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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있는 콜버그의 호프집 - 통념을 깨는 윤리학
이한 지음 / 미토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어, 이 책 내가 주문한 적 없는데?”
<철학이 있는 콜버그의 호프집>이 머리맡에 있는 걸 보고 난 책 배송이 잘못된 줄 알았다. 의사윤리 쪽으로 주문을 계속 넣다보니 그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겠지. 바꿔달라고 하기 전 인간이면 가질 수 있는 호기심 때문에 몇 페이지를 읽었고, 그러다보니 바꾸고 싶은 생각이 없어져 버렸다. 소설 형식으로 우리 사회의 윤리를 논증한 이 책은 제법 유익하고 나름의 재미도 있었기에, 서점 측의 실수가 오히려 좋은 책을 만나게 해줬다고 혼자 좋아했다. 책을 3분의 2 가량 읽었을 무렵, 이 책의 출처를 알아내 버렸다. 서점 측의 배송잘못이 아니라, 지난번에 만난 아는 분이 내게 선물한 것이었다. 마흔은 이렇게 깜빡깜빡 할 나이다. 징그러운 나이 같으니.
윤리가 밥 먹여주냐는 말이 횡행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윤리라는 건 저 세상에나 있는 덕목이다. 사람들은 윤리에 현저히 위배된 법을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이며, 그나마 아는 윤리조차 실천하려 들지 않는다. 저자는 주장한다.
“윤리학은 항상 실용적인 담론화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저자의 주장처럼 이 책의 주인공들은 간통죄, 포르노, 성매매 등 쟁점이 되는 현안들을 윤리적인 관점에서 논증하고, 실용적 담론화를 위해 명쾌한 대안들을 제시한다. 책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들이 많지만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게 바로 징병제 문제, 저자는 징병제가 ‘국가의 필요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그럼 대안은 있는가? 사실 난 다음 통계에 잠시 멍해졌었다.
“전체 국방비의 45%가 인건비인데, 이 인건비는 모두...장교와 하사관의 인건비다...사병의 인건비는 전체 국방비의 0.5% 정도다.”
그렇다.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싼 값에 사병을 착취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모병제를 하려면 어느 정도의 세금을 부담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저자는 그래서 ‘단계적 모병제’라는 획기적인 대안을 내놓는다. 복무기간을 6개월 단축하는 대신 징집연령 대상자에게 600만원-물론 누진세다. 부자는 1200만원, 빈자는 200만원-을 향후 십년에 걸쳐 갚도록 하는 것. 돈을 내기 싫다면 6개월을 더 복무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점차 복무기간을 줄여나가자는 게 저자의 대안,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해당 연령대의 여성에게도 돈을 걷는다는 것. 반발할 여성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건 군복무를 이유로 가해지는 차별을 철폐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단다. 내 요약 능력이 떨어져서 이해가 잘 안가신다면 직접 책을 읽어 보시라. 각종 현안에 대해서 전문가가 되버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책을 선물해 주신 그분께 감사드린다.
사족: 책에서 벌어지는 토론의 공간이 맥주집이라, 읽는 동안 술 생각이 많이 났던 게 유일한 단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