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는 매우 먼 곳이지만,
이곳에서 강의요청이 들어오면 웬만하면 가려고 한다.
KTX가 있어서 교통이 생각보다 편한 것도 한 가지 이유지만,
진짜 이유는 그곳에 가면 엄청난 맛집을 갈 수 있어서다.
나주 하면 유명한 게 곰탕이라 곰탕집이 꽤 많이 있는데,
그 중 으뜸은 다름아닌 ‘하얀집’이다.
몇 년 전 연구 때문에 출장을 갔을 때 처음 맛보고 난 뒤 계속 가게 됐는데,
곰탕의 그 국물맛이 환상 그 자체다.

 

얼마 전 나주에 강의를 가면서 ‘오늘도 그집에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강의 주최측의 ‘식사 같이하자’는 요청을 다른 일정이 있다고 뿌리친 뒤
강의 후 홀로 택시를 타고 하얀집으로 향했다.
시간이 좀 늦어서인지 기다리는 줄이 길었지만 참을성 있게 기다렸고,
한 명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합석을 할 수 있었다.
배가 매우 고팠기에 ‘수육’을 주문하고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종업원이 다가오더니 혹시 TV에 나온 분이 아니냐고 한다.
열 번도 넘게 그곳에 갔지만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갑자기 웬일이람?
그렇다고 했더니 잠시 뒤 종이를 가져오더니 사인을 해달란다.
해줬다.

곧 수육이 나왔고, 난 한점 한점 먹을 때마다 나지막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 고기는 신의 음식이다!’ 이래가면서.

계산을 하려고 했더니 사장님이, 그전엔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저희가 영광이라면서 돈을 안받겠다고 했다.
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한사코 카드를 내밀었지만 허사였다.
할 수 없이 지갑을 꺼내 만원짜리 네장을 카운터에 놓고 밖으로 나갔다.
뒤를 보니 종업원이 만원짜리를 들고 날 쫓아오고 있다.
필사적으로 뛴 결과 그녀를 멀찌감치 따돌릴 수 있었다.
분한 표정으로 다시 식당에 들어가기에 가뿐 숨을 돌리는데,
잠시 뒤 다른 종업원, 그러니까 잘 뛰게 생긴 종업원이 날 향해 달려온다.
힘들어 죽겠었지만 다시 뛰기 시작하려는데
그녀가 소리를 지른다.
“휴대폰 가져가셔야지요!”
그제야 알았다.
휴대폰 두 개를 모두 테이블에 놓고 온 것을.

 

* 뒷얘기.
1) 나중에 확인해보니 내가 먹은 가격은 수육과 공기밥, 총 36000원이었다. 그러니까 난 4천원을 더 냈다.
2) 휴대폰을 받은 뒤 혹시 휴대폰 케이스에 돈이 끼어있지 않은지 뒤져봤다. 혹시 있었으면 그냥 받으려고 했는데, 없었다. 그런걸 보면 난 역시 속물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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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7-07-03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얀집 매니아였군요~ 하얀집의 내력도 아시는지요?^^

마태우스 2017-07-04 15:33   좋아요 0 | URL
앗 모르는데요 엄청난 내력이 있나봐요!!

단발머리 2017-07-03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남 나주 하얀집, 기억해야겠군요^^
사인도 해 주시고,
4000원도 더 내시고 ㅠㅠ
열심히 달음질하시고 ㅎㅎㅎ

마태우스 2017-07-04 15:33   좋아요 0 | URL
네 나주 하얀집은 정말 곰탕의 혁명입니다. 다른 데서는 입맛 버릴까봐 곰탕 안먹습니다.

moonnight 2017-07-03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치 신동엽의 꽁트를 보는 느낌의 페이퍼예요. 곰탕도 수육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침이 고이는 건 역시 마태우스님의 힘^^

마태우스 2017-07-04 15:34   좋아요 0 | URL
앗 달밤님이다. 곰탕과 수육을 안좋아하시는군요 그래서 제가 달밤님과 잘.... 암튼 반갑습니다^^

홍퀸 2017-07-04 1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ㅎㅎㅎㅎㅎ 담부턴 식사시엔 폰은가방에 미리넣어두시길요~ㅋㅋ 선행의기적2탄이네요?사인해주고 팁도드렸으니요~ㅋ 하얀집당장가고파지네요~수육에곰탕한사발 원샷하고싶네요ㅠ

마태우스 2017-07-04 15:35   좋아요 0 | URL
홍퀸님 안녕하세요. 술이 없어도 곰탕과 수육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식사, 하얀집으로 오세요....

카스피 2017-07-04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예전에 광주에 들렸다 시외버스 타고 나주에 곰탕먹으로 간적이 있네요.근데 유명한 짐이라고 해서 찾아갔는데 그집이 하얀집인지 가물가물하군요^^;;;

마태우스 2017-07-24 15:55   좋아요 0 | URL
그러심 안됩니다. 너무 맛있어서 이름이 도저히 까먹을 수 없는 게 하얀집인데, 외우셔야 합니다.

글자산책 2017-08-03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주는 한 번도 못 가봤는데, 하얀집 때문에라도 한 번쯤은 가봐야겠어요. ^^

마태우스 2017-08-06 01:16   좋아요 1 | URL
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국물도 아주 죽입니다만, 수육이 짱이죠.

보리숲 2017-09-22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앜!! 너무 웃겨요! 지하철에서 얼마나 크게 웃었는지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