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시장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목적지인 서울역까지 가려면 한시간은 걸릴텐데,
그 역이 3호선의 거의 끝지점이라 앉을 자리가 있었다.
나이가 드니까 요즘은 앉아 가는 게 참 편하고,
그날은 여러 모로 힘든 하루였기에 그 자리가 고마웠다.

그런데 역을 지날수록 사람이 많아지더니, 할머니 한 분이 내 앞에 서신다.
노약자석도 있는데 하는 원망, 그리고 왜 하필 내 앞에서 서시는지 하는 원망이
내 마음을 채운다.
옆을 보니 한창 때로 보이는 청년이 스마트폰을 하느라 머리를 쳐박고 있고,
그 옆에도, 또 그 옆에도.
그러고보면 스마트폰은 무료한 시간을 때울 수 있게 해주는 이외에
자리를 안비켜주는 수단도 되는 모양이다.

정말 일어나기 싫었지만, 할 수 없이 무거운 몸을 일으켜야 했다.

할머니는 미안해하면서 앉으셨고,
난 문 쪽으로 가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내리고 탔는데, 그때 할머니 옆자리에 있던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났던 모양이다.
할머니가 내 쪽을 보면서 소리를 지르셨다.
“학생, 여기 앉아!”
빈자리에 앉으려던 다른 남자가 그 소리에 놀라 멈칫했다.
그리고,
거기 있던 사람들의 눈이 내게로 향했다.
젊어 보이는 건 분명 좋은 것이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지 학생은 좀 심하지 않은가.
그때 난 좀 부끄러웠고, 할머니한테 다음 역에서 내린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진짜로 다음 역에 내려버렸다.

 

38세 때, 영등포역에서 기차를 내렸을 때
한 할머니가 날 보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학생, 가방 열렸어!”
그때는 그 말이 무용담 비슷한 거였는데,
13년이 지난 지금은 그 말이 더 이상 듣기 좋지 않다.
난 너무 늙었고, 누가 나이를 물으면 머뭇거려야 하고,
누군가에게 자리를 비켜주기보단 양보받을 나이가 멀지 않았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대체 왜 그러셨을까.
눈이 나빠서?
어쩌면, 자리를 양보받은 것에 대한 보답으로 그러셨을지도 모르겠다.
할머니, 학생 말고 총각 정도면 제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7-07-03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마태우스 2017-07-04 15:35   좋아요 0 | URL
첫 댓글 감사드립니다.

붕붕툐툐 2017-07-03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이 동안이라서...라는 답을 듣고 싶은 건 아닙니까?ㅋㅋㅋㅋ(제 생각엔 할머님 눈에 책을 읽으면 다 학생이 아닐까 싶습니다. ㅎㅎ)

마태우스 2017-07-04 15:31   좋아요 0 | URL
동안인 줄 알고 살던 때가 있었는데요 요즘은 주름이 가득해서 더 이상 그런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ㅠㅠ 님의 설명에 납득이 가네요 감사요

꼬마요정 2017-07-04 1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적 있어요. 대학생일 때.. 아.. 돌아가고픈 시절이군요. 버스를 타고 천 원짜리 지폐를 냈더니 800원을 거슬러주더군요. 초등학생이냐고.. 하하하하. 이건 뭐..
또 얼마 전에는 할머니가 타셔서 둘러보니 제가 제일 어린(?) 거 같아 일어나서 서서 책 보는데 학생, 여기 앉아.. 다 쳐다보는 게 부끄러워서 다음 역에 내린다고 하고 내렸다가 다음 차를 탔죠.. 사람은 죽을 때까지 ‘학생‘ 아니겠어요..ㅎㅎㅎ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니 자신감을 가지세요!!

마태우스 2017-07-04 15:32   좋아요 0 | URL
오옷 초등학생...요정님 사진 보니까 뭐 그럴 수 있겠다 싶네요 (몇년 전에 봤던 사진 말입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학생이란 말에 격하게 동의합니다^^

홍퀸 2017-07-04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ㅎㅎㅎㅎ제목에 딱 들어맞는 선행의기적이네요!!!ㅋㅋ 배낭메고 책보고있으면 눈나쁜분들한테는 학생으로 보일법하죠!ㅋㅋ 나이들어서 고시공부하는 학생으로 보일수도있는거고요 ㅋㅋ암튼 그 묘한기분 저도 얼마전에 겪어서 알겄네요 총각~ㅋ

마태우스 2017-07-04 15:33   좋아요 0 | URL
맞아요 고시 마지막 시험이 그즈음이던가 그랬죠^^ 총각이라 불러주셔서 감사요.

stella.K 2017-07-04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아니 아직도 마태우스님을 알아 보는 사람이 있단 말입니까?
저 같으면 마태님께 당장 자리 양보해 드렸을 텐데...
사람들 넘하네요.ㅋㅋ

마태우스 2017-07-24 15:53   좋아요 0 | URL
어맛 스텔라K님! 답이 늦어 죄송요. 반갑기 그지없고요 프사 바꾸셨는데 제가 몰랐네요. ㅠㅠ

카스피 2017-07-04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선행의 작은 보답이 아닐까 싶네요^^

마태우스 2017-07-24 15:54   좋아요 0 | URL
그, 그렇겠죠? 제가 너무 젊어보인다, 이건 아닌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