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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의 맛 ㅣ 문학동네 청소년 48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5월
평점 :
중학교 때는 나름대로 친구들과 어울려서 놀기도 했다. 모두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은 아이들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시내를 가로 질러갔다. 시장에 들러 떡볶이집에 갔다. 교복 주머니를 뒤져 삼천 원을 만들어 냈다. 떡볶이 한 접시 앞으로 모두 모여. 당면과 어묵과 밀떡이 고추장 양념에 적절히 묻어 있었다. 짜고 달고. 국물까지 먹고 싶은 맛이었다. 먹고 나서 각자 집으로 쿨하게 헤어졌다. 숙제가 있으면 집에 모여 하기도 했는데 대개는 집으로. 안녕 안녕 몇 번 인사해 주면 끝.
고등학교를 따로 가면서 그때의 친구들과는 소홀해졌다. 다들 그러하겠지. 만났다가 친해지고 그러다 헤어지고 잊히는 무한 반복의 나날로 들어가겠지. 없으면 못 살 것 같이 어울려 다녔는데 막상 안 보면 또 안 보는 대로 살아진다. 조남주의 소설 『귤의 맛』에는 네 명의 친구들이 나온다. 다윤, 소란, 해인, 은지. 얼굴, 성격, 집안 환경, 성적, 관심사가 다른 그들이 친해진다. 비슷한 구석이 있어야 친구가 될 것 같지만 비슷한 구석을 찾으려고 친구가 되기도 한다.
은지의 주도하에 가게 된 제주도 여행에서 즉흥적인 제안을 한 건 다윤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다윤은 경인 외고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아픈 동생이 있는 다윤은 늘 뭐든지 동생에게 양보를 했다.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서 공부를 했다. 하다 보니 잘했다. 모두의 기대에 맞게 경인 외고를 가면 되는 다윤. 그 밤, 다윤은 은지, 해인, 소란에게 함께 신영진고를 가자고 한다.
해인은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갑자기 자신을 가람여고에 보내는데 사활을 거는 게 부담스럽다. 이모집으로 위장 전입을 해 놓기는 했는데 꺼림직하다. 은지는 엄마가 자카르타 주재원으로 가기 위해 신청을 해 놓은 상태다. 소란은 공부를 잘하는 다윤과 신영진고에 가고는 싶다. 다윤의 충동적인 제안이지만 그들은 헤어지지 않고 신영진고에 가기로 약속을 하고 타임캡슐을 묻는다. 약속대로 네 명의 아이들은 신영진고에 갈 수 있을까.
『귤의 맛』은 내가 좋아하는 성장 소설이다. 나는 아직 자라지 않은 걸까. 나이만 들어서 어른인 척하고 있는 걸까. 부끄럽고 미숙한 그 시절을 잊지 못하고 있어 그때를 환기하는 소설을 읽으며 추억을 다듬어 가고 있다. 소설 속 네 명의 친구를 보며 꼭 해야 했어야 할 말, 안녕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떠나보내야 했던 기억에 아쉬워한다. 『귤의 맛』의 친구들은 서로를 좋아하고 미워하고 다시 애틋해 하며 시간을 이어 나가는 방식으로 성장한다.
은지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초록색일 때 수확해서 혼자 익은 귤. 그리고 나무와 햇볕에서 끝까지 영양분을 받은 귤. 이미 가지를 잘린 후 제한된 양분만 가지고 덩치를 키우고 맛을 채우며 자라는 열매들이 있다. 나는. 그리고 너희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
(조남주, 『귤의 맛』中에서)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었다. 초록색 열매인 나는. 물과 햇빛과 양분을 갈구했다. 그러면서도 독립된 채 살아가고 싶었던 이중성의 자아를 짊어지고 살았다. 불안하고 비밀스러움으로 가득했던 시간을 지났다. 우정을 쌓고 인간에 대한 연민을 배우고 싶었다. 『귤의 맛』에는 치열한 우정을 쌓아가는 아이들이 있다. 지금의 시간을 한때의 애틋한 기억으로 남겨두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는 아이들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놀라운 힘이 되어준다. 어떤 어른의 모습으로 살아갈지 아직은 몰라도 된다고 이야기한다. 혼자 익든 충분한 영양분을 받아 익든 우린 모두 귤이 된다. 초록의 시간을 견뎌 노랗고 새콤한 어른의 시간으로 나아간다. 코로나19로 당연하게 여기던 일상의 모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은 졸업식과 입학식을 하지 못했고 마스크 쓴 얼굴만을 보며 묵묵한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이 또한 지나갈 거라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은 바람으로 『귤의 맛』이 쓰였다.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지금이지만 『귤의 맛』이 따뜻한 위로가 되어 아이들의 어깨를 토닥였으면 좋겠다. 우린 괜찮아. 무언갈 모른다고 해서 나빠지지 않아. 무사한 너의 오늘을 응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