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티튜트 1~2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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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이 기어이 나를 울리고야 말았다. 예능 보다가도 눈물이 찔끔 나는 요즘이다. 누가 우는 걸 보고 있으면 같이 마음이 짠해진다. 뜨이씨.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다. 『인스티튜트』를 읽은 건. 공포, 호러의 제왕인데. 아니다. 스티븐 킹은 신파, 감동의 황제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주제로 소설을 쓰는 그이지만 그 안에는 인류애, 우정, 사랑이 깔려 있다. 인간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으며 사랑만이 전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고 킹의 소설은 이야기한다. 뻔한데 뻔하지 않게 쓴다.



집중력이 약해져서 책을 읽을 수 없는 상태라면 스티븐 킹을 읽기를 권한다. 킹의 어떤 소설이라도 좋다. 한 번 그의 소설을 읽기 시작한다면 없던 집중력도 생기면서 장엄하게 펼쳐지는 서사 속으로 빨려 들어가 현실을 잊고야 만다. 시간을 들여서 책을 읽는데 재미와 감동이 보장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스티븐 킹은 단 한 번도 배신을 때린 적이 없다. 오히려 반전과 놀라운 결말로 뒤통수를 칠 뿐이다.


『인스티튜트』의 후반부를 읽으면 누구라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연의 톱니바퀴가 맞물리면서 이야기는 뻗어 나간다. 흩어진 사건의 조각이 모이면서 혼과 눈물을 쏙 빼놓는다. 스티븐 킹. 당신은 정말 찐이다를 외치면서 엉엉. 팀은 전직 경관으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해 있다. 승무원이 경찰에게 자리를 양보해 줄 것을 승객들에게 부탁한다. 팀은 약간 많은 사례금을 받고 비행기에서 내린다.


의도하지 않게 어쩌다 히치하이킹을 하고 꽉 막힌 도로에서 내려 듀프레이라는 작은 마을로 간다. 그곳에서 야경꾼이라는 고전적인 직업을 갖게 된다. 인생. 마음먹은 대로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음을 팀은 직시한다. 불운으로 경찰을 그만뒀지만 훌륭한 경찰의 자질을 가지고 있어 야경꾼으로서 완벽한 적응을 한다. 강도를 붙잡고 시민을 구하기도 하면서.


한편 루크는 천재 소년으로 유명 대학에 들어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열두 살이라는 나이로. 만점에 가까운 성적으로 SAT 시험을 치렀고 교육비와 주거비 지원을 받기로 했다. 특별한 밤이 찾아오기 전까지. 낯선 이들이 루크의 집으로 찾아와 부모님을 죽이고 그를 납치해 간다. 눈을 뜬 루크는 자신의 방과 흡사한 곳에서 눈을 뜬다. 문밖으로 나가고 그곳에서 담배 사탕을 물고 있는 칼리샤라는 소녀를 만난다.


음모론을 믿으시는가.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나는 경우 그 배후에 음험한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가. 지지하던 정치인이 죽거나 영향력이 있는 유명인이 사고로 죽거나 했을 때. 조작이고 날조고 사기라고 소심하게 외쳐본 적이 없는가. 죽음으로 인해 일의 방향이 미세하게 변화했다면? 『인스티튜트』는 세계 평화를 위한다는 사명으로 똘똘 뭉친 비밀 세력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워. 워. 오해는 하지 말고. 이건 어디까지나 소설이니까.


천재 소년 루크와 전직 경찰관 팀이 만나게 되기까지. 만남 이후까지. 『인스티튜트』는 망설이지 않고 질주한다. 루크가 눈을 뜬 그곳의 정체는 무엇인가. 우리의 꼬마 대장 에이버리가 펼치는 활약. 처음으로 다정하게 대해준 친구를 위해 에이버리는 결심을 한다. 에이버리의 생각을 읽는 어느 누구라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데. 『인스티튜트』는 서로를 구할 수 있는 힘은 가식 없는 친절과 애정을 담아 상대를 불러주는 순간에 있다고 말한다.


인간에게는 선한 본성이 숨어 있다고 스티븐 킹은 믿는 듯하다. 전염병이 돌고 자다가 납치를 당하고 동물의 습격을 받는 극한 상황에 내몰려도 진심이 통하는 단 한 사람을 만난다면 어찌어찌 일의 순서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이야기의 제왕은 믿고 있다. 『인스티튜트』는 그 믿음의 결정판 같은 소설이다. 루크와 팀. 루크와 에이버리. 루크와 칼리샤. 루크와 니키. 루크가 만난 그들에게는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힘이 있었다. 2020년 최고의 소설. 『인스티튜트』. 아직 2020년은 안 지났지만.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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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미녀들 1~2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오언 킹 지음, 이은선 외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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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잠자는 미녀들』을 읽는 나흘 동안 신기하게도 피곤하지 않았다. 심지어 졸리지도 않았다. 대개 책을 읽다 보면 잠이 오게 마련이고 잠을 자려고 책을 읽는 탓도 있고 해서 머리맡에 대충 책을 펼쳐둔 채 잠의 나라로 빠지기 마련인데. 책상에 앉아서 독서대도 펼쳐 놓고 정자세로 읽었다. 스티븐 킹이 책에 각성제라도 뿌려 놓은 거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잠이 오지 않았다. 잠시 생각에 빠져 보니 피곤하지도 졸리지도 않은 이유가 있긴 있다.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인 근로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안한 게 아니라 못한 게 되고 말았지만. 힘들고 걱정스러운 이야기는 굳이 해서 누군갈 피곤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으니 패스하고. 아무튼 1200페이지 넘는 소설 『잠자는 미녀들』을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읽었다. 한 번 더 생각에 빠져 보니 소설의 내용이 잠에 빠지면 안된다는 설정 이어서 무한으로 감정 몰입이 된 탓도 있다.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스티븐 킹 미친 거 아냐라는 거였다. 확실히 스티븐 킹은 미쳤다. 미치지 않고서야 사람을 이렇게 미치게 만든단 말인가.


그의 아들 오언 킹과 함께 쓴 『잠자는 미녀들』은 여자들이 잠에 빠지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애팔래치아산맥의 도시를 중심으로 현란하고 폭력적이며 과격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느 날 오로라 병이라고 불리는 수면병이 창궐한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 나오는 그 오로라. 파티에 초대 받지 못해 악의 요정이 건 저주에 빠져 잠만 자는 그 오로라. 오로라 병은 여자들만 걸린다. 여자들이 잠에 빠지면 누에고치 같은 실이 온몸에 퍼진다. 곧 실에 몸이 감싸인다.


당황한 사람들이 실을 걷으면 잠에서 깬 여자들이 폭력적으로 변한다. 괴물 같은 힘으로 주변 사람을 물어뜯고 죽인다. 전 세계에서 그 일이 일어난다. 잠에 빠지면 안 된다! 여성 교도소를 배경으로 『잠자는 미녀들』은 시작한다. 사각형의 창문으로 겨우 들어오는 햇빛에는 관심 없는 저넷. 다양한 죄목으로 교도소에서 살아가는 여자들. 그 안에서도 폭력은 멈추지 않는다. 성폭력을 일삼는 돈 피터스 교도관. 교묘하게 자신의 죄에서 빠져나간다. 정신과 의사 클린트. 그는 재소자들 편에서 편의를 봐주려는 의사이다.


숲 근처 트레일러에서 약쟁이들이 약을 하려는 그때 이비라는 여자가 등장한다. 티파니는 그녀가 혼자 남자 둘을 죽였다고 신고한다. 벽에 던지고 얼굴을 들이 받았다는 것이다. 클린트의 부인이기도 한 라일라는 현장으로 출동한다. 현장 주변에서 피 묻은 옷을 입고 있는 이비를 발견하고 경찰차에 태운다. 이비가 이상하다는 점을 깨닫고 정신 감정을 받기 위해 클린트가 있는 교도소로 데리고 간다. 이비는 묘한 웃음을 짓는다.


점점 여자들이 잠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혼란이 찾아온다. 실에 감기고 그걸 모르고 걷어 냈다가 죽임을 당한다. 곧이어 인터넷에는 잠든 여자들을 불에 태워야 병을 잠재울 수 있다는 가짜 뉴스가 퍼진다. 교도소에서도 여자들이 잠이 든다. 이비는 클린트에게 자신을 일정 시간 보호해 줄 것을 부탁한다. 잠을 자지 않아야 한다는 사명 아래 라일라와 교도소장 재니스, 교도관 바네사가 모인다.


교도소 안에서 이비는 잠이 든다. 그리고 멀쩡하게 눈을 뜬다.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잠에 빠져 깨어나지 못하는데도. 이비의 소문이 돌기 시작하고 딸이 잠에 빠져 분노에 빡친 동물 관리인 프랭크는 경찰관들을 모아 교도소로 들어가자고 한다. 이비를 지켜야 오로라 병에 걸린 여자들을 구할 수 있다고 믿는 클린트는 어떤 작전을 실시할까. 한 번 읽으면 멈출 수 없고 잠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여자들의 고군분투 때문에 읽는 사람마저도 잠을 잘 수 없게 만드는 마법 같은 책, 『잠자는 미녀들』.


여자들이 없는 세상은 어떤 시간의 흐름으로 흘러갈까. 여자 대 남자의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쓰인 책이 아니다. 혼란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여성, 남성의 구분은 무의미한 짓이다. 잠에 빠진 여자들이 넘어가는 세상은 인류가 멸망한 곳이었다. 여성이 사라지고 남성만 남은 곳에서는 파괴만이 있을 뿐이었다. 각각의 개성 강한 인물들을 만들어 내는 힘. 이야기를 막판까지 몰고 가는 추진력. 킹 부자는 신나게 자판을 두드렸을 것 같다.


이상하게도 『잠자는 미녀들』을 다 읽고 나자 피곤이 몰려왔다. 독자를 안심하게 하면서 씁쓸함을 느끼게 하는 결말 때문일까. 현실이 소설을 압도해서 일까. 킹 부자가 그리는 소설 속 현실 보다 책을 읽고 있는 나의 현실이 더 공포적이고 스릴러 같기도 한 기분. 책을 읽으며 킹이 그려내는 긴박한 이야기 안에서 서성이다 보면 현실을 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완벽하게 불안과 염려를 잊을 수 있었다. 킹 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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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의 맛 문학동네 청소년 48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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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는 나름대로 친구들과 어울려서 놀기도 했다. 모두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은 아이들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시내를 가로 질러갔다. 시장에 들러 떡볶이집에 갔다. 교복 주머니를 뒤져 삼천 원을 만들어 냈다. 떡볶이 한 접시 앞으로 모두 모여. 당면과 어묵과 밀떡이 고추장 양념에 적절히 묻어 있었다. 짜고 달고. 국물까지 먹고 싶은 맛이었다. 먹고 나서 각자 집으로 쿨하게 헤어졌다. 숙제가 있으면 집에 모여 하기도 했는데 대개는 집으로. 안녕 안녕 몇 번 인사해 주면 끝.


고등학교를 따로 가면서 그때의 친구들과는 소홀해졌다. 다들 그러하겠지. 만났다가 친해지고 그러다 헤어지고 잊히는 무한 반복의 나날로 들어가겠지. 없으면 못 살 것 같이 어울려 다녔는데 막상 안 보면 또 안 보는 대로 살아진다. 조남주의 소설 『귤의 맛』에는 네 명의 친구들이 나온다. 다윤, 소란, 해인, 은지. 얼굴, 성격, 집안 환경, 성적, 관심사가 다른 그들이 친해진다. 비슷한 구석이 있어야 친구가 될 것 같지만 비슷한 구석을 찾으려고 친구가 되기도 한다.


은지의 주도하에 가게 된 제주도 여행에서 즉흥적인 제안을 한 건 다윤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다윤은 경인 외고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아픈 동생이 있는 다윤은 늘 뭐든지 동생에게 양보를 했다.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서 공부를 했다. 하다 보니 잘했다. 모두의 기대에 맞게 경인 외고를 가면 되는 다윤. 그 밤, 다윤은 은지, 해인, 소란에게 함께 신영진고를 가자고 한다.


해인은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갑자기 자신을 가람여고에 보내는데 사활을 거는 게 부담스럽다. 이모집으로 위장 전입을 해 놓기는 했는데 꺼림직하다. 은지는 엄마가 자카르타 주재원으로 가기 위해 신청을 해 놓은 상태다. 소란은 공부를 잘하는 다윤과 신영진고에 가고는 싶다. 다윤의 충동적인 제안이지만 그들은 헤어지지 않고 신영진고에 가기로 약속을 하고 타임캡슐을 묻는다. 약속대로 네 명의 아이들은 신영진고에 갈 수 있을까.


『귤의 맛』은 내가 좋아하는 성장 소설이다. 나는 아직 자라지 않은 걸까. 나이만 들어서 어른인 척하고 있는 걸까. 부끄럽고 미숙한 그 시절을 잊지 못하고 있어 그때를 환기하는 소설을 읽으며 추억을 다듬어 가고 있다. 소설 속 네 명의 친구를 보며 꼭 해야 했어야 할 말, 안녕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떠나보내야 했던 기억에 아쉬워한다. 『귤의 맛』의 친구들은 서로를 좋아하고 미워하고 다시 애틋해 하며 시간을 이어 나가는 방식으로 성장한다.


은지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초록색일 때 수확해서 혼자 익은 귤. 그리고 나무와 햇볕에서 끝까지 영양분을 받은 귤. 이미 가지를 잘린 후 제한된 양분만 가지고 덩치를 키우고 맛을 채우며 자라는 열매들이 있다. 나는. 그리고 너희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

(조남주, 『귤의 맛』中에서)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었다. 초록색 열매인 나는. 물과 햇빛과 양분을 갈구했다. 그러면서도 독립된 채 살아가고 싶었던 이중성의 자아를 짊어지고 살았다. 불안하고 비밀스러움으로 가득했던 시간을 지났다. 우정을 쌓고 인간에 대한 연민을 배우고 싶었다. 『귤의 맛』에는 치열한 우정을 쌓아가는 아이들이 있다. 지금의 시간을 한때의 애틋한 기억으로 남겨두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는 아이들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놀라운 힘이 되어준다. 어떤 어른의 모습으로 살아갈지 아직은 몰라도 된다고 이야기한다. 혼자 익든 충분한 영양분을 받아 익든 우린 모두 귤이 된다. 초록의 시간을 견뎌 노랗고 새콤한 어른의 시간으로 나아간다. 코로나19로 당연하게 여기던 일상의 모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은 졸업식과 입학식을 하지 못했고 마스크 쓴 얼굴만을 보며 묵묵한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이 또한 지나갈 거라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은 바람으로 『귤의 맛』이 쓰였다.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지금이지만 『귤의 맛』이 따뜻한 위로가 되어 아이들의 어깨를 토닥였으면 좋겠다. 우린 괜찮아. 무언갈 모른다고 해서 나빠지지 않아. 무사한 너의 오늘을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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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 - 출세욕 먼슬리에세이 2
이주윤 지음 / 드렁큰에디터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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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싸네,라는 욕이 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놀랐다. 숫자와 된소리를 섞어서 말하지 않아도 상대의 기를 누를 수 있는 있다니. 그 말을 한 사람과 오래 친하고 싶었다. 한동안 친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흘러 연락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잘 지내지? 나이 들어 보니 똥 싸네,라는 그 말은 욕이 아니었다. 일단 똥을 싸는 건 중요하다. 먹었는데 안 나오면 속이 더부룩하고 얼굴에 뾰루지가 난다. 변비가 심해지면 만사가 귀찮다. 똥을 싼다는 건 소화가 잘 된다는 증거이고 신진대사 활동이 원활해서 오늘도 내일도 무언갈 마구 때려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니까.


이런 더러운 얘기로 시작해서 죄송.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냐면 나 아주 재미있고 웃긴 글쓰기 책을 읽었다. 그렇다. 글쓰기 책이다. 이주윤의 새 에세이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는. '출세욕'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엄연히 글쓰기 책이다. 내가 발견하고 좋아한 작가인 듯한데 이주윤은. 글이 술술 읽힌다. 난해하고 심각한 문장으로 딴 생각을 불러오지 않게 한다. 솔직함이 장점으로 이런 것까지 쓴단 말이지, 감탄하고야 마는 것이다.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는 자신의 글쓰기 노하우와 어쩌다 책을 쓰게 되었는지 깨 발랄하고 담백하고 웃긴 에피소드를 엮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도 목차는 '이것은 신세한탄이 아니다'와 '이것은 노하우가 아니다'로 이루어져 있다. 읽어보면 신세한탄이고 노하우인데. 이주윤은 블로그에 일기를 쓰는 것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밝힌다. 처음 썼던 일기의 내용은 이렇다.



2005년 7월 12일 오후 3시 16분

아, 슬프다. 누가 알까. 이 마음. 메롱 까꿍. 무지 슬프다.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 「끄적거리는 일기도 습작이 될까」中에서)


우와. 대박. 이 글을 시작으로 이주윤은 일기를 쓴다. 습작이라곤 일기밖에 없었다. 이후 고재귀한테도 칭찬을 받았다. 습작을 오래 한 사람 같다나 어쨌다나. 자신의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것. 나이 들면 알게 되는 것 중에 하나가 나의 이야기를 타인은 관심이 없다. 내 슬픔과 비통과 걱정을 구질구질하게 늘어놓아봐야 다른 이들은 들어주지 않는다. 그러니 일기를 쓰라고 한다.


부담 없이 일기를 쓰면 쓸 거리가 넘쳐나니 자신을 믿고 쓰라고 한다. 손목과 아이패드 프로와 애플 펜슬을 건다네. 그리고 똥 이야기. 자신이 블로그에 쓴 글을 똥이라고 비유한다. 매일 같이 똥 같은 이야기를 블로그에 썼다. 누군가는 보고 알아봐 주지 않을까 하는 염원에서. 실제 그 일이 일어났다. 조선일보 부장이 블로그에 쓴 글을 보고 출판사에 연락을 했다. 아버지가 애독해 마지않는 신문에 연재를 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 일에 대해서는 이주윤은 운이라고 말한다.


메롱 까꿍에서 출발한 글은 한 권 한 권의 책으로 나오게 되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물론 운이 있어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출세를 하겠다는 뚜렷하고 강렬한 욕망도 있어야 한다. 그 어떤 글쓰기 책보다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를 읽으며 내 생활 행태와 습관을 돌아보며 알맞은 글쓰기 노하우를 취사선택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매일 똥 싸기. 블로그에 매일까지는 아니지만 이틀에 한 번꼴로 리뷰를 쓴다. 누구 읽으라고 쓰는 게 아닌 나 좋으라고.


이런저런 책을 읽었는데 책에 대한 이야기를 현실에서는 나눌 수 없으니까. 쓰고 또 쓴다. 똥 같은 글인데. 쓴다. 다시 읽어보면 형편없다. 비유는 어색하고 문법은 엉망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서. 이주윤이 꼭 잘 나갔으면 좋겠다. 이미 잘나가고 있나?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서가 제목처럼 잘 팔려서 계속 쓰는 삶을 살아갔으면 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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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하는 습관 - 위대한 창조의 순간을 만든 구체적 하루의 기록
메이슨 커리 지음, 이미정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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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글 쓸 기분이 나지 않아도 헤리엇 마티노는 자리에 앉은 첫 25분 동안 무조건 쓰라고 한다. 억지로라도 글을 쓰면 쓸 수 있다고. 그 말에 의지해 지금 이 글을 쓴다. 메이슨 커리의 『예술하는 습관』을 읽고 알게 된 글쓰기 노하우다. 25분의 기적을 믿으며. 스타트. 요즘의 나는 유튜브에 빠져 있다. 오묘한 알고리즘은 결국 나를 책 읽기의 세계로 밀어 넣는다. 영상 보고 싶은데 책을 읽는 결말로.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집 안을 깨끗하게 정돈하는 영상에서 『예술하는 습관』을 발견. 저 책을 읽으면 나도 예술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겠다는 아니고 제목이 근사해서 장바구니에 추가해 두었다. 장바구니에 넣어둔다고 해서 무조건 책을 사는 건 아니고. 스마트폰 중독이라 그때그때 읽고 싶은 책을 서점 장바구니에 넣고 도서관에 가서 빌려 온다. 도서관에 가서 청구기호를 보고 책을 찾았을 때의 희열이란.


『예술하는 습관』에 나오는 예술가들의 공통점은 모두 여성이라는 것이다. 메이슨 커리는 그전에 『리추얼』이라는 책에서 예술가들의 시간 관리법을 담았다. 똑같은 24시간인데 누구는 빨래 개는 시간도 없는데 누군가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고 사진을 찍는다. 의문에 휩싸이자 조사를 하기 시작. 블로그에 예술가들의 작업 습관을 올렸다. 창작의 열의에 사로잡힌 이들이 열광하고 블로그에 올린 글은 책으로 나왔다.


『리추얼』을 내고 보니 그 안에 담긴 예술가들의 대부분이 남성이었다. 예술에 여성, 남성의 경계가 어디 있겠냐마는 메이슨 커리는 다시 조사 작업에 착수한다. 여성 예술가들이 대체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그들의 작업 환경이 궁금했다. 『예술하는 습관』을 읽다 보면 가사와 육아 사이에서 힘들어하는 것보다 그 시간을 껴안고 창작 활동을 위해 시간을 효율적이고 깔끔하게 관리했던 예술가들의 많음에 놀란다.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오로지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며 일정 시간 작업을 한다. 때론 포기도 주저하지 않는다. 예술을 위한다면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다. 의식주를 간결하게 유지하며 영감을 기다리는 게 아닌 무조건 글을 쓰면서 영감을 찾는다. 좋은 날에도 나쁜 날에도 글을 쓰는 버지니아 울프. 글쓰기 감옥에서 글을 쓰는 콜레트. 가족의 보모로 고용되면서 새벽에 글을 써야 했던 제이콥스.


나도 안다. 『예술하는 습관』을 읽는다고 해서 습관을 만들어 예술을 할 수 없음을.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 않았나. 어른들이. 맨날 드러누워 있기만 하는데. 계획만 짜다 지쳐서 다시 드러누워 있는데. 책 한 권 읽는다고 해서 일찍 일어나 산책을 하고 밥을 해 먹고 책상에 앉아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다만 예술을 위해 무절제와 욕망을 어떻게 다스리고 앞으로 나아갔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이번 생은 글렀어. 습관과 훈련이란 말은 내게는 너무 먼 나라 이야기야. 할 수도 있지만 『예술하는 습관』에는 시대를 초월해 나만의 방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아이를 돌보고 일을 하는 인류가 있었다는 사실이 응원이 된다. 무엇을 선택해서 방법을 바꾸든 자유다. 전부 따라 할 순 없어도 내가 가진 일상의 리듬에 맞는 방법 한 가지를 얻어 실천하면 대성공. 『예술하는 습관』을 읽으며 꼭 읽어야지 하는 책들을 장바구니에 추가한 것으로 대만족.


그리고 좋은 날도 나쁜 날도 25분 동안은 무조건 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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