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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의사에게 어떻게 속고 있나 - 어느 의사의 고백
로버트 S. 멘델존 지음, 김세미 옮김 / 문예출판사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라는 책을 썼던 의사 멘델존이 ‘여자들이 의사에게 어떻게 속고 있나’는 책을 냈다. 현직 의사가 의료계의 잘못된 관행들을 무자비하게 비판한 책이라는 것만 해도 관심을 가질 만하지만, 책이 그리 많이 팔린 것 같지는 않다. 안팔리는 책을 쓴다는 공통점이 있는 내가 그 원인을 분석해 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너무 흥분해서 쓴 티가 역력했다. 전문가답게 냉정하면서도 차분하게 하나하나 현대의학의 잘못을 꼬집는 걸 독자들은 더 원하는 게 아닌가 싶다. 둘째, 의학을 비판하면서 너무 많이 나간 듯하다. 병원이 아닌 집에서 아이를 낳는 게 훨씬 더 좋다고 주장하는 건,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현대의학에 세뇌가 되어서 그럴지라도, 책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기 십상이다. 셋째, 번역이 너무 늦게 되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의료의 실상은 주로 1980년대이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20년은 너무도 긴 세월, 저자가 비판하는 80년대의 상황이 지금은 더 열악해지었을지언정, 독자들은 멘델존의 비판을 흘러간 과거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건 별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멘델존이란 이름도 왠지 ‘멘델스존’의 아류인 것 같아서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물론 난 이 책의 문제제기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책 뒷표지에 나오는 것처럼 남자가 우울증을 호소하면 의사가 카운슬링을 받으라 하지만, 여자가 그러면 대번에 항우울제를 처방하는 경향이 의료계에는 분명 있다. 히스테리라는 게 사실은 ‘자궁’을 뜻하는 단어인 것처럼, 남자 일색인 의료계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었으리라. 폐경이 되면 자연히 크기가 줄어드는 자궁근종 때문에 자궁적출을 하는 일은 얼마나 흔한가. 남자의 고환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고환을 잘라내라고 하진 않을 거면서 말이다. “수입이 수술 건수에 달려 있는 의사의 경우 월급을 받는 의사보다 50-100% 더 많은 수술을 시행한다.”는 통계치도 수술 여부가 의사의 자의적인 판단에 더 좌우되는 게 아닌지 의심을 품게 해주고, 가만 둬도 잘 태어날 아이에게 유도분만이나 제왕절개가 지나치게 자주 행해진다는 저자의 주장도 의료계가 반성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하지만 아까 말한 것처럼 저자의 흥분이 지나쳐 객관성을 잃어버린 듯한 것이 아쉬운 대목이다. 예컨대 “여러분의 외과 주치의는 훌륭한 훈련을 받았고 신중하기 때문에 절대로 실수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서는 안된다.”는 구절을 보자. 환자가 가짜약을 먹고도 낫는 플라시보 효과는 의사에 대한 신뢰가 치료에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의사가 실수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는 게 의사와 환자 중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건강검진 하면서 찍는 엑스레이가 암을 유발한다는 주장, 정기검진이 도움이 안되며 오히려 그로 인해 생기는 질환이 훨씬 더 많다는 주장 등은 “서른 넘으면 건강검진 받으셔야 해요.”란 말을 남발하고 다니는 나에게 어리둥절함을 선사했다. 건강검진 덕분에 조기에 위암을 발견해 지금도 비교적 건강한 삶을 누리고 계신 은사님을 저자가 본다면 과연 뭐라고 할까? 도발도 때로는 필요하지만, 이 책에서 난 냉정함이 아쉬웠다.
* 그나저나 냉열사 님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