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티튜트 1~2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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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이 기어이 나를 울리고야 말았다. 예능 보다가도 눈물이 찔끔 나는 요즘이다. 누가 우는 걸 보고 있으면 같이 마음이 짠해진다. 뜨이씨.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다. 『인스티튜트』를 읽은 건. 공포, 호러의 제왕인데. 아니다. 스티븐 킹은 신파, 감동의 황제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주제로 소설을 쓰는 그이지만 그 안에는 인류애, 우정, 사랑이 깔려 있다. 인간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으며 사랑만이 전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고 킹의 소설은 이야기한다. 뻔한데 뻔하지 않게 쓴다.



집중력이 약해져서 책을 읽을 수 없는 상태라면 스티븐 킹을 읽기를 권한다. 킹의 어떤 소설이라도 좋다. 한 번 그의 소설을 읽기 시작한다면 없던 집중력도 생기면서 장엄하게 펼쳐지는 서사 속으로 빨려 들어가 현실을 잊고야 만다. 시간을 들여서 책을 읽는데 재미와 감동이 보장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스티븐 킹은 단 한 번도 배신을 때린 적이 없다. 오히려 반전과 놀라운 결말로 뒤통수를 칠 뿐이다.


『인스티튜트』의 후반부를 읽으면 누구라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연의 톱니바퀴가 맞물리면서 이야기는 뻗어 나간다. 흩어진 사건의 조각이 모이면서 혼과 눈물을 쏙 빼놓는다. 스티븐 킹. 당신은 정말 찐이다를 외치면서 엉엉. 팀은 전직 경관으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해 있다. 승무원이 경찰에게 자리를 양보해 줄 것을 승객들에게 부탁한다. 팀은 약간 많은 사례금을 받고 비행기에서 내린다.


의도하지 않게 어쩌다 히치하이킹을 하고 꽉 막힌 도로에서 내려 듀프레이라는 작은 마을로 간다. 그곳에서 야경꾼이라는 고전적인 직업을 갖게 된다. 인생. 마음먹은 대로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음을 팀은 직시한다. 불운으로 경찰을 그만뒀지만 훌륭한 경찰의 자질을 가지고 있어 야경꾼으로서 완벽한 적응을 한다. 강도를 붙잡고 시민을 구하기도 하면서.


한편 루크는 천재 소년으로 유명 대학에 들어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열두 살이라는 나이로. 만점에 가까운 성적으로 SAT 시험을 치렀고 교육비와 주거비 지원을 받기로 했다. 특별한 밤이 찾아오기 전까지. 낯선 이들이 루크의 집으로 찾아와 부모님을 죽이고 그를 납치해 간다. 눈을 뜬 루크는 자신의 방과 흡사한 곳에서 눈을 뜬다. 문밖으로 나가고 그곳에서 담배 사탕을 물고 있는 칼리샤라는 소녀를 만난다.


음모론을 믿으시는가.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나는 경우 그 배후에 음험한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가. 지지하던 정치인이 죽거나 영향력이 있는 유명인이 사고로 죽거나 했을 때. 조작이고 날조고 사기라고 소심하게 외쳐본 적이 없는가. 죽음으로 인해 일의 방향이 미세하게 변화했다면? 『인스티튜트』는 세계 평화를 위한다는 사명으로 똘똘 뭉친 비밀 세력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워. 워. 오해는 하지 말고. 이건 어디까지나 소설이니까.


천재 소년 루크와 전직 경찰관 팀이 만나게 되기까지. 만남 이후까지. 『인스티튜트』는 망설이지 않고 질주한다. 루크가 눈을 뜬 그곳의 정체는 무엇인가. 우리의 꼬마 대장 에이버리가 펼치는 활약. 처음으로 다정하게 대해준 친구를 위해 에이버리는 결심을 한다. 에이버리의 생각을 읽는 어느 누구라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데. 『인스티튜트』는 서로를 구할 수 있는 힘은 가식 없는 친절과 애정을 담아 상대를 불러주는 순간에 있다고 말한다.


인간에게는 선한 본성이 숨어 있다고 스티븐 킹은 믿는 듯하다. 전염병이 돌고 자다가 납치를 당하고 동물의 습격을 받는 극한 상황에 내몰려도 진심이 통하는 단 한 사람을 만난다면 어찌어찌 일의 순서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이야기의 제왕은 믿고 있다. 『인스티튜트』는 그 믿음의 결정판 같은 소설이다. 루크와 팀. 루크와 에이버리. 루크와 칼리샤. 루크와 니키. 루크가 만난 그들에게는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힘이 있었다. 2020년 최고의 소설. 『인스티튜트』. 아직 2020년은 안 지났지만.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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