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음과 싫음 사이 - 시의적절, 그 여섯번째 이야기 시의적절 6
서효인 지음 / 난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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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6월이고 6월의 절반이 지났고 날이 더웠다가 시원했다가 이내 무더울 예정이다. 아직은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되고 그래도 더울까 선풍기를 샀는데 디자인만 보고 샀다가 대실패했다. 작은 사이즈의 선풍기를 사버리고 만 것. 화면의 이미지와 실재를 가늠하는 것도 못하는 한심한 나에게 6월의 바람을 선물해 줄게. 괜찮다고 힘을 내서 마트에 가서 다시 선풍기를 사면 되잖아. 


6월에는 해야 할 일이 많아서 걱정이다. 그렇게 걱정만 하고 실행은 하지 않고 있어서 나는 또 나를 한심해 한다. 봄옷을 개어 넣을 거라고 한 달 넘게 생각만 하고 있는데 오늘도 하지 못 아니 하지 않았다. 누워 있기 전문가는 종일 누워 있었지. 누워서 책 읽기. 누워서 같은 노래 반복해 듣기. 누워서 후회하기. 누워서 잠들기. 가위도 눌렸던 것 같은데 그냥 깨기 귀찮아서 잤다. 


서효인의 산문집 『좋음과 싫음 사이』의 책 띠지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이제 6월인데, 아니 벌써 6월이니 당신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복잡하고 혼란한 삶의 한가운데서 오직, 평화를 빕니다." 쏟아지는 신간 속에서 책을 고르는 기준은 까다롭지 않다. 책의 제목, 좋아하는 작가, 책에 실린 한 문장. 당신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니. 그것도 제목이 『좋음과 싫음 사이』라니. 어찌. 


좋고 싫음의 기준이 명확한 사람이 있다. 때로는 그런 사람의 말에 휘둘리기도 했다. 이제는 안다. 세상은 좋고 싫음 사이의 간격이 더 넓다는 것을. 마냥 좋지도 마냥 싫지도 않거니와 좋고 싫은 것은 꾸밈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래도 겨우 한 마디 해보았다. 제가 피자를 안 먹습니다. 6월의 일이다. 서효인은 『좋음과 싫음 사이』에서 6월의 하루들을 사려 깊은 문장으로 들려준다. 


시, 에세이, 짧은 소설이 모여 만든 『좋음과 싫음 사이』속 6월은 어쩐지 눈물을 참고 있는 표정이다. 업무 시간이 끝났지만 해야 할 업무는 정작 하지 못한 채 저녁 6시가 되었고 내일로 업무를 이월할 자신은 없어 허탈한 마음으로 책상에 앉아 있는 6월은 눈물을 흘릴지 말지 고민 중이다. 새삼 여기저기에 달린 CCTV가 신경 쓰여 마음 놓고 울지도 못하는 6월.


'6월 21일의 시 「엔딩과 앤드」'에서 '고향에는 용서할 준비를 마친 사람들이 있다'라고 '용서할 결심은 되었는데 용서를 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조금만 사과의 기미가 보이면 부리나케 용서한다'라고. '괜찮네, 괜찮네, 괜찮다네, 말한다'라고. 이제 내게 고향은 없고 떠날까 남을까의 고민만 남았다. 어떤 식으로든 삶은 흘러간다고 이야기하는 노래 가사처럼 6월 다음에는 7월이 찾아올 예감이다. 


죽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겠지만. 


이해 대신 오해를 나누고 마음이 맞지 않아 떠나겠다는 말에 농담을 건네보았지만 이별은 확정되었다. 그럼 시를 읽고 시를 쓰면서 울지 못하는 6월에게 마음껏 대놓고 울어도 된다고 말해줘야겠다. 너의 그 말은 진심이 아닌 것 같아. 마음을 흩뿌리지 말아 줘. 넌 좋았지만 싫기도 해. 6월이 끝나기 전에 잊자. 각자의 어두운 거짓말을. 시는 계속 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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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남궁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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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10일을 향한 여정.


요즘에 내가 자주 하는 말은 '어떤'이다. 그런 건 좀 아니지 않나요? 이게 맞나요? 하는 물음이 올 때 잠깐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 하는 말이다. 효과적인 게 '어떤'을 말하고 나면 상대는 이야기를 해준다. 전후의 사정들. 사실 알고 싶지 않은 일들. 동의를 구하는 분위기를 풍길 땐 그냥 웃는다. 줏대나 의견이 없는 나로서는 그게 최선이다. 


휴대전화의 자동 녹음 기능을 설정해 놓고 있지만 긴급한 일이 아닐 때는 다시 듣지 않는다. 내가 내 목소리를 들어야 하다니. 망설이고 버벅대는 나의 음성을 말이다. 최악이다. 그러나 최근에 어떤 일들이 있었고 벌을 받는 심정으로 녹음을 들었다. 와. 진짜 나 말 못 하고 왜 바보같이 웃기만 하는 거냐. 어와 음과 하하하의 발화를 듣던 상대는 정말 힘들었겠다. 


이게 다 월급 때문이다. 


최근에 어떠한 일련의 사건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시간이 흐르고 있다. 10일 전 새벽에는 급기야 배가 아파 잠에서 깼다. 한 번 자면 좀처럼 깨어나지 않는 기절식 잠을 자는 내가 말이다. 잠귀가 밝은 거 그거 뭐죠. 10일과 그 후에 겪어야 할 힘듦이 몸의 통증으로 발현된 것 같아. 내가 많이 쓸쓸하고 아프고 어려웠다. 그래서 매번 생각해야 한다. 


현재는 무섭지 않고 미래는 생각하지 않는다. 


월급사실주의 동인에서 우리 시대의 직장과 일에 대한 소재로 쓴 소설 모음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을 읽으며 그런 감정들을 달랠 수 있었다. 현실에 단단히 뿌리를 둔 이야기가 간절했다. 아득하거나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미래를 말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의 이야기. 나와 당신이 겪고 있을 이야기. 매달 고정적인 수입을 얻기 위한 치열한 사투는 서글프다. 


지방방송 아나운서의 현재를 담아내고 폐업한 공부방의 시간이 있다. 정규 직원이 되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고통과 어쩔 수 없이 무조건 잘 될 거라는 낙관을 심어줘야 한다. 과거의 친구는 오늘의 불편한 사이가 되어 있고 물류센터에서는 현실 악당이 된다. 한국 사회에서 비혼과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건 쓸모 있는 삶이 될 수 있나 스스로를 의심하고 의식 있음의 뒤에는 이기주의가 있었다.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에서 가장 애틋하고 슬펐던 소설은 손원평의 「피아노」였다. 혜심과 준용. 공부방에서 만난 그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오늘을 이겨낼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것밖엔 할 수 없다고 생각이 들어 그렇게 행동한다면 삶이 함몰된다. 삶이 물속이나 땅속에 빠진다. 삶이 결딴이 나서 없어진다. 삶이 멸망한다. 그것밖엔 할 수 없을 땐 하지 않는 쪽으로.


눈물이 나지만 어른답게 눈물을 참아야 하지만 월급을 받는 이상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저 조용히 숨죽여 운다. '다 울었니? 이제 할 일을 하자' 짤을 보고 마음을 다잡고 전화를 돌리고 제출할 자료를 만든다. 같이 마실 커피를 주문한다. 왜 우리네 아빠 엄마가 일 끝나고 집에 올 때 먹을 걸 사들고 왔는지 이해가 되어 버렸다. 그런 날은 참 많이도 힘드셨구나. 


월급사실주의 2025를 읽을 때는 조금만 울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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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여름 2023 소설 보다
공현진.김기태.하가람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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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일요일 오후를 만났다. 일어난 건 오전 9시인데 제대로 일어난 건 정오. 그 사이에 누워서 책을 읽었다. 점심을 먹고 조금 누워 있다가 다시 낮잠. 등이 아파서 주말에는 계속 이러고 있다. 일어났으니 일어나야 하는데 등이 아픈 채 누워 있다가 《인사이드 아웃》을 다시 봤다. 나의 슬픔이, 나의 빙봉이. 빙봉이 기쁨이를 위에 올려 보내고 안녕이라고 말하며 사라질 때 엉엉. 


슬픔이는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다. 너무 슬퍼서 못 걷겠어 이러고 발을 내미는 거 넘나 넘나 커엽. 다시 나의 감정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라일리는 이제 사춘기를 맞이했다지. 《인사이드 아웃 2》 며칠 있으면 개봉이다. 더빙판으로 보고 싶은데 힝. 시간이 힝. 슬픔아 조금만 기다려줘. 둥둥하고 커여운 너를 곧 보러 갈게. 


일요일 오후는 그렇게 잠깐 반짝하고 사라졌다. 커튼을 열어 오후의 햇살을 거실로 들어오게 해준 것뿐이었는데. 초여름의 오후 플레이리스트를 틀어 놓았을 뿐인데. 슬픔이가 활약한 감정은 괜찮아졌다. 그래그래 계속 그래주면 좋겠다. 2024년 여름에 『소설보다 여름 2023』을 읽는다. 일 년 전 여름이 여기 있음에 고맙고 감사하다. 


첫 소설의 제목부터 감동이다. 공현진의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이런 감동적인 제목의 소설을 1년 동안 방치하고 있었다니 그동안 나 제정신이었던 거 맞음? 힘들거나 힘들거나 고독하거나 고독하거나 짜증 나서 짜증이 날 때마다 드는 생각이었다. 나 포함 다 망할 텐데. 지구는 더 이상 버티디 못하고 멸망할 텐데. 그냥 넘어가자 하면서. 


소설은 수영 기초반에서 만난 두 남녀의 일상과 상념을 그린다. 연애 감정? 그런 게 있겠어? 제목이 저런데.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는 주호와 약간의 눈치를 탑재한 희주. 수영 초보반에서의 그들은 지도에도 없는 곳에서 헤매고 있는 이방인 같다. 주호의 대화 방식이 짠하고 웃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질문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서 일까. 


김기태의 「롤링 선더 러브」의 맹희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근래 들어 읽은 소설의 주인공 중 가장 사랑스럽고 진취적이고 용맹하다. 사랑이 찾아오지 않으면 뭐 어때. 내가 찾아가면 되지. 37세의 독신 맹희는 연애 프로인 《솔로농장》에 지원한다. 그곳에서 맹희는 완두라는 별명으로 활약한다. 지원자들끼리 하라는 연애는 안 하고 다른 곳에 관심이 꽂힌 맹희. 귀여워 주금.


분위기를 바꿔서 「재와 그들의 밤」에서 하가람은 불에 타고 있는 고향 울산에서의 엄마와의 밤 시간을 그린다. 엄마 추자 씨는 덕미 아줌마와 시절 우정을 맺고 있는 중이다. 부디 그 우정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받은 기분의 주인공인 내가 바라는 건 오직 그것 뿐이다. 자주 빈번하게 매번 후회를 한다. 연락이라도 제대로 할걸. 말이라도 곱게 할걸. 


2024년 6월의 어느 일요일에는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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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나쁜 페미니스트 - 개정 완역판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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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산 게이의 책 『나쁜 페미니스트』에 대한 정보를 구하고자 이 글을 읽게 된다면 그건 잘못된 일이라고 먼저 말해주고 싶다. 사실과 정보보다는 느낌과 단상 정도는 써 낼 수 있다.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거창한 말보다는 소진이라는 걸 겪어 내고 있을 때 틈틈이 조금씩 겨우 『나쁜 페미니스트』를 읽어 나갔다. 주말과 빨간 날은 쉴 수 있다. 다른 게 아닌 이 정도가 행운이라고 느낀다. 


남들 다 쉴 때 쉬지 못하는 이들이 태반이니까. 쉬어야 할 때는 쉰다. 단순한 명제에도 쉬는 것에 왜 죄책감을 가지게 되었을까.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겠지. 알고리즘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갓생과 미라클 모닝에 대한 영상만을 보고 있는 걸까. 그러니까 좀 더 생산적인 인간이 되고 싶은 열망에서. 한 번 해보고 해 봤으니까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으로 쉬고 있다.


『나쁜 페미니스트』를 읽으며 책에서 소개해 주는 영화들을 봤다. 《나를 찾아줘》와 《헬프》. 《헝거게임》은 너무 긴 시리즈라 유튜브에 올라온 요약본으로(바쁘다 바빠 집순이 사회). 《오스카 그랜튼의 어떤 하루》는 좀 더 있다가 보자. 록산 게이는 다정하고 쉬운 언어로 페미니스트의 진정한 의미를 구하고자 한다. 책에서 표현한 대로 '페미니스트란 개똥 같은 취급을 받고 싶어 하지 않는 여성일 뿐'이라는 의미 말이다. 


여성이라 함은 날씬하고 외모를 가꾸고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그럼에도 경력을 이어 간다는 것. 그러한 범주에서 벗어나면 왜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 여성들은. 연애나 결혼을 하지 않는 나이가 있는 여성들을(이건 남성들에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향한 부정적인 시선은 고쳐질 기미가 없다. 미디어 역시 한몫을 하고 있다. 록산 게이는 영화, 드라마, 뉴스, 잡지에 실린 기사의 예를 소개하며 잘못된 점을 이야기한다.


『나쁜 페미니스트』를 읽으며 그동안 인종 문제에 무지했다는 걸 깨달았다. 주변에 없다고 해서 문제가 없지는 않다. 미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종 차별의 사례는 좋아지기는커녕 심각해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를 든 것이겠지만 한국 사회 역시 마찬가지라는 걸 안다. 인종, 성별, 계급, 나이, 학력을 근거로 일어나고 있는 차별. 우리는 차별 사회에 살고 있다. 


록산 게이는 말한다. 자신은 나쁜 페미니스트라고. 페미니스트의 본질에서 한참을 벗어난 나쁜 페미니스트. 여성의 인권 신장을 위해 공부하고 강의하고 글을 쓰지만 누군가 자신을 도와주면 좋겠고 다른 사람의 말과 시선에 신경을 쓰며 핑크색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은 어쩔 수 없이 나쁜 페미니스트가 될 수밖에 없다고.  남성 임금의 77퍼센트만을 받고 꾸밈 노동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우리는 좋은 사람이 좋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 


나쁘고 좋다고 두 갈래로 분류하는 걸 좋아하는 모양인데 그걸로 한 시대를 지탱한 모양인데 이제는 어림없다. 이분법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건 이제 한 물 갔고 좋고 나쁘고 이상하고 기묘하고 독특한 세상이 찾아왔다. 나쁜 척하면서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그런 것들이 섞이다 보면 다양한 면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 외모와 살 이야기를 하면 너무 한 거 아니냐고 사과하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면 좋은 여성이 될 수 있다는 록산 게이의 말을 오래도록 간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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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보여서 다행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주란 지음, 임수연 그림 / 마음산책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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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에 나오는 문장을 빌려 오자면 2차 세계대전 당시, 강도 높은 육체노동에 임한 사람들과 읽기와 문서 작성 관련 일을 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배급량이 지급되었단다. 강도 높은 육체노동에 버금가는 게 읽기와 문서 작성 관련 일이라니. 그러니까 내가 요즘 왜 머리와 등이 아픈지 이해를 받은 느낌이다. 병렬 독서가 주는 힘이다. 


안 그래도 저질인데 더 한 저질 체력을 가지게 되었고 집중력은 조각조각 흩어져 날아가 버려 한 권의 책을 꾸준히 읽지 못하는 요즘이다.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를 한 달째 읽고 있는 거 실화임?) 그래도 기특한 건 책을 꾸준히 사는 거다. 꾸준히 읽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사는 나 자신 칭찬해. 다양한 책을 읽으려고 시도는 해보지만 결국엔.


나는 한국문학으로 돌아온다. 더운 여름날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읽었던 하성란, 전경린, 박완서, 이청준, 조세희를 잊지 못한다. 마음의 고향은 한국. 내내 닦이고만 돌아오는(닦인다는 표현을 아시는지 이 표현은 현장 언어로서 주로 직급이 높은 이들에게 혼난다는 뭐 그런 뜻) 4월과 5월에 읽은 소중한 책은 이주란의 짧은 소설을 모은 『좋아 보여서 다행』이다. 


이주란의 소설이기에 그런 것도 있지만 책의 표지가 상큼 발랄해서 당장에 꾸준히 책 사는 사람으로서 구매했다. 한동안 밥 먹는 식탁에 『좋아 보여서 다행』을 올려두었다. 극효율주의자(나쁘게 말하면 자린고비)로서 생화는 사서 꽂아두진 못하지만 꽃이 그려진 책은 놓아둘 수 있으니 기부니가 좋아져라 하면서. 


우리가 헤어졌을 때 인우의 친구들은 인우에게 잘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내게 전한 것은 인우였고 나는 너무 수치스러워서 다시는 그를 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버트를 3주만 돌봐달란 부탁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버트가 집에서 지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이주란, 「1년 후」中에서, 『좋아 보여서 다행』)


그러니까 말들이 돈다. 워낙 이해력도 떨어지고 인간사에도 관심이 없는지라 누군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해도 그러려니 한다. 그 말을 듣고 누군가에게 전달해 줄 능력이 없다는 건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입이 무겁다는데 그건 아니고 기억력이 나쁜 거다. 헤헤. 바보 이미지 지키자. 이주란의 『좋아 보여서 다행』의 첫 소설인 「1년 후」는 헤어진 연인의 부탁을 받고 그의 집으로 가 반려견을 돌봐주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첫 문장이 아찔하다. 헤어진 연인에게 잘 헤어졌다는 친구들의 말을 전하는 인간의 인성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왜 그들이 헤어졌는지 단박에 알겠다. 어떤 말들이 있고 그냥 그 말들을 놔두면 될 것을 굳이 옮기고 부풀린다. 전 연인의 집에 가 반려견을 보살피고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사람과 밥을 먹고 어떤 일을 겪고 나서 그 일이 괜찮아지기를 바란다. 


『좋아 보여서 다행』의 착하고 묵묵한 사람들은. 


긴 산책을 하고 오랜만에 친구가 변하지 않음에 기뻐한다. 그런 시간과 나날과 오늘이 『좋아 보여서 다행』에 존재해서 다행이다. 자꾸 내일,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이제 내가 믿지 않는 건 그런 거다, 내일과 미래의 일들에 대한. 부자가 되는 일보다 내일, 미래를 가진다는 게 현실성이 없다, 내게는. 어느 곳에서든 우리가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과 변했어도 변함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 그런 게 좋아 보여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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