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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90년대편 1 - 3당합당에서 스타벅스까지 ㅣ 한국 현대사 산책 16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6월
평점 :
시중에 떠도는 농담 중에 이런 게 있다. ‘노무현에게 사기당한 사람들의 모임’ 회장이 공석 중이다. 왜? 하겠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노무현만큼 욕을 먹은 대통령이 또 있을까 싶다. 그를 반대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지지한 사람들 역시 거품을 물고 그를 비난한다. 술만 먹으면 대통령 욕을 하는 친구를 보면서 난 “현 대통령의 업적은 국민들한테 안주 거리를 풍성하게 제공한 것”이라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을 묻는다면 당연히 1위가 될 듯한데, ‘노빠’로 불릴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현 대통령은 잘못에 비해 지나치게 욕을 들어먹는 게 아닌가 싶다. 남은 임기 중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르긴 하지만, 난 그가 다른 대통령들에 비하면 특별히 못한 대통령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한 것은 <한국현대사 산책 90년대편>을 읽고 난 직후다. 3당 합당으로 시작해 외환위기로 파국을 맞는 90년대의 중심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있었는데, 그의 활약상을 몇 개만 보자.
-김영삼의 유렵 순방은 국내 언론에 의해 연일 대서특필되었지만, APEC 때와 마찬가지로 현지 언론은 김영삼을 완전히 외면했다....이번 순방 중 프랑스에서 취재한 한국 기자는 140여명이었다...미테랑 대통령은 지난 14년의 대통령 재임 중 숱하게 해외 순방을 했지만 그때마다 수행 취재기자가 20명 안팎... 한국 취재진은 주최국 덴마크보다 많았고, 미국의 30여명, 일본의 20여명, 프랑스의 10여명과도 잘 비교됐다(2권, 159-161쪽)
-김영삼이...뽑았다는 민자당 신임 지구당 위원장 중 쌍용그룹 회장 김석원이 있었다...김영삼은 대통령 선거 때 정주영을 겨냥해 “기업인이 정치에 오염되어서는 안되며 기업경영에 전념해야 한다”고 말했다(2권, 162-3쪽)
-1995년 9월 16일 김기수 검찰총장이 취임함으로써 권력의 핵심인 검찰, 경찰, 국세청 등 3청 총수가 모두 경남고 출신인 성골로 채워졌다...“명동에서 20년 동안 양복점을 경영하던 김모씨가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 정부투자기관인 어느 공사의 감사로 임명됐습니다. 다들 놀랬지요. 그는 양복만 만들어 왔지.... 다만 그가 경남고 출신으로...야구 결승대회가 열릴 때마다 꽹과리 두드리며 열심히 응원하던 장본인...”(191쪽)
-(청와대 정무수석) 이원종은 “삼풍백화점 붕괴를 비롯, 여러 재해에 대해 국민 여론이 부당하게 대통령에 대한 비난으로 집중되고 있는 것은 언론의 탓”이라고 발언했다(222쪽)
하나회 척결 등 김영삼도 한 일이 있긴 하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대통령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을 반영하며, 현 대통령 역시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얘기다. “국민은 위대하다”는 말은 정치인들의 아첨일 뿐, 우리나라 수준에서 챠베스 같은 대통령이 나오는 건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고 노무현 욕을 하지 말자는 건 아니다. 뭔가 있어 보이는 것처럼 위장하고 기대를 부풀린 건 분명 잘못한 거니까. 하지만 이제 그의 임기는 겨우 1년 여, 그를 욕하는 재미로 살다간 노무현 퇴임 후 무지하게 허탈해진다. 이제 슬슬 다른 재미를 찾기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