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번째: 테니스, 오래 쳤으면 좋겠다
일시: 4월 26일(수)
마신 양: 기본...
테니스 멤버 중 한명이 생일이라고 밥을 샀다. 테니스를 치기 시작한 게 95년이니, 햇수로는 12년째다. 실력이 그 기간에 비례하지 않는 건 안타깝지만, 그래도 그 동안 쉼 없이 테니스를 칠 수 있었던 건 무척이나 행복한 일이다.
같이 치던 친구들 중 많은 이가 부상으로 테니스를 그만뒀다. 그렇게 본다면 내가 이렇다 할 부상 없이 지금까지 버텨온 건 큰 다행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내 욕심은 끝이 없다. 매주 일요일, 60대로 보이는 분들이 꼬박꼬박 테니스를 치는 걸 보면서 말하곤 한다. “우리도 저 연배까지 칠 수 있을까?”
건강하기 위해서 테니스를 치는 측면도 있지만, 테니스를 칠만큼의 건강이 앞으로도 유지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테니스가 마음먹은 대로 안된다고 스트레스를 받을 게 아니라, 푸른 코트에서 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난 고혈압이고, 열을 받으면 혈압이 어디까지 올라갈지 모르니까.
54번째: 학회에 참석하다
일시: 4월 27일(목)
마신 양: 주량의 97%
사실 저 등록비 안냈습니다...
김치파동을 주제로 한 학회에 참석했다. 여러 가지 좋은 얘기들이 나왔고, 난 그걸 그대로 받아 적었다가 글 쓰는 데 활용했다. 거기서 내가 했던 말, “세상에는 안전한 김치와 위험한 김치가 있는 게 아니라 맛있는 김치와 맛없는 김치가 있을 뿐이다.” 불행히도, 아무도 이 말에 주목하지 않았다.
학회가 끝난 후 회식이 있었다. 고기를 구워먹었고, 2차는 노래방에 갔다. 3차는 폭탄주를 가위바위보를 해서 먹었으며, 신촌에서 감자탕을 먹으며 4차를 했다. 이번 학회에서도 난 한편의 연제도 발표하지 않았는데, 마지막 발표를 한 게 2001년이니 무려 5년 동안 무발표 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올 가을은 이미 그른 것 같고, 내년 봄에는 시원치 않은 거라도 발표를 해봐야 할 텐데.
55번째: 서클 졸업생 모임
일시: 5월 1일(월)
마신 양: 주량의 80%
학회날, 모교 기생충학 교수이자 서클 지도교수인 분이 날 불렀다.
“우리 언제 얼굴이나 봐야지 않을까?”
주말은 그냥 넘어갔고, 월요일 하루 동안 난 이십통이 넘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서클에서 가장 동원력이 높다는 나지만, 하루 만에 연락을 했을 때 과연 몇 명이나 올지 불안했던 건 사실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날 열세명이나 되는 졸업생이 참석을 해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레퍼토리는 뻔했다. “어쩜 넌 하나도 안변했니?”란 말을 우리들끼리 주고받았다.
사람들은 대개 연락하는 걸 귀찮아하지만 난 그게 그리 싫지 않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에게 연락을 맡기느니 내가 하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온다고 해놓고 안오거나, “못가요!”라고 단호하게 거절할 때면 상처를 좀 받지만, 그래도 못오는 걸 미안해하거나, “꼭 갈께요”라고 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게 날 버티게 하는 것 같다.
다음날 나보다 2년 후배한테서 전화가 왔다.
“형. 어제 저 실수 안했어요?”
실수라. 음, 생각해보자. 그 친구는 전날 1차에서 무지하게 많이 마셨고, 2차로 간 닭집에선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처럼 자면 예쁘기라도 할텐데, 그는 닭에 딸려나오는 무를 맨손으로 쥐고 우리의 입에 넣어 줬다. 나도 두개나 먹었는데, 지도교수님한테까지 무를 먹일 땐 좀 아니다 싶었다. 그밖에도 그는 약간의 만행을 계속 저질렀고, 동기들과 선배가 데리고 나가 정신을 차리라고 했다는데 별반 달라진 건 없었다. 그래도 나중에 엎드려 잘 땐 귀여웠다. 나이가 들면서 술을 주량 끝까지 먹는 일이 줄어드는 건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난 저러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탓이다. 하여간 난 그에게 이렇게 말해줬다.
“글세. 별 실수는 안했는데? 무 좀 먹인 게 실수는 아니지.”
“무를 먹였어요? 아이고 참.”
한동안 그는 술을 잘 안 먹을 것 같다.
56번째: 친구들과
일시: 5월 2일(화)
마신 양: 주량의 72%
연남동 뒷골목, 이렇게 말하면 애매하니 ‘사러가 쇼핑센터’ 근처라고 하는 게 낫겠다. 이곳에는 화교들이 하는 중국집이 꽤 많다. 어느 곳을 들어가도 다 맛있다고 할 만한데, 개인적으로는 ‘산동’으로 시작하는-다섯 글자인데 상호를 까먹었다-중국집을 추천하고 싶다. 내 친구 표진인의 소개로 인연을 맺은 곳인데, 음식이 아주 깔끔하고 맛있으며, 특히 맛있는 건 유미짜장이다. 언젠가 할머니를 모시고 갔었는데 여간해서는 그런 말씀을 잘 안하시는 할머니가 “맛있다.”를 연발하셨다. 그날 같이 간 친구들도 맛있게 먹었기를 바란다.
쓰다 보니 내가 지난주 술을 단 두 번밖에 안 마셨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놀랄 일이다. 그 전 주에도 겨우 세 번. 최근의 상승세에 힘입어 5월 8일까지 겨우 56번이라니, 대단하지 않는가? 여기에 더해 운동까지 열심히 했으니, 얼굴이 갸름해졌다는 말을 수없이 듣는 것도 당연하다. 잘만 하면 올해를 100번 이하로 마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져 작년 이맘때는 몇 번이나 마셨는지 찾아봤다. 오, 오십두번... 올해는 작년보다 4번이 더 많다! 작년에 마신 게 165번인데 올해는 과연 몇 번이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