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실은 저도 군대 덕분에 이렇게 편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알아요. 제가 어찌 신성한 군대의 의미를 부정하겠어요. 하지만 가끔씩 군에 대한 회의가 들 때가 있습니다. 오늘이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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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건 간에 군대는 있다. 작은 정부를 추구한다는 국가에서도 군대를 늘리면 늘렸지, 줄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거기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군대가 자국 국민의 안녕을 보장해 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군가산점 제도가 폐지되었을 때, 많은 남성들이 이화여대 게시판에 몰려가 했던 말도 “너희들, 우리 없으면 정신대로 끌려간다.”였다.
희한하게도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군대가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전해 준 적이 드문 것 같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을 제외한 관군은 도망가기 바빴고, 왜군을 물리친 힘은 민초들로 구성된 소위 ‘의병’과 명나라 군대였다. 두 차례의 호란에서 국민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을 테고,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겨 치러야 했던 고통은 또 얼마인가. 6.25 때도 마찬가지다. 입만 열면 ‘북진통일’을 부르짖던 이승만 정권은 막상 전쟁이 터지자 도망치기 바빴으며, 임진왜란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를 구한 것은 UN군의 탈을 쓴 미군이었다. 우리 국군은 뭘 했을까. 열심히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6.25 때 자행된 숱한 양민학살 중 상당수는 우리나라 군.경의 소행이다. 3만명이 죽었다는 4.3 항쟁이나 거창 양민학살이 과연 빨갱이의 짓인가.
몇 번 지더니 이래서 안되겠다고 생각했을까. 우리나라는 군사력을 키우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방위성금을 냈고, 국가 예산의 30% 이상은 언제나 국방비였다. 하지만 오랜 기간 전쟁이 없어서 그런지, 우리 손으로 키운 군대는 우리에게 총부리를 들이댔다. 우리 손으로 뽑은 정권을 무너뜨린 5.16과 12.12는 지들끼리의 밥그릇싸움이라 해도, 80년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의 만행은 군대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회의를 갖게 했다. 다큐멘터리 소설 <봄날>(임철우 저)을 읽어본다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세금을 내는지 의문이 생길게다. 군대 중 일부가 전경이란 이름으로 탈바꿈, 국민의 안전과 생명보단 정통성 없는 정권을 보위하며 민주화를 외치는 시민들을 짓밟은 건 그리 오래 전 일도 아니다. 심지어 우리 군대는 반미시위에 맞서 미군을 지키는데 동원되어 시민들을 탄압했는데, 미군이 우리나라에 있는 이유가 우리나라의 안전을 위해서라는 걸 생각해 보면 세상에 이런 코미디가 없다. 어느 나라 군대가 남의 나라 군대를 지키느라 자국의 국민에게 폭력을 휘두른단 말인가.
어제 평택에서 일어난 일 역시, 우리 군대의 지난 역사로 판단컨대, 새로운 일은 아니다. 미군들이 살 터전을 만들어주기 위해 농사짓고 잘 살던 농민들과 거기 동조하는 시민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것도 놀라울 게 없다. 그들은 평소 하던 일을 했을 뿐이니까. 내가 정말 놀라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이 우리나라 군대를 맹신한다는 거다. 싫은 마음은 있겠지만 남성들은 모두 군대를 가고, 세금의 상당부분이 국방비로 쓰이는 것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 징병제에 의문을 제기하기라도 하면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좌파라는 딱지가 붙는다. 북한이라는 적이 있는 상황이라 해도 군에 대한 우리의 맹신은 좀 유별난 데가 있다. 어디서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말이 생각난다. 전쟁을 막기 위해 군대가 있는 게 아니라, 군대가 있음으로 해서 전쟁이 있는 거라고. 우리나라에서 군대의 존재의미는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