들이 홀로 방에서 죽음과 대면했을 때를 상상한다. 말은 힘이 세다. 그 센 말로 누군가를 아프게 한다. 이주 노동자를 위한 매뉴얼에 적힌 한恨국어는 부끄러울 지경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사랑의 정의는 과연 이 세계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웅크린 말들』은 논픽션이다. 그런데 문학이다. 이야기를 지어서 썼다는 게 아니다. 문장이 표현이 세계를 대하는 방식이 처참하게 아름답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덮인 혐오의 말. 노무 계약서에 명시된 이상한 조항. 삼성에서 일어나는 기괴하고 상식적이지 않은 계약의 언어가 펼치는 난장. 폐광 광부들이 전기를 이어서 불을 밝히고 카지노에서 청소를 한다. 이런 것만 보면 처참하다.


처참한데. 『웅크린 말들』을 읽고 나면 차별의 언어를 모으기 위한 분투의 기록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웅크린 말들』은 2000년 대판 난쏘공이라 불린다. 곁에 있지만 일부러 눈을 감으며 외면했던 이웃의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밀 농사를 하고 싶어 했던 농민 백남기. 강정 마을에서 간첩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기록을 멈추지 않는 박인천. 보증금을 주지 못했는데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들어 경찰에게 전화를 거는 집주인.


모두 나이며 우리였다. 나와 우리의 현실을 『웅크린 말들』은 처연하게 때론 비장하게 나중에 가서는 가슴 먹먹하게 이야기한다. 말이 말 같은 말로 쓰여야 하는데. 말이 무기가 되어 심장을 베어낸다. 책을 읽고 나면 부끄러움과 참담함을 느끼겠지만 그럼에도 『웅크린 말들』을 꼭 읽어야 한다. 우리는 한韓국이 아닌 한恨국에 살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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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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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손을 보니 이상한 게 보였다. 얼룩인가. 손가락으로 문질렀는데 안 지워졌다. 밝은 곳으로 가서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갈색 점이었다. 그게 그러니까. 검…검…버섯. 아니라고 말해줘. 눈물 닦는다. 어쩔 수 없지. 자연스러운 현상인 거니까.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는 거겠지. 손등을 보다가 나이 먹음을 실감했다. 다른 시간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 자기 연민에 빠지기에는 이런저런 복잡한 일에 마음을 더 빼앗기고 있으니까.


여섯 명의 소설가들이 모여 할머니를 주제로 쓴 테마 소설집 『나의 할머니에게』는 미래의 나를 상상하게 만든다. 첫 단편인 윤성희의 「어제 꾼 꿈」을 시작으로 백수린, 강화길, 손보미, 최은미, 손원평의 소설이 펼쳐진다. 나이 들어 버린 오늘에 회상하는 젊은 과거의 나. 가장 가까운 이들이 죽음으로 가출로 떠나고 홀로 남아 있는 공간에서 시간은 정지한다.


할머니로 불리는 것이 꿈인 할머니. 부모가 부재하는 자리에서 유년을 돌보아준 할머니. 치매로 기억을 잃어버리고 식탐이 늘어난 할머니. 가진 것이 많아 죽음 뒤에 이상한 유산을 남겨 놓고 간 할머니. 딸과 엄마를 거쳐 할머니까지 된 할머니. 미래에 홀로 남겨진 할머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할머니라고 불리고 할머니가 되어 미래의 어느 시점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전에 지구에서 사라질지도 모를 텐데. 가능하면 할머니라고 불리면서 살아가고 싶지만 장담할 수 없다. 윤성희의 소설에서 주인공은 손주가 생겨 할머니라고 불리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동생의 손녀가 만드는 마녀 수프를 끓이며 그런 소원을 빌었다.


백수린의 「흑설탕 캔디」는 죽은 할머니가 꿈에 찾아온다. 그녀에게서 달콤한 냄새가 나자 손녀는 말한다. "할머니, 손을 펴봐." 할머니는 주먹을 꼭 쥔 채 "이건 내 것이란다." 말하며 소설은 끝이 난다. 아낌없이 받았으면서도 더 무엇을 바란 걸까. 「선베드」는 강화길 특유의 비틀린 시선이 소설의 분위기를 차지한다. 착하게 구는 것과 착한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착하게 구는 게 더 힘이 든 세상인데.


할머니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할머니라고 불리며 좋아하는 텔레비전을 보며 저녁을 먹고 시장에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할머니가 되지 못한 여자. 할머니가 되기를 포기한 여자. 저출산의 미래를 암울하게 그려낸 손원평의 「아리아드네 정원」의 결말은 모두에게 찾아올 어느 날인 것 같다.


소설의 중간에 끼어 있는 그림을 펼쳐보며 과거를 떠올려 보기. 소설을 읽으며 미래를 상상해 보기.


나의 할머니는 없지만 너의 할머니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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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도 인생이니까 - 주말만 기다리지 않는 삶을 위해
김신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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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지금은 주말이다. 토요일 저녁. 고기와 밥을 양껏 먹었다. 뿌듯하다. 늦게 일어났다. 원래 늦게 일어나는데 더 늦게 일어났다. 날이 흐렸다. 비가 오려는지 습기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다. 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복숭아 한 상자가 9900원 하길래 바로 집어 왔다. 계산해 주시는 분이 잘 골랐다고 했다. 칭찬받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얼른 파채를 양념에 버무리고 남은 김치찌개를 데웠다.


유퀴즈온더블럭을 보면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게스트와 이야기하는 장면은 건성으로 보고 퀴즈를 맞히는 부분에서는 놀랍게도 집중해서 본다. 맞추면 현금으로 100만 원을 준다. 와. 내가 출연해서 맞히지도 않을 건데. 나 왜 상상하냐. 100만 원 받으면 하는. 상상은 돈도 안 드니까. 해 보자. 마트 가서 과자와 고기를 플렉스 하고. 하고. 하고. 저금할 게 뻔하다. 받아도.


주말은 이렇게 먹방과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지나간다. 그러다 일요일 저녁에는 급우울. 김신지의 『평일도 인생이니까』는 즐겨보는 브이로그에서 추천하길래 읽었다. 월 화 수 목 금요일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며 사는지 얼른 스킵 해버려야 할 것 같은 유튜브 광고쯤으로 여기는 것 같아서 뜨끔해서. 매일 주말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고행으로 여기며 지내는 걸 반성하는 의미에서.


좀처럼 끝이 나지 않고 해결이 안 날 것 같은 일에서 잠시 벗어나고자 『평일도 인생이니까』를 읽어나갔다. 책을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무엇이 되겠다가 아닌 무엇을 하겠다로 생각을 전환하라는 부분에서 무릎을 탁 치고 머리를 탁 쳤다. 지금까지 나는 허황된 꿈의 세계에 사로잡혀 있었다. 과대한 망상에 빠져 지냈다. 언젠가는 되지 않을까. 실천은 하지 않으면서 꿈만 꾸는 바보.


김신지는 충동적으로 이사를 간다. 테라스가 있는 집으로. 얼렁뚱땅 이사를 갔지만 대만족. 정든 집과 이별을 하고 새로운 시작을 맞이한다. 무모하고 후회로 가득했던 이십대를 지나 인생의 짝꿍을 만나고 부모님과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불투명한 내일에 기댈 것이 아니라 오늘을 즐기고 충실할 것을 이야기한다. 어른의 정의를 다시 한번 생각하고 서른이 넘어도 인간관계는 어렵다고 토로한다.


책을 읽는 이유는 이것이다. 나만이 그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니구나.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는 위안을 받을 수 있구나. 마음을 궁금해하는 사람에게 더 마음을 주는 일. 누군가의 가능성에 의문을 품지 않는 일. 불편을 감수하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아가지 않는 일. 『평일도 인생이니까』에는 또래 친구 같은 어조로 나의 오늘에 안녕을 빌어준다. 기복이 없는 마음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


화를 내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싶은데 마음은 자꾸만 삐죽삐죽 날이 서 있다. 그러지 않기 위해. 나의 내일을 싫어하지 않기 위해. 『평일도 인생이니까』를 읽으며 마음을 달랜다. 월요일이 다가온다는 것. 살아 있음에 감동하며 살아가는 것.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을 수 있음에 무한한 행복을 느낀다. 맞다. 고기도 먹어서 그런 것도 있다. 기름진 거 먹고 달달한 거 마시고 『평일도 인생이니까』를 읽으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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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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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연대는 약하다. 어떤 연대는 분열이다. 『붕대 감기』는 연대 안에 도사리고 있는 협잡과 의심을 배제할 수 있다면 그것을 희망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으로 쓰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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