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우석의 유일한 업적은 전 국민에게 연구윤리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것이다. 그 뒤부터 모든 대학에 연구윤리위원회가 생기고, 그 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논문통과도 안시켜 준다. 난 우리 학교에서 연구윤리를 담당하는 위원회에 소속되어 있고, 제출되는 각종 임상시험 계획서에 윤리적으로 문제될 부분은 없는지를 심사한다. 물론 지식이 부족해 제대로 심사를 못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던 터라 연구윤리에 대한 연수교육이 있다기에 흔쾌히 신청을 했다(사실은...학교에서 가라고 했다).
수료증을 받아들긴 했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일단 교육과정에 문제가 좀 있다. 거기 참석한 사람들은 연구에 윤리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를 하고, 실무적인 걸 배우고자 한 자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헬싱키 선언-의사윤리에 대한 준칙-을 비롯해서 내가 다 아는 것들을 반복해서 가르치는 이유가 뭘까? 법대 교수가 와서 ‘생명윤리’에 대해 두시간을 떠든 것도 그렇고, 또 다른 강사가 ‘한국의 문화와 생명윤리’라는 제목으로 우리 조상들의 생명존중 사상을 역설하는 건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다. “법이 없어 아무것도 못한다”는 얘기만 한 사무관 역시 하품만 나게 만들었다. 그나마 도움된 시간은 사흘 중 두 번, 차라리 심사할 때 어떠어떠한 면을 봐야 한다든지, 실제 계획서를 보여주며 “이러이러한 점이 문제가 되었다”고 해준다면 심의할 때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두 번째, 같이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좀 강박적이었다. 일단 질문을 많이 했다. 오는 강사마다 한 말이다. “이렇게 질문을 많이 받은 건 처음입니다” 좀 자세히 보면 질문하는 사람은 딱 세명이라는 걸 알 수 있을테고, 질문이란 것도 진짜 궁금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많이 안다는 걸 얘기하는 거였다(이거 역시 교수의 속성이다). 그러니 질문이 3분을 넘어가는 일까지 다반사로 벌어지는데, 참고로 난 질문을 할 때 그 시간이 끝나고 강사에게 다가가 조용히 묻곤 했다. 왜? 질문은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빼앗으니까.
또 하나는 이번 기 수강생들이 ‘바보’라는 것. 첫날 첫시간에 온 교수가 이랬다.
“두시간 강의인데요 중간에 십분 쉴까요 아니면 이어서 한 뒤 좀 일찍 끝내줄까요?”
학생 때 느낀 거지만 교수들은 말이 많고, 약속 같은 건 안 지킨다. 그분들은 언제나 우리의 쉬는 시간을 빼앗았고, 점심 시간에 보강을 하기도 했다. 그게 바로 교수의 속성, 그날 온 교수 역시 마찬가지여서, 우리가 안쉬고 일찍 끝내달라고 했음에도 두시간을 꽉 채우고도 모자라 쉬는 시간 몇분을 까먹은 채 강의를 끝냈다. 그 다음 강사도, 그 다음 강사도 마찬가지였다. 이쯤 되면 무조건 10분을 쉬는 게 유리하다는 생각을 해야 할 텐데, 우리 수강생들은 하나같이 바보인지 마지막 날 강사가 물었을 때도 똑같이 대답한다.
“십분 안쉬고 일찍 끝내 주세요!”
그들을 바라보며 난 혀를 끌끌 찼고, 그 강사의 강의는 원래 끝내려던 시간을 지나서 끝이 났다. 그의 말이다. “십분 쉴 걸 그랬어요. 안쉬고 하니까 지치네.”
난 잠이 와서 죽겠는데, 딱 십분만 엎드려 있으면 좋겠었는데, 쉬지 말자고 하는 애들이 얼마나 얄밉던지. 우리 수강생들이 그렇다고 너무 열심인 사람들도 아니다. 쉬는 시간에는 삼삼오오 모여서 “강의가 빡새다”고 불평을 하고, 땡땡이도 자주 쳤으니 말이다. 불평하는 사람 중엔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도 끼어 있었는데, 그는 자기 때문에 강의가 늦게 끝난다는 걸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수가 보람이 있었다면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내 연구실 벽에는 내가 그린 그림들이 잔뜩 붙어 있는데, 최근 1년간 업데이트를 못했다. 지루한 강의가 많았던 이번 연수 때 난 대략 열장의 그림을 그렸으며, 그 그림들에는 잠은 절대 안자려는 나의 숭고한 의지가 붓질 하나하나마다 담겨 있다. 최근 내 휴대폰의 사진들을 스스로 올릴 수 있게 되었으니 내일 학교에 가면 그린 것들을 여기 올릴 생각이다. 두 번째, 간만에 책 두권을 읽었다. 그림이 지겨워질 때마다 책을 들췄는데, <말리와 나>는 쉬는 시간 짬짬이, 그리고 수업 중에 읽은 책이고, <만화가가...>라는 책은 중간쯤 읽었었는데 나머지를 이번에 읽었다. 그간 글을 잘 못썼는데 강의 부담이 없이 간만에 글을 여러 편 쓸 수 있었던 것도 수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장 중요한 보람. 내겐 이제 수료증이 있으니, 연구계획서 심의를 할 때 내 말에 한층 더 무게가 실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