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 몬스터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크로스로드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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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이사카 고타로의 신작 『시소 몬스터』를 주문해 놓고 책을 받아서 머리맡에 놓는다. 며칠 그래 놓고 바쁜 척 잊어버린 척하다가 책을 펼친다. 내가 왜 이걸 지금에서야 읽고 있는 거야. 좀 더 빨리 읽어야 했던 거잖아. 왜 그랬는지 안다. 아까우니까. 아까워서. 이제 나는 알거든.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좀처럼 현실로 건너올 수 없는 이사카 월드라는 게 존재하거든. 그러니 최대한 빅재미를 남겨 놓고 싶다는.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 감춰 두고 심신이 너덜너덜해졌을 때 기어 들어가 꺼내서 방전된 나를 충전해야 할 때를 위해서 킵 해 놓은 거지. 『시소 몬스터』를 신나게 읽고 리뷰를 쓰기 위해 인터넷에 접속해 놓고 딴짓을 하고 있네, 이게 뭐 하는 거임? 십수 년 전 겨울에 신춘문예에 응모해 놓고 떨어진 거 알고도 산 한국일보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보내준다는 문학 기사 '무낙'을 구독하고. 그때는 신문 가판대를 돌아다녔는데. (언제 적 이야기하는 거지? 나이가 어느 정도 들었다는 이야기.)


이제는 클릭 한 번에 내 메일함에 문학 기사가 줄줄이 꽂힌다니. 메일 주소만 적었는데 이름도 알아내서 구독해 주셔서 고맙다고 보내네. 참으로 신기하고도 이상한 인터넷 세상.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만 있으면 생전 보지도 못하는 이에게 이름이 불린다. 번잡한 인간관계에 엮이고 싶진 않지만 문학 이야기를 하고 싶은 나에게 인터넷은 그럭저럭 유용하다.


싸움에 재능이 없다는 건 일찌감치 알아챘다. 어떤 사건인지는 기억나진 않지만 뒤에 앉은 아이에게 수업 시간 내내 욕설이 담긴 이야기를 ASMR처럼 듣는데도 대꾸 한 마디 하지도 못한 그때부터. 싸움이 시작될 기미가 보인다. 피하거나 숨거나 인과 관계도 따지지 않은 채 사과하는 식으로. 살아왔다. 상대가 욕이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은 이상 무례한 행동을 해도 참는 식으로. 살아간다.


『시소 몬스터』는 대립과 갈등, 싸움에 대한 이야기다. 써놓고 보니 유의어를 나열해 놓은 식이네. 문장력 없는 티를 내고 있다. 이사카 고타로를 읽는 독자들은 공감할 거다. 왜 이런 식으로 리뷰를 쓰는지. 모를 수도 있으려나.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이 글을 쓰는 인간은 소심하고 결정을 못 내리고 남의 말에 끌려다니는 우유부단한 인간이라는 걸 간파하셨을 거다. 그러니 리뷰도 이따위로 쓰는 거고.


논리적이고 유용한 『시소 몬스터』의 해석을 기대하셨을 텐데. 어쩌나. 신간이 나올 때마다 놀라 자빠지는 작가가 둘인데 한 명은 스티븐 킹이고(정말 정말 대단하다. 먹고 자는 것 이외에는 소설만 쓰는 건가. 스티븐 킹은.) 다른 한 명은 이사카 고타로이다. 이사카 고타로에 꽂혀서 그가 쓴 책을 전부 읽고자 목록을 만들었다. 목록을 만들 정도로 쓴 양이 방대했다. 무서운 건 계속 써 나가고 있을 예정이라는 거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이상 두 작가의 작품을 읽을 수 있는 행운이 있다, 있다. 아싸.


일본의 거품 경제 시대를 배경으로 얼핏 보면 고부 갈등이 핵심으로 읽히는 첫 번째 이야기 「시소 몬스터」. 제약 회사의 영업직으로 일하는 나오토는 술자리에서 선배에게 일미 무역 갈등보다 첨예한 자신의 집에서 펼쳐지는 고부 갈등을 상담한다. 상성이 맞지 않아 충돌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이야기는 후반으로 가면서 놀라운 비밀이 드러난다.


지금으로부터 몇 십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미래를 다룬 「스핀 몬스터」는 정보란 믿을 수 있는가라는 명제를 파고든다. 뉴스라고 말해지는 것. 사건은 사건이 될 수 있는가. 인터넷으로 모이는 정보를 신뢰할 수 없는 이들에 의해 생겨난 신종 직업인 인간 비둘기 미토는 신칸센에 오른다. 어린 시절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운전을 할 수 없는 미토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달한다. 사소한 정보라도 인터넷에 퍼지면 악용이 될 수 있다는 걸 인지한다. 손수 쓴 편지를 사람 대 사람으로 전하는 미래가 배경이면서 과거지향적인 시대의 이야기, 「스핀 몬스터」.


신나고 재미있게 읽었다는 걸로 끝나면 좋겠다. 이상한 음모에 엮여서 고생하는 인물들의 서사를 따라가면서 현실에서는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대 환장의 모험을 보면서 모든 것의 파괴로 끝나지 않은 결말을 마주하면서 다행이다고 안도하는 걸로 말이다. 하루 종일 숫자를 보면서 대체 어디서 틀렸을까. 설명해야 하는데 설명할 수 없는 막막함을 안고 돌아오는 관점만 다르게 보면 별것 아닌 일인데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할 수 없어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때 이사카 고타로. 나의 고민이 별것 아닌 건 아니었다고 말해주는 인물들의 대화를 곁에서 듣는 것으로 『시소 몬스터』는 멋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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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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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불편하진 않다. 달라진 건 없다. 좀이 쑤시지도 않는다. 울적하거나 우울해하지도 않는다. 여행 이야기다. 코로나19로 가장 어려워진 산업은 여행 업계이다. 공항이 닫히고 비행기는 발이 묶여 있다. 수시로 여행을 떠나던 그 많던 여행가들은 무얼 하며 지낼까. 자신이 도착한 도시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추억하고 있으려나. 아니면 얼른 이 사태가 끝나고 가게 될 여행지의 루트를 짜고 있을까.


여행을 글로 배웠다. 도서관에 가면 여행 서적 코너에 서성였다. 론리 플래닛도 뒤적이고 그걸 사기도 했다. 언젠가는 가겠지. 미래의 나는 떠날 준비를 하며 설레고 있을 거야. 상상했지만 상상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귀찮고 귀찮았다. 다들 어떻게 그렇게들 부지런히 정보를 모으고 돈을 모으고 가방에 들어갈 짐을 꾸릴까. 대단해. 존경해 마지않는다.


가끔 보는 카카오톡의 누군가들의 프로필에는 그래도 여행지에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다. 열명 남짓의 카톡 친구들. 이로써 빈약한 인간관계가 드러났습니다. 제주도를 많이 가던데. 제주도 역시 글로 배웠다. 신청만 하면 무료로 나눠준다는 말에 제주도 지도를 받아 놓고 책상에 펼쳐 놓고 어디를 가볼까 고민만 했다. 그 지도 어디 있는지 난 몰라.


오랜만에 쉬게 된 토요일에도 일어나서 책을 읽었더랬다. 주중에는 몇 페이지 펼쳐보지 못해 아쉬운 책을. 아침 6시에 일어나 읽었다. 정세랑의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를. 여행을 선호하진 않지만 다정한 친구들의 권유에 이끌려 떠난 뉴욕, 아헨, 오사카. 타이베이, 런던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체력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낸 탓에 여행을 즐기진 않았다고 한다. 소설에 전념하기 위해 정규직인 편집자 생활을 청산하고 여행을 떠난다.


정규직 직장을 그만둔다. 떠난다. 여행자의 신분으로 낯선 도시에서 잠시 산다. 이런 서사는 얼마나 황홀한가. 내 이야기는 못 되지만 남의 이야기는 흥미로운 법. 내 고통은 바로 보지 못하지만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라면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맥락과 비슷하려나. 요즘엔 논리가 바로 서지 않는다. 논리라는 게 있기나 있었나. 이대로 가다가는 코로나가 끝나기는커녕 코로나와 일상을 공유하게 된다는데. 코로나가 끝나면이라는 가정은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암담한 예상.


어른들 말 하나도 틀린 법이 없지. 젊었을 때 빨빨거리고 돌아다녀야 한다는 말. 100세 시대니까 나는 아직 청년을 살고 있다고 자위한다. 아직은 청년이니까 돌아다녀 볼까 했는데 코로나. 비겁한 변명입니다. 어차피 코로나가 없어도 집에서 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았을 거면서. 한여름에도 이불을 덮고 자는 저입니다. 더워서 땀을 질질 흘리면서 깨고 일어날 준비를 하기 위해 또 누워 있지요.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는 다정한 사람들을 만난 기록이다. 부지런히 세운 계획으로 떠난 여행은 아니었지만 약간의 즉흥성으로 시작한 여행에서 정세랑은 시절 인연을 쌓아간다. 마지막에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이 별로라고 죄송하다고 하는데 전혀 그럴 일이 아닌 사진이 실린 책은 피곤한 하루를 보듬어 주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일상에서는 느끼지 못할 여행지에서의 흥분과 열기와 두근거림의 감정이 활자를 타고 넘어온다. 미라클 모닝이 유행이라는데 그게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는 게 기적이라는 말에 빵 터지고야 말았다. 자꾸 그 유머가 생각나는 요즘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기적. 10년 넘게 야행성으로 살았는데 일찍 끝나야 밤 열시여서 새벽 한 시, 두 시에 자서 정오에 일어나는 삶이었다. 그걸 한 번에 바꾸려니 쪼까 힘들다.


30분이라도 일찍 일어나서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를 읽으려고 전날 계획했지만 늘 실패한 한 주였다. 다행히 토요일이 있어서 (왜 아침 6시에 눈 뜬 건데) 완독할 수 있었다. 한 달에 열 권 이상은 읽었는데. 7월에는 다섯 권 읽었네. 오늘은 8월 7일. 한 권 읽었다. 숫자에 집착하는 병을 고쳐야 하는데. 그래도 명색이 책 리뷰니까, 감동받은 구절을 옮겨본다.


뮤지컬을 보고 나서 더더욱 자주 로알드 달의 말을 떠올린다.

"친절함이야말로 인류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한다. 용기나 대담함이나 너그러움이나 다른 무엇보다도 친절함이 말이다. 당신이 친절한 사람이라면, 그걸로 됐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달의 말을 어설프게 번역해보았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세상의 보고 싶지 않았던 면들을 보고 나서야 이 말이 의미 있게 와닿았다. 아동문학을 쓰고 싶었는데 다른 방향으로 와버렸지만, 세계에 대한 태도를 다시 다잡고 싶을 때는 역시 아동문학을 찾게 된다.

(정세랑,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中에서)


소설을 쓰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떠났던 여행지에서 정세랑은 친절함이라는 가장 따뜻한 감정을 온몸으로 받고 돌아온다. 간혹 이상한 인간들도 만났지만 뜻밖의 인연과 맺은 기억은 정세랑이 아닌 소설가 정세랑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줬다. '그리고 좋았던 것들'의 목록을 적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는 것. 이건 부당한데라는 생각을 그 순간에 하고 발끈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명제에 붙들리고 싶지 않다는 것.


두서없는 사고 끝에 난 잘할 수 있을 거야, 이미 좋은 사람을 만났고 좋은 사람을 만날 예정이므로 괜찮을 수 있을 거야 스스로에게 용기를 준다. 이해는 하는 것이 아닌 되는 것. 이해한다는 가짜고 이해된다가 진짜 같다고 나이가 드니까 이해라는 개념을 무식하게 정의해 버리게 된다. 이해되지 않는 건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 넘어가자고 슬퍼하는 나를 달랜다. 간혹 우리 사는 이곳에 외계인이 아닐까 고민하게 만드는 종족을 만나곤 하는데 그땐 사랑스러운 인류애로 가득한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를 읽었다는 기억을 떠올리는 것으로 상처 입은 마음을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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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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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새롭게 알게 된 사람과 일요일에도 만나 점심을 먹었다. 요즘 무슨 책을 읽느냐는 질문에 정유정을 읽고 있다고 했다. 『7년의 밤』을 쓴 사람이고 그게 영화화도 됐다고 말했다. 이야기는 스티븐 킹으로 흘러갔다. 《쇼생크 탈출《에 나오는 한 장면을 공유했고 무더운 오후는 그렇게 흘러갔다. 무슨 책을 읽느냐는 질문을 받아서 좋았다.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라면 오래 만나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유정에서 스티븐 킹으로 이야기가 매끄럽게 흘러가서,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어찌 됐든 대화의 흐름이 끊기지 않아서 나름 사회생활을 잘 하는 것이라고 자위했다. 요즘엔 이렇게 나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려고 노력한다. 괜찮다. 잘 해내고 있다고. 그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일에 도전 중이라서 자뻑이라고 말해도 어쩔 수 없다. 나를 위로하고 응원하지 않으면 지금의 시기를 버텨낼 수 없을 것 같다.


기간을 보니 정유정의 신작 『완전한 행복』을 열흘 동안 읽었다. 페이지 터너 정유정의 책을 이렇게 길게 읽을 일이 아닌데. 요즘의 내 일이 그렇다. 집에 와서 씻고 잠깐 드러누워 있으면 공기에 수면제라도 탄 듯 잠이 쏟아진다. 그 와중에도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은 나 자신을 칭찬한다. 이쯤 되면 『완전한 행복』의 주인공처럼 나 역시 나르시시스트인가. 그럼 어때.


나의 자뻑이 누군가의 행복에 피해를 주는 건 아니니까. 『완전한 행복』은 사전 정보 없이 무작정 읽어 나갔다. 정유정이니까. 『7년의 밤』을 읽던 밤을 기억하니까. 온전한 몰입의 기억을 갖게 해준 작가이니까. 정유정의 신간이 나온다. 무조건 산다. 닥치고 그냥 읽는다. 원래 이쯤 되면 줄거리 요약하고 전혀 전문적이지 않은 작품 분석을 몇 줄 쓰는데 그러지 않기로 했다. 『완전한 행복』을 읽는 그때의 상황, 기분, 날씨 정도를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주인공 유나는 행복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린다.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 일을 하느라 행복에 대한 정의 같은 걸 내릴 여유가 없었다. 엄마가 죽고 모든 게 의미 없어진 듯한 기분으로 한동안 살다가 의미 따위를 찾지 말자고 결론을 내렸다. 삶, 죽음, 직업, 자유, 희망, 절망. 추상 명사에 해당하는 것에 대해서.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삶에 욕심을 부리지 말자고 다짐을 했었다.


그게 그렇게 쉽게 되진 않았다. 지금보다 나아지고 싶고 성공까진 아니더라도 성공의 근처까지는 가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 공수래공수거.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엄마가 듣던 김국환의 타타타의 한 소절까지. 욕심 없이 살자고 하지만 살아가는 일 자체가 욕심에 욕심을 더하는 일인 것 같다. 욕심의 원인은 행복해지기 위한 것. 책이라도 읽으니 누군가의 행복론을 듣는다. 행복이 뺄셈이라니. 요즘 말로 신박하다.


피곤한 와중에도 쇼핑 사이트에 들어가서 오늘의 핫딜을 보고 필요하지도 않는데 키보드를 검색하면서 무언가를 더하고 있는데.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유나는 경악할만한 행동들을 서슴없이 한다. 힘들고 절망적인 상황이 생길 때 나는 그냥 두고 본다. 상황이 나아지기 위해 노력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무기력하다는 표현이 맞다.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지 않는 삶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가 취할 수 있는 최대의 몸짓이다.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확신이 없는 것도 큰 이유다. 소설 속 인물이 행복을 위해 벌이는 일을 보면서 그게 소설 속 인물이라서 다행이라는 것보다 어떤 실화에 기반한 설정이라서 더 끔찍했다. 막장 드라마라고 욕하지만 현실은 막장에 막장을 더하지 않은가. 정유정의 신작 『완전한 행복』의 정보를 얻고자 여기까지 읽었을 누군가가 있다면 그 누군가에게.


저는 문학병을 앓고 있습니다. 명의 허준이 와도 고치지 못한다는 그 병입니다. 문학과는 동떨어진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간절한 듯 아닌 듯 사실 간절하지 않은 척 지내고 있습니다. 이 글은 리뷰의 형식을 빌려 신세 한탄을 하는 글입니다. 리뷰로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행복해지고 싶다는 바람 따위는 하지 않은 지 오래입니다. 그저 아프고 힘들지 않기만을 소망합니다. 행복이라는 단어 앞에 완전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정유정의 대담함에 박수를 보냅니다. 완전한 게 어디 있나요. 그런 게 존재한다면 기꺼이 제 머리카락 몇 올을 바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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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연 2021-08-12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돼쥐보스님의 리뷰글들이 재밌어서 읽어보고있네요ㅎ 리뷰가 굉장히 많아서 깜짝 놀랐어요 저는 책읽기만으로도 벅찬데 돼쥐보스님은 리뷰까지 이렇게 많이 쓰시다니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업이 궁금했는데 전혀 다른쪽이라니 놀랍습니다!!

돼쥐보스 2021-08-13 17:37   좋아요 0 | URL
엉망으로 쓴 글이라 읽기 힘드셨을텐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마를렌 하우스호퍼 지음, 박광자 옮김 / 고트(goat)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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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걱정에도 절망에도 빠지지 않았다. 억지로 걱정거리나 절망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내 상황이 얼마나 절망스러운지를 알만큼은 나이를 먹었다.

(마를렌 하우스호퍼, 『벽』中에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두렵지 않았다. 소심하고 겁 많은 전형적인 A형의 내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미리 걱정하고 불안해하던 내가 말이다. 두루뭉술하게 쓸까 하다가도 주절주절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망이 앞선다. 할까와 말까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일단 시작해 보기로 한다. 백수로 보낸지 7개월이 되었고 이제는 어디라도 취직을 하고 싶었다. 나이가 많아서인지 면접의 기회도 쉽지 않았다. 아무 데나 불러주는 곳으로 가자 했지만 마음이 가지 않은 곳에는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그렇다. 나는 모순 덩어리이었던 것이다.


이력서만 내면 되는데 나는 온갖 서류를 챙겨서 넣었다. 자기소개서, 졸업 증명서, 자격증 확인서 같은 누가 보더라도 준비성 하나는 철저해 보이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 그게 통한 걸까. 면접을 보라는 문자가 왔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 면접을 보러 갔다. 내 앞의 누군가가 먼저 면접을 보고 있었다. 어떤 말이 오갈까. 자세히 듣고 싶었지만 빗소리에 대화가 묻혔다. 여러 명의 면접관 앞에서 자기소개를 하고 왜 직종을 바꾸려 하는지 묻는 답에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대답했다. 나이가 들어도 일을 하고 싶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합격 전화를 받았다. 축하합니다로 시작하는. 그토록 간절히 기다렸던 말을 들었다. 걱정이 먼저 앞서고 할 수 없을 거라는 나 자신을 한없이 위축하는 감정이 들어야 했다. 너, 할 수 있어? 경력도 없는데. 잘 할 수 있겠어? 그전에 나라면 누구라도 미안해서 묻지 않을 그 말을 나는 나에게 했어야 했다. 그래서 포기하고 좀 더 쉬운 일로 가야 했다.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될 대로 되겠지. 못 하면 나가라고 하겠지. 그러면 나오면 되지.


자신감이 아니었다. 할 수 있다는 마음도 아니었다. 그건 그냥 한다와 해본다는 마음이었다. 업무 인수인계를 받을 때도 나 이거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 보다 한다, 어떻게든 된다는 마음이었다. 집에 돌아와 마를렌 하우스호퍼의 소설 『벽』을 펼쳤을 때 나의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듯한 문장을 읽고 안도가 되었다. 친척의 초대로 산장에 초대받은 '나'는 다음날 아침 일어났을 때 주변이 변한 것을 알아챘다. 곧 돌아오겠다는 친척은 돌아오지 않았고 주위를 둘러봐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산장에서 나와 산을 탐색했다. 아래로 내려가려고 했지만 이내 벽에 가로막혔다. 투명한 벽이 세워진 것이다. 벽 너머로 집과 사람이 보였지만 다가갈 수 없었다. 사람은 죽어 있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친척이 키우던 개 한 마리가 살아 있는 생명체의 전부였다. 그때부터 '나'의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어느 날 갑자기 '벽'이 왜 생겼는지 알고 싶었지만 궁금증을 풀만한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오직 살아남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다정한 개 룩스와 충직한 소 벨라, 깍쟁이 고양이와 '나'는 벽이 둘러쳐진 산에서 살아간다. 그동안 누군가 자신을 구조해 줄 거라 기대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벽』은 재난 소설로 성장 소설로 읽어도 무방하다. 읽는 사람의 마음, 환경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 『벽』의 장르는 달라진다. 사는 것이 재난이라면 재난 소설로 사는 게 좀 더 괜찮아질까 이상한 기대를 하고 있다면 성장 소설로. 알아서 읽으면 된다.


과연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를 의심하기보다 일단 한다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벽』을 읽어갔다. 현실의 나보다 더 혹독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나'의 하루하루를 보면서(인간은 누군가의 불행 앞에서 겸손해지기 마련이니까) 지금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근거를 찾아내는 작업을 했다. '나'는 절망에 빠지지 않는다. 대신 당장 살아가기 위한 일들을 한다. 하고 해낸다. 산장에 있는 식량을 모으고 사냥을 하고 건초 더미를 만든다.


소설 속 '나'는 벽이 둘러쳐지고 혼자 2년의 시간을 살아간다. 그러다 자신의 삶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달력과 시계는 없지만 기억을 복원해 그간의 일을 정리한다. 벽이 왜 생겼을까. 방사능 때문일 수도 누군가의 실험일 수도 있다. 한 인간을 벽에 가둬놓고 어떻게 변화하고 살아가는지 지켜보는 괴상한 실험. 실험은 실패로 끝날 것 같다. '나'는 죽지 않는다. 백수 기간 동안에 깨달았다. 포기는 어렵다. 이건 안 될 거야. 손을 터는 일은 어려웠다.


포기가 어려워 포기하지 않는 걸 선택했다. 차라리 그게 나았다. 나의 가능성을 믿는다기보다는 한 번 더 해보자는 의욕이 생겨 포기하지 않았다. 『벽』의 주인공 '나'는 세상에 자신뿐이라는 걸 알았을 때 절망에 빠지지 않고 살기로 선택한다. 선택의 대가는 참혹했지만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혼자 남겨졌을 때-우리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간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일 뿐이다-당신은 누군가를 그리워할까. 매 순간이 혼자라는 걸 안다면 보이지 않는 벽 안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면 슬픔, 분노, 불안, 절망이라는 감정에서 자유로워진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알에서 벗어났지만 자신을 둘러싼 벽과 마주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벽을 부수라고 해야 할까. 아니다. 벽은 그대로 놓아둔 채 그건 자기를 지키기 위한 방어막이기에 그대로 살아가면 된다. 벽 안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며. 그 일을 하기 싫어 벽을 허물고 되지도 않는 인간관계를 쌓으려 하는 당신과 나였다. 이제야 조금 알겠다. 어떻게 나를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벽』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깨닫게 된 것이다.


포기하고 싶었던 2021년의 겨울과 봄을 지나 포기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믿는 여름을 지내고 있다.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한다. 삶의 의미 따위를 찾기보다 '그냥'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한다와 산다 그리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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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 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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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러니까 나는 반성한다. 월급 적다고 징징대고 출근하기 싫다고 울고불고 난리 피우고(진짜 울었다. 그것도 길에서) 일 시키면 겉으로는 웃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욕했던 것, 그 모든 것을. 대학 졸업하고 별다른 노력 없이 어쩌다 직장을 가졌고(그때는 젊었는데. 왜 그렇게 안이하게 살았을까. 자격증 따고 이력서도 여러 군데 넣어보고 하지는) 다행히 공백기 없이 꾸준히 일을 다닐 수 있었다. 계속 그렇게 살 줄 알았지, 뭐.


인생은 알다가도 모를 일. 강제 백수가 됐고 생각지도 못한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땄다. 직업군을 옮기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놈의 경력, 경력, 경력자. 하긴 나 같아도 경력자를 뽑겠다. 일 하는 차원이 다를 테니. 나이 많은 신입을 받아주는 데는 없었다. 뉴스에나 나오는 줄 알았는데. 서류 몇 백군 데를 넣고도 면접 연락조차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 그게 내 이야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한승태의 『인간의 조건』을 꼭 읽으시라. 아니, 다들 읽었다고요? 또 나만 몰랐지. 또 나만 늦었지. 그래도 아직 읽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꼭 읽으셔야 한다. 읽는 동안 소름과 눈물과 한숨이 동시에 터져 나올 테니. 여기는 남부 지방. 지각 장마는 늦게 온 걸 벌충이나 하려는 듯이 장대비를 퍼붓고 있다. 비가 쏟아지는 내내 『인간의 조건』을 읽어 나갔다. 나 대신 울어주는구나. 하늘.


나는 그들을 판단하고 싶지 않다. 조롱을 감수하면서 맞지 않는 일을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을 나는 진심으로 존경한다. 내가 보기엔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삐뚤어지게 만든다. 내가 경멸하는 사람은 황소 심줄 같은 끈기를 지닌 사람들이다. 참고 참아서 끝내는 어디선가 한자리 꿰차는 사람들. 그러니 너희들도 인생의 절반을 무의미한 일을 하며 살라고 권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 비하면 중도 포기자들은 언제 어디서고 "이제 그만!"이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라 해야겠다. 참을성 좋은 사람들은 체면이니, 부모니, 정체를 알 수 없는 명분에 충성을 다하는데, 세상을 어둡게 만드는 건 여지없이 이런 부류다.

(한승태, 『인간의 조건』中에서)


한승태는 오랜 기간 면접을 보고 취업 준비를 했다. 모두 탈락. 스물여섯에 꽃게잡이 배를 탄다. 소개소에서 한 달 기본 급료가 100만 원이라는 말을 듣고 덜컥 선원이 된다. 숙소에 도착해 들은 질문은 깨끗하냐는 거였다. 무슨 말인지 몰라 당황했다. 깨끗하냐는 말은 전과가 있냐 없냐라는 뜻이었다. 그날부터 한승태의 고생은 시작된다. 꽃게를 잡는 건지 자신을 잡는 건지 모를 일을 했다. 배 안에서의 생활은 개고생 그 자체였다. 조금만 방심하면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곳이었다, 배는.


일이 힘들어도 월급이 괜찮으면 버틸만하다.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버틸만하다고 믿는 것이다. 선주는 경비 빼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고 월급을 주지 않았다. 식사, 숙소 어느 것 하나 괜찮은 것이 없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담인데 간결하고 요점을 명확하게 요약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밉다. 중국 선원들이 도망치기 위해 바다를 헤엄치다 죽은 걸 본 후 한승태는 선원을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선주는 40만 원을 줬다. 6주 동안 일했는데. 남은 선원들은 돈을 받았다는 것에 신기해했다. 꽃게잡이 선원의 시간은 그런 것이었다.


이후 그는 편의점, 주유소, 돼지 농장, 오이 비닐하우스,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한다. 최저 시급 정도를 받거나 최저 시급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으면서. 한 달에 이틀 휴무를 가지면서. 『인간의 조건』은 마지막 6부를 빼놓고는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 6부도 약간의 허구가 가미됐을 뿐 실화에 근접한 이야기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모두가 꺼려 하는 일을 하면서 쓴 글은 차라리 거짓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이다. 화장실과 수도가 갖춰져 있지 않은 숙소. 돼지 똥의 악취를 맡으며 일을 하고 똥이 묻어도 닦을 수 없는 작업 환경. 한 달에 마스크와 장갑 두 개로 일을 해야 했다.


『인간의 조건』을 읽으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동안 내가 한 고생은 고생 축에도 못 드는구나. 호강에 겨워서 요강에 똥 싸는 소리를 하며 살았구나. 한 달에 이틀 쉬면서 일을 해도 150만 원을 못 받았다, 한승태와 그의 동료들은.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을 아는가. 또라이를 피해도 새로 또라이를 맞이하게 된다는 《심야 괴담회》에서 어둑시니들에게 44개의 촛불을 받을 수 있는 법칙. 일도 일이지만 그곳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의 기가 막힌 에피소드가 『인간의 조건』을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게 만든다.


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많다. 책이 약간 두꺼운데 술술 읽혀 더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건 이 모든 이야기가 진짜라는 사무침 때문이다. 현재에 만족하며 살자 같은 기만의 말을 하지 않는다. 노동력 착취를 통해 부를 축적하는 기업의 해괴한 논리를 조곤조곤 반박한다. 부당함을 겪고도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가 되는 시절. 착하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라는 요즘의 말. 이게 아니다 싶으면 도망가도 된다고 해준다. 그건 용기라고 말한다. 그래서 소중한 책이 되어 버렸다, 『인간의 조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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