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집 골목에서 해피가 암컷의 위에 올라탄 채 낑낑거리고 있었고 몇몇 아이들이 둘러서서 구경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장군이 엄마는 암수가 합해진 개들의 체위를 보자마자 입이 쩍 벌어졌다. 당장 해피 못지않게 씨근덕거리며 부리나케 우물로 가더니 들고 오는 것이 대야였다. 그때 해피를 향해 힘껏 대야의 물을 끼얹어버린 다음....(은희경 <새의 선물> 중)]
어린 시절, 난 가끔 개들이 서로 붙어있는 광경을 몇 차례 목격했다. 그럴 때면 어디선가 “저게 웬 망측한 짓거리야?”라든지 “빨리 물 떠와야 할텐데!”라는 말이 들렸고, 그 중 누군가는 진짜로 물을 가져와 개들에게 뿌렸다. 그땐 몰랐다. 개들의 표정이 얼마나 참담했는지를. 어른이 되고 난 뒤에야 한창 그럴 때 물을 뿌리는 게 잔인하기 짝이 없는 짓거리란 걸 깨닫는다. 은희경의 소설에 나오는 장군이 엄마는 첫애를 낳자마자 남편을 잃어 과부로 살아오는 사람, 그러니 개들이 하는 장면에 열이 받는 건 이해할 수도 있다. “개의 반응을 지켜보는 장군이 엄마의 얼굴은 가학적이기도 했지만 고소하다는 표정 같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장군이 엄마의 행위가 용서되는 건 아니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도 있는데, 밥보다 더 신성한 행위를 하고 있는 개들에게 왜 물을 뿌린단 말인가.
한 집에 한 마리씩이 고작인 형편에서 개 한 마리가 다른 개와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개가 밖에 나갈 수 있는 것도 산책할 때가 고작, 행여 이성을 만나더라도 안타까운 눈으로 스치듯 지나가야 한다. 개들은 사람처럼 러브호텔에 갈 수도 없다. 자기가 산다고 자기 집이 아니니 다른 개를 끌어들여 할 수도 없다. 일부 운이 좋은 개는 종의 번식을 위해 다른 개와 합방을 할 수 있지만, 모든 개가 그런 행운을 얻는 건 아니다. 그러니 개들이 할 곳은 역시 길거리밖에 없는데, 축복은 못해줄 지언정 왜 방해를 하는 걸까? 이것 역시 ‘개만도 못한’이라는 말이 욕으로 통용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개 차별 문화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나 역시 벤지에게 이성을 만날 기회를 주지 못했으니 할 말은 없다. 그래도 내가 꾸준히 팔을 제공해서 벤지의 자위를 도왔고, 벤지 역시 나중에는 자위에 길들여져 동종의 암컷보다 내 팔을 더 좋아하게 되긴 했지만, 자위와 진짜 하는 것이 행복감의 정도에서 수십배 이상의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벤지의 삶은 성적인 면에서는 불우 그 자체였다. 하루 종일 집을 나가 개를 심심하게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 마리 이상을 기르는 게 좋고, 정말 개를 위한다면 거기에 더해 암.수 짝을 맞춰 주는 센스가 필요할 듯싶다. 그렇게 하지 못할 거라면, 어렵게 만나 일을 치르는 개들에게 훼방은 놓지 말았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 건 사람만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