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크린 말들 - 말해지지 않는 말들의 한恨국어사전 우리시대의 논리 24
이문영 지음, 김흥구 사진 / 후마니타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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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제일 좋아한다. 중학교 때 읽은 책인데 여전히 나만의 최애 소설 1위에 자리 잡고 있다. 소설을 읽으며 받은 충격을 잊을 수 없다. 단문으로 끊어치며 이야기를 끌고 간다. 아름다운데 슬프다. 집을 잃어버린 난장이 가족의 비애. 1970년대에 쓰인 소설에서 현재를 읽을 수 있었다. 빈곤과 고독이 소외와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 난쏘공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서류를 준비하는 일이 어렵다. 책을 좋아해서 글을 많이 읽는다고 자부하는데도. 한국말로 적힌 문서를 해독하는 일은 지난한 일이다. 공부할 때도 그렇지 않았는데 밑줄을 치고 수없이 반복해서 읽었다.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 내가 자격 조건이 될 수 있을까. 그런 마음으로. 모든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해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고 해보지만 매일의 실패를 경험한다.


이문영의 『웅크린 말들』은 한국어의 의미를 재해석한다. 나라 한韓을 쓴 한韓국어가 아닌 한스러움의 한恨으로 쓰이는 한恨국어의 진위를 찾아간다. 외면한 채 발화되지 않는 말을 보여준다. 노동하는 자가 있다. 시위하는 자가 있다. 진실을 밝히려는 자가 있다. 우리말은 간악한 속임수를 써서 약자를 괴롭힌다. 말로 장난을 친다. 광부, 노동자, 에어컨 기사, 콜센터 직원, 알바생, 이주 노동자, 성소수자, 밀양 사람들, 세월호 가족 들을 문장으로 불러온다.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받아 적는다. 때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고독사로 세상을 떠난 경우. 이미 죽은 그들과 어떻게 만난단 말인가. 이문영은 만난다. 죽은 이를 불러온다. 그들이 홀로 방에서 죽음과 대면했을 때를 상상한다. 말은 힘이 세다. 그 센 말로 누군가를 아프게 한다. 이주 노동자를 위한 매뉴얼에 적힌 한恨국어는 부끄러울 지경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사랑의 정의는 과연 이 세계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웅크린 말들』은 논픽션이다. 그런데 문학이다. 이야기를 지어서 썼다는 게 아니다. 문장이 표현이 세계를 대하는 방식이 처참하게 아름답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덮인 혐오의 말. 노무 계약서에 명시된 이상한 조항. 삼성에서 일어나는 기괴하고 상식적이지 않은 계약의 언어가 펼치는 난장. 폐광 광부들이 전기를 이어서 불을 밝히고 카지노에서 청소를 한다. 이런 것만 보면 처참하다.


처참한데. 『웅크린 말들』을 읽고 나면 차별의 언어를 모으기 위한 분투의 기록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웅크린 말들』은 2000년 대판 난쏘공이라 불린다. 곁에 있지만 일부러 눈을 감으며 외면했던 이웃의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밀 농사를 하고 싶어 했던 농민 백남기. 강정 마을에서 간첩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기록을 멈추지 않는 박인천. 보증금을 주지 못했는데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들어 경찰에게 전화를 거는 집주인.


모두 나이며 우리였다. 나와 우리의 현실을 『웅크린 말들』은 처연하게 때론 비장하게 나중에 가서는 가슴 먹먹하게 이야기한다. 말이 말 같은 말로 쓰여야 하는데. 말이 무기가 되어 심장을 베어낸다. 책을 읽고 나면 부끄러움과 참담함을 느끼겠지만 그럼에도 『웅크린 말들』을 꼭 읽어야 한다. 우리는 한韓국이 아닌 한恨국에 살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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