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떡은 때려 죽여도 못먹는다,라는 책의 제목은 제 모습을 떠올리게 하네요
1. 또다시 리바이벌하는 음식 이야기
내가 외국 음식을 못먹는다는 걸 알게 된 시기는 어릴 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일본에 살고 계셔서, 일제 물건들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일본 초콜릿, 하지만 이상하게도 난 일제 상표를 보는 순간 그 초콜릿에 비위가 상해 버렸다. 학교에서 집중적으로 가르쳤던 반일감정 때문만은 아닌 것이, 그게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시작이 되었으며 그 대상이 비단 일제가 아니라 미제 버터 등 모든 외국상표에 적용되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할머니의 초청으로 일본을 간 적이 있다. 그때 난 일본음식을 전혀 먹지 못하고 헛구역질만 해댔는데, 두 번째로 외국에 나간 95년, 증세는 더더욱 악화되었다. 그래도 할머니가 일본쌀로 해준 밥은 먹었던 게 어린 시절이라면, 그때는 태국쌀을 아예 입에 대는 것도 불가능했으니까. 배가 부르다며 태국 음식을 넋 놓고 보고만 있던 내게 태국 학자가 한 말이다.
“I think you are not used to thailand food(내 생각에 너는 태국 음식이 익숙치 않는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맛있다며 잘 먹는 와중에, 난 오직 과일에 맥주만 들이키며 일주일을 버텼다. 내가 한국서는 과일을 안먹는 걸 감안하면, 그 시절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가? 집에 온 뒤에도 “태국 냄새가 난다.”면서 한동안 음식을 먹지 못했으니, 외국 음식에 대한 심리적 알레르기는 정도가 지나쳤다.
스페인에 가면서도 그 걱정을 안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유럽 음식은 어떻게 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내 증세가 조금은 나아졌기를 바라면서 비행기를 탔는데, 유감스럽게도 내 증세는 더더욱 악화되어 있었다. 도착한 첫날 난 그 사실을 깨달았다. 안주로 나온 소시지 비스무리한 것을 난 거의 먹지 못했으니까. 스페인 음식은 물론이고 초콜릿이나 과자까지도 먹지 못한 내가 스타벅스나 맥도널드를 찾은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세계화되어 통일된 메뉴를 자랑하는 패스트푸드점도 그 나라의 음식문화를 반영한 결과물, 맥도널드의 햄버거나 스타벅스의 샌드위치는 보는 것만으로도 날 질리게 했다. 그러던 차, 우연히 발견한 ‘루까스 분식’은 내게 구세주였다. 거기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일정을 앞당겨 귀국하자고 말했을 것이다. 2월 4일, 내 생일날이던 그날 라면에 공기밥을 먹으며 감격에 몸을 떨었던 얘기는 전에 했으니 생략한다.
그 다음날인 일요일, 루까스 분식이 문을 닫는 바람에 난 점심을 굶어야 했다. 오후에는 미녀가 아는 스페인 친구들과 더불어 마드리드에 있는 공원에 갔고, 허기진 배를 싸안고 일광욕을 했다. 그리고 나서 오후 다섯시쯤 그 중 한 친구의 고향집을 방문했다. 교외에 위치한, 부모님과 이모님만 사는 그 집은 겉보기에 아주 근사했고, 부모님의 인상은 참으로 좋았다. 더 좋았던 건 우리가 왔다고 부모님과 이모가 한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세대간의 교류가 지금은 더 없어졌지만, 그전이라 해도 친구가 놀러왔다고 부모가 같이 껴서 노는 일은 우리나라에서 드물지 않는가? 하지만 멋지게 늙으신 그분들은-한분은 손을 많이 떠셨지만-시종 인자한 미소를 띠면서 과자와 커피로 우리를 대접했다. 내가 여자를 꼬실 때 쓰는 마술을 몇 개 선보이자 무척 놀라시던 게 기억이 나고, 내가 스페인어 몇 개를 해보이자 대견해하던 생각도 난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난 밥을 주는 줄 알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밥을 하는 기척은 보이지 않는다.
“저...밥은 안주나요?”라는 말을 영어로 어떻게 하나 궁리하는데, 이제 그만 나가잔다. 황당했다. 한국 같으면 당연히 식사를 대접했을 거다. 물론 난 스페인 음식을 못먹지만, 그땐 배가 고파서 뭐든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었다. 황량한 마음으로 그곳을 나온 우리는 물어물어, 나중에는 루까스 주인에게 전화까지 해가며 기차역 부근의 한국 음식점을 찾았고, 하루종일 굶은 분풀이를 그곳에서 했다.
외국음식에 대한 내 혐오는 전적으로 심리적인 것이다. 세계화된 시대에 어떻게 나같은 인간이 있을까 싶지만, 못먹겠는데 어쩌겠는가. 해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열리는 학회에 한번도 참석하지 않는 내게 지도교수는 “노력을 해야 해.”라고 말했지만, 그게 노력으로 되는 건 아닐 것이다. 같이 갔던 미녀 역시 “이렇게 심각한 줄 몰랐다.”며 동정을 표했고, “앞으로는 다시 외국 가자고 안하겠다.”고 할 정도였다. 물론 나도 다시는 외국에 가고픈 마음이 없다. 교직에 있으면 한번쯤 가야하는-그리고 서로 가려고 난리인-미국 연수 역시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걸 보면 문제는 문제다.
에피소드 하나. 화요일날, 세고비야라는 옛날 유적지-기타와는 별 관계가 없는-에 놀러간 적이 있다. 그곳에는 한국 식당이 없을 게 뻔하기에 전날 루까스 분식에서 김밥을 포장해 갔다. 냉장고에 넣어둔 김밥을 아침에 꺼냈고, 점심으로 남들이 양념도 안된 맛없는 닭다리를 먹을 때 김밥을 하나둘씩 입에 우겨넣었다. 얼려진 김밥은 하나도 맛이 없었고, 다 먹고 나서 헛구역질이 났다. 그때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해가며 살아야 하는가?”
* 사진은 오늘 받기로 했어요. 다음부턴 사진도 첨부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