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 몬스터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크로스로드 / 2021년 7월
평점 :
절판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이사카 고타로의 신작 『시소 몬스터』를 주문해 놓고 책을 받아서 머리맡에 놓는다. 며칠 그래 놓고 바쁜 척 잊어버린 척하다가 책을 펼친다. 내가 왜 이걸 지금에서야 읽고 있는 거야. 좀 더 빨리 읽어야 했던 거잖아. 왜 그랬는지 안다. 아까우니까. 아까워서. 이제 나는 알거든.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좀처럼 현실로 건너올 수 없는 이사카 월드라는 게 존재하거든. 그러니 최대한 빅재미를 남겨 놓고 싶다는.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 감춰 두고 심신이 너덜너덜해졌을 때 기어 들어가 꺼내서 방전된 나를 충전해야 할 때를 위해서 킵 해 놓은 거지. 『시소 몬스터』를 신나게 읽고 리뷰를 쓰기 위해 인터넷에 접속해 놓고 딴짓을 하고 있네, 이게 뭐 하는 거임? 십수 년 전 겨울에 신춘문예에 응모해 놓고 떨어진 거 알고도 산 한국일보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보내준다는 문학 기사 '무낙'을 구독하고. 그때는 신문 가판대를 돌아다녔는데. (언제 적 이야기하는 거지? 나이가 어느 정도 들었다는 이야기.)


이제는 클릭 한 번에 내 메일함에 문학 기사가 줄줄이 꽂힌다니. 메일 주소만 적었는데 이름도 알아내서 구독해 주셔서 고맙다고 보내네. 참으로 신기하고도 이상한 인터넷 세상.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만 있으면 생전 보지도 못하는 이에게 이름이 불린다. 번잡한 인간관계에 엮이고 싶진 않지만 문학 이야기를 하고 싶은 나에게 인터넷은 그럭저럭 유용하다.


싸움에 재능이 없다는 건 일찌감치 알아챘다. 어떤 사건인지는 기억나진 않지만 뒤에 앉은 아이에게 수업 시간 내내 욕설이 담긴 이야기를 ASMR처럼 듣는데도 대꾸 한 마디 하지도 못한 그때부터. 싸움이 시작될 기미가 보인다. 피하거나 숨거나 인과 관계도 따지지 않은 채 사과하는 식으로. 살아왔다. 상대가 욕이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은 이상 무례한 행동을 해도 참는 식으로. 살아간다.


『시소 몬스터』는 대립과 갈등, 싸움에 대한 이야기다. 써놓고 보니 유의어를 나열해 놓은 식이네. 문장력 없는 티를 내고 있다. 이사카 고타로를 읽는 독자들은 공감할 거다. 왜 이런 식으로 리뷰를 쓰는지. 모를 수도 있으려나.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이 글을 쓰는 인간은 소심하고 결정을 못 내리고 남의 말에 끌려다니는 우유부단한 인간이라는 걸 간파하셨을 거다. 그러니 리뷰도 이따위로 쓰는 거고.


논리적이고 유용한 『시소 몬스터』의 해석을 기대하셨을 텐데. 어쩌나. 신간이 나올 때마다 놀라 자빠지는 작가가 둘인데 한 명은 스티븐 킹이고(정말 정말 대단하다. 먹고 자는 것 이외에는 소설만 쓰는 건가. 스티븐 킹은.) 다른 한 명은 이사카 고타로이다. 이사카 고타로에 꽂혀서 그가 쓴 책을 전부 읽고자 목록을 만들었다. 목록을 만들 정도로 쓴 양이 방대했다. 무서운 건 계속 써 나가고 있을 예정이라는 거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이상 두 작가의 작품을 읽을 수 있는 행운이 있다, 있다. 아싸.


일본의 거품 경제 시대를 배경으로 얼핏 보면 고부 갈등이 핵심으로 읽히는 첫 번째 이야기 「시소 몬스터」. 제약 회사의 영업직으로 일하는 나오토는 술자리에서 선배에게 일미 무역 갈등보다 첨예한 자신의 집에서 펼쳐지는 고부 갈등을 상담한다. 상성이 맞지 않아 충돌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이야기는 후반으로 가면서 놀라운 비밀이 드러난다.


지금으로부터 몇 십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미래를 다룬 「스핀 몬스터」는 정보란 믿을 수 있는가라는 명제를 파고든다. 뉴스라고 말해지는 것. 사건은 사건이 될 수 있는가. 인터넷으로 모이는 정보를 신뢰할 수 없는 이들에 의해 생겨난 신종 직업인 인간 비둘기 미토는 신칸센에 오른다. 어린 시절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운전을 할 수 없는 미토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달한다. 사소한 정보라도 인터넷에 퍼지면 악용이 될 수 있다는 걸 인지한다. 손수 쓴 편지를 사람 대 사람으로 전하는 미래가 배경이면서 과거지향적인 시대의 이야기, 「스핀 몬스터」.


신나고 재미있게 읽었다는 걸로 끝나면 좋겠다. 이상한 음모에 엮여서 고생하는 인물들의 서사를 따라가면서 현실에서는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대 환장의 모험을 보면서 모든 것의 파괴로 끝나지 않은 결말을 마주하면서 다행이다고 안도하는 걸로 말이다. 하루 종일 숫자를 보면서 대체 어디서 틀렸을까. 설명해야 하는데 설명할 수 없는 막막함을 안고 돌아오는 관점만 다르게 보면 별것 아닌 일인데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할 수 없어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때 이사카 고타로. 나의 고민이 별것 아닌 건 아니었다고 말해주는 인물들의 대화를 곁에서 듣는 것으로 『시소 몬스터』는 멋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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