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기가 막히게 잘쓰는 분께 강의를 부탁했다. 의외로 쉽게 수락했다. ‘글을 잘쓰는 법’에 대한 강의였는데, 강의를 들으며 내 선택이 옳았다는 것, 그리고 그분이 얼마나 오랫동안, 열심히 강의준비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유익한데다 재미까지 있어 천방지축인 예과 애들이 안떠들고 집중을 했는데, 그분이 한 말 중 특히 인상적인 건 다음 말이다.
“일기를 쓸 때 픽션을 섞어서 써 보세요. 그럼 글이 늘어요.”
배운 건 금방 실천하는 나, 99번째 술일기를 팩션(fact + fiction)으로 써본다.
99번째: 미녀와 공연을
일시: 비밀
마신 양: 맥주--> 소주--> 맥주
태진아가 천안에 온다는 얘길 듣고 가슴이 뛰었다. ‘노란 손수건’을 부른 그 태진아가 맞는지 주최측에 전화까지 해봤을 정도. 나보다 더 태진아의 공연을 기다린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미녀다. 태진아 팬클럽 3대 회장이라는 미녀는 한 장에 15만원짜리 S석을 두장이나 산 뒤 날 초대했다.
공연장은 아저씨, 아주머니들로 붐볐고, 합치면 70세는 가뿐히 넘는 우리 둘이 가장 어릴 정도였다. 태진아는 노래를 부르다 말고 마이크를 청중에게 향했지만 청중들은 썰렁했다. 심지어 태진아는 일어나서 몸을 흔들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기까지 했는데, 40대, 50대가 주류인 관객들이 그런 고난도의 행동을 할 리는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40분이 지나고 태진아가 “이제 몇 곡 안남았다”고 협박을 할 무렵,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맨 앞자리의 아주머니 한분이 일어나 춤을 추는 거였다. 두 번째 줄의 아저씨는 “안보인다”고 항의하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잠시 뒤엔 3분의 1 가량이 일어나 춤을 추고 있었다. 나와 미녀는 춤은 안추고 밖에서 산 야광봉만 열나게 흔들어 댔다.
“재미있었죠?”
미녀의 말에 난 덕분에 좋은 공연을 봤다고 대답했다.
“오늘같은 날은 막걸리를 마셔 줘야 하는데...”
난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 생긴 막걸리집엔 젊은이들이 바글바글했다. 마케팅의 힘은 이렇듯 한물 간 막걸리마저 젊은이들에게 소비되게 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여기 처음처럼 두병이요!”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소주를 마셨고, 2차를 갔을 무렵엔 둘 다 얼큰하게 취해 있었다.
“마태님, 혹시...”
침묵을 깨고 미녀가 말을 했을 때, 난 긴장으로 정신이 확 드는 느낌이었다.
“네, 말씀해 보세요.”
“혹시...”
미녀는 몇 번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송대관도 좋아하시나요? 11월에 송대관 천안 오는데...”
그녀에게 말했다. 송대관은 다른 사람과 보시라고. 송대관에 얽힌 안좋은 추억이 있다고. 집으로 오면서 생각했다.
“내가 잘못한 건가?”
그때 그 미녀는 아직까지 내게 연락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