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는 친구가 있는데 어머님이 몸이 안좋아서 진료를 받고 싶다고, 좀 빨리 되는 곳을 원한다고. 한다하는 데는 다 몇 달씩 기다려야 하기에 당장 급한 거면 천안으로 오라고 했더니, 그렇게 한단다. 병원에 근무하는 후배에게 부탁을 해서 예약을 잡았다.


내가 한 건 그게 전부다. 굳이 추가한다면 진료 당일날 나가서 수납 하는 걸 도와주고, 외래 볼 때 동행해 준 것, 후배한테 “잘 좀 봐달라.”고 말한 뒤 일하러 간 것 정도? 이런 건 내겐 ‘기본’이다. 나중에 전화해서 결과가 어떠냐고 물어봐주는 것도 당연한 수순. 하지만 그녀는 이런 게 생소했는지 무척이나 고마워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영화 티켓을 보내 준단다.

“아유, 아니어요. 제가 그냥 알아서 볼께요.”

하지만 그녀가 준다는 건 그냥 티켓이 아니었다. 골드 클래스, 내 인생에서 지금까지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거의 경험하지 못할 비싼 티켓이었다. 작가 일을 하는 그녀는 그 표가 ‘우연히 생긴 것’이라고 말했지만, 어찌되었건 내 작은 친절에 대한 보답 치고는 너무 융숭했다.


그 주에는 바빠서 못가고, 그 다음 주에 미녀와 함께 용산 CGV를 찾았다. 상영하는 영화는 반갑게도 내가 보고 싶었던 <크래쉬>였다(그 전주에 갔다면 <시리아나>를 볼 뻔했다). 골드 클래스의 서비스는 정말이지 훌륭했다. 비행기의 비즈니스 클래스가 대기할 수 있는 장소를 따로 마련해 놓았듯이 극장의 골드 클래스 역시 그랬다. 어여쁜 아가씨가 테이블을 안내했고, 대기 중과 영화 관람 중에 각각 한차례 씩 음료를 제공했다. 몇 안되는 좌석은 등받이와 발 받침대 각도를 조정할 수 있는 특수한 의자였고, 스크린도 보고 있자니 눈이 시원했다. 하지만 서비스보다 훌륭한 건 영화 그 자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영화는 많았지만 거기에 더해 재미까지 있는 영화가 과연 얼마나 될까. 편한 자리여서 내 마음이 더더욱 불편했을지 모르는데, 그 영화를 보면서 난 우리나라에 인종처럼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문제가 없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 말고도 몇몇 커플이 극장 안에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아름다운 경험을 선사하는 게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서비스에 비해 골드클래스의 가격은 너무 비싼 것 같다. 아무튼 난, 공짜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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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oxov 2006-04-23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래쉬 영화는 어땠나요?평들은 대체로 좋지 않던데.

바람돌이 2006-04-23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가 본적이 있는 사람으로서 마태님의 친절은 절대 작은게 아닙니다. 마태님 정도의 친절이면 정말 저라도 저정도 보답은 하고싶었을 듯.... ^^

마태우스 2006-04-23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xoxov님/앗 안녕하세요. 첨 뵙겠습니다. 음 크래쉬 영화는... 정말 재미있었구, 여느 공포영화보다 훨씬 더 무서웠습니다. 십점 만점에 9.7 정도?

마늘빵 2006-04-23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골드클래스 한번 가보고 싶어라.

마태우스 2006-04-23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음....아는 사람 부탁받고 한 거니 좀 다르지 않을까요. 그 친구 얼굴을 봐서도 더 잘했어야 했는데, 수업 핑계대고 밥도 안샀거든요........ㅠㅠ

마태우스 2006-04-23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리고 그녀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안겨주고 싶다면...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도 그런 경험을 안겨줄 수 있을 것입니다. 님처럼 멋진 남자라면 말입니다. ^^

해적오리 2006-04-23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마태님 페이퍼를 읽다보면 미녀분이 끊임없이 등장하시는군요. 부럽사옵니다.
글코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급할 때 그정도의 친절은 받는 사람에겐 너무나 절실한 도움이잖아요. 전 큰 병원감 현기증부터 나는 사람인데 누가 옆에서 부탁 한마디 해기만해도 좋겠드라구요.

moonnight 2006-04-23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소한 친절이 아니죠. 당사자는 얼마나 고마왔을까요. 과도한 보답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역시 너무 착하신 마태우스님 ^^ 아아. 크래쉬. 저도 봐야하는데 왠지 주저주저하고 있는 영화예요.

Xoxov 2006-04-24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처음이 아닐껄요?^^a ㅋㅋ

별족 2006-04-24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푸는 사람입장에서 모든 친절은 사소하고, 모든 보답은 과도해야 좋은 거죠.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또 그 반대여야 하고.
그러니까, 실재로 그러한 거라기보다는 느끼기에 그러해야 한다구요. 항상 친절을 베풀 때나, 보답할 때나 고민하잖아요. 너무 과도한 친절은 아닐까, 너무 사소한 보답은 아닐까, 하는.

Mephistopheles 2006-04-24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코 사소한 친절은 아니라고 생각되는 걸요...^^
그 친절을 받으신 분은 그만큼 절실하지 않으셨을까요....^^

마태우스 2006-04-24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그게 그런 걸까요. 전 전화 한통 걸어준 것밖에 없는데....... 그러고보면 어떤 자리에 있다는 건 친절을 베풀기가 쉽단 뜻이군요...
별족님/오오 님의 주옥같은 말씀, 잘 새기겠습니다. 꾸벅.
XOXOV님/아 전에 뵈었나보군요. 죄송합니다. 미리 알아모시지 못했습니다. ^^
달밤님/반가워요 달밤님. 요즘은 어케 지내시는지요??
해적님/네 알겠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글구 미녀 얘기가 많이 나오는 건 미녀 분들이 주위에 많기 때문이랍니다^^

미래소년 2006-04-24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래쉬 재밌지요?
저도 근래 본 것 중 가장 많은 별을 주고 싶었다는... ^^
(참, 혹시나 제가 아프게 되면 마태님의 그 "기본" 서비스를 기대해도 될까요? ^^)

마태우스 2006-04-25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래소년님/그럼요. 기본 서비스 이외에 추가의 친절도 베풀어 드릴께요. 근데 웬만하면 안아프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