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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 (반양장) - 제13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ㅣ 창비청소년문학 96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평점 :




유원.
너의 이름을 불러본다. 이름을 불렀으니 어서 말을 이어가야 할 텐데. 너의 이름만 불러 놓고 나는 말을 잇지 못한다. 하고 싶은 많은 말들이 입속에 아니 가슴속에 가득 있는데 어떤 말부터 꺼내놓아야 할지 내 안의 검열관은 꼼꼼하게 언어를 고르고 있다.
단어 하나라든지 말투라든지 그런 걸로 상처를 주고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더더욱 그러고 있는 것 같다. 며칠 전에 나는 사나운 말투에 마음이 상했지. 생각해 보면 사납지도 않았어. 단지 흘러가는 상황의 나쁨에 토로를 한 것인데 그걸 나는 공격으로 받아들였지. 다소 미안한 일이야. 상대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지. 오해를 한 내 잘못도 있는데 나는 괜찮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옹졸해지는 건 참 쉬워.
미움은 어디에서 시작하는 걸까. 사랑이었다가 사랑이 되지 못한 마음에서 미움은 생기는 것 같아. 여섯 살의 너 유원이가 겪어낸 시절에서부터 사랑과 미움은 같이 자란 것 같아. 담배꽁초로 인한 화재였다는 게 믿기지 않았을 거야. 고작 그런 일로 사람들이 죽고 다쳤잖아. 소중한 사람을 잃고 살아가는 일을 겪어야 했잖아. 너를 구하고 죽은 언니 예정이의 선택은.
그 선택에 대해서 함부로 단정 지을 수도 의미를 부여할 수도 없을 것 같아. 그런 일들을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쉽게 말할 수 없는 거지. 그럼에도 나는 네가 부러워. 언니의 죽음이 있었지만 엄마와 아빠는 너의 곁을 떠나지 않았어. 어린 네가 상처를 받을까 봐 먼저 상처 앞으로 다가갔어. 화재 사고로 유명해진 네가 학교에서 누구와도 마음을 나누지 않고 공부만 할 때도 가족은 없어지지 않았어.
11층에서 떨어지는 너를 받아내고 다리 불구가 된 아저씨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지. 유원아. 드러내지 않는 마음은 마음이 아니야. 네가 용기를 가지도 않아도 괜찮았어. 나이가 들어갈수록 갖기 힘든 게 용기라는 걸 너는 아니. 미움과 사랑,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용기 말이야.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나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것도 너는 알게 된 것 같구나. 대단해. 유원.
그토록 원하던 너 유원.
추락은 죽음이 아닌 거였지. 다시 살기였던 거지. 오늘 잠들고 내일 아침을 맞을 용기를 너는 스스로 찾아냈어.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수 있는 단단한 너를 갖게 된 걸 축하해. 엄마, 아빠와 늘 함께 했으면 좋겠고 수현과 정현이 와도 복닥복닥 지냈으면 해. 어른이 되었지만 확신의 말을 해줄 수 없어서 미안해.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기에 어떤 단정도 지을 수 없단다.
다만 사랑만이 정확하고 우리가 죽음이 아닌 삶을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라는 걸 기억해. 매일 말해줘야 해. 사랑한다고.
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