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을 쉬는 동안에도 전 계속 술을 마셨습니다. 100번만 마시겠다고 해놓고선 벌써 16번째, 올해도 목표달성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20일까지 14번을 마셔서 "이대로 간다면 250번을 넘기겠네."라고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지난주에는 술을 한번도 마시지 않아 예상치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간 마신 술일기는 강물에 띄워보내고, 16번째부터 성실하게 술일기를 쓰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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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1월 28일(토)

누구와: 친구 둘과

 

어디서 주워들은 말을 따라해 보자면, 음식 때문에 눈이 먼 적이 세 번 있었다. 어릴 적 전주에서 비빔밥을 먹고 눈이 멀었고, 병천에서 순대를 먹고 그 엄청난 맛에 두 번째로 눈이 멀었다. 그리고 세 번째. 평소 좋아하지 않던 족발을 장충동에서 먹고나서 난 그만 맛이 가버렸다. “천국이 있다면, 거기서는 이런 족발을 매일 먹고 있을 거예요.”라는 말을 같이 먹던 선배에게 했을 정도.


그 족발이 못견디게 생각이 나, 토요일의 술약속 장소를 그 근처로 잡았다. 하지만 설 연휴라 내가 갔던 원조집은 문을 닫아버렸고, 호객행위를 하는 다른 가게 아주머니들만 잔뜩 나와있다. 호객행위를 한다는 건 사람이 없단 소리, 그래서 난 그런 아주머니들의 꼬임에 잘 넘어가지 않는다. 언제언제 방송에 출연했다는 간판들 틈에서 난 그럴듯한 집을 발견했고, 거기로 가려 했다. 하지만 그집 간판엔 족발보다 보쌈을 더 크게 강조해 놓았다. 족발에 마음이 있던 우리가 망설이는 사이 호객행위를 하며 우리를 꼬시던 아주머니가 해서는 안될 말을 했다.

“그집 맛 없어요. 우리집으로 와요.”

보쌈집 아주머니가 그 말을 듣고 발끈하는 동안, 우리는 그 아주머니 집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싸움은 커졌고, “저 손님 가져가라 그래!”라며 주인 아저씨가 우리에게 나가라고 손짓을 한다. 가게에서 나와보니 양측 다 사생결단으로 싸우고 있다. 하루이틀 보는 사이도 아닌데 왜 저렇게 싸울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 싸움이 우리 때문에 벌어진 거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른 집으로 옮기는데 우리를 계속 따라다니던 아주머니가 이런다.

“싸움 그만 붙이고 우리 집으로 와요.”

이 말이 말도 안되는 말이라는 걸 떠나서, 우리가 겨우 세명인데 그 정도라면, 이십명 쯤 되는 단체가 그랬다면 각목을 들고 싸우지 않았을까.


어느 한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족발을 시켰다. 그 족발은, 일주일 전 내가 선배와 먹었던 족발에 비해 50%쯤 맛이 없었다. 그 족발을 먹으며 “맛있다.”고 하는 친구를 보면서 난 속으로 “그때 그집 갔으면 기절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맛있는 족발집은 역시 장충동이고, 동대입구에서 전철을 내려 3번 출구로 나간 뒤 원조집과 원조집 사이 골목에 자리한 집이 가장 맛이 있다. 상호 이름을 적어놓는다는 걸 또 까먹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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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06-01-29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족발집이었군요. ^^; 아직 일월인데 열여섯번이라니요. ㅜㅜ 역시 대단하신 마태님. 저도 족발 먹게 된 것이 2002년 겨울인가부터니까 몇 년 안 됐어요. 생각보다 쫄깃하고 맛있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나네요. 흠. 장충동 족발. 한 번 먹어보고 싶어요. ^^

모1 2006-01-29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족발집이야기가 아닌 싸움이야기였군요. 와...무서운데요. 손님이 무슨 죄인가..싶기도 하네요. 그냥 맛있는 것 먹으러 왔을뿐인데...

모1 2006-01-29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 잘 보내고 계신가요?

다락방 2006-01-29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족발 먹고 싶어요. 상추에다 족발 한 점 올리고 생마늘에 쌈장을 찍어 고추와 함께 올리고 한입에 다 넣은 뒤 마무리는 참이슬로. 와우~ 온몸에 전율이 일어나는군요. :)

하루(春) 2006-01-30 0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맛있는 족발을 왜 안 좋아하셨었어요? 족발 좋아하기 시작하면 뼈 채 들고 뜯는데...

마태우스 2006-01-31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발이라는 단어가 제게 안좋은 느낌을 줬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맛없는 데서 족발을 배웠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다락방님/마무리는 참이슬이라...그러니까 님에게 술은 족발의 맛을 높여주기 위한 추임새 비슷한 역할을 하네요. 전 참이슬을 더 잘 넘기게 해주기 위해 족발을 먹습니다^^
모1님/이번 설도 대충 아름답게 보낸 것 같습니다^^ 그죠? 저 정말 억울하죠? 다시 거기 가기가 싫더라구요.
달밤님/다음에 서울 오시면 그 환상적인 원조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님도 족발을 늦게 시작하셨네요^^

산사춘 2006-02-01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덕에 족발이 땡겨부리는 화창하지 않은 오전입니다. 합정동 족발은 다 시켜봤는데 정말 맛이 개떡같아요. 죽이는 족발파는 동네가 그리오요.

마태우스 2006-02-01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춘님 언제 우리 족발 먹으러 가요. 그간 우리가 너무 곱창에만 치우쳤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