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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치학 사전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작년 한해, 난 137권의 책을 읽었다. 생애 최고기록이긴 해도 그다지 기쁘지는 않았다. 지난 몇 년을 돌이켜본 결과 너무 권수에만 집착한 게 아니었냐는 자기비판이 날 괴롭혔기 때문. 책달력을 넘기다보니 한달에 열권 이상을 읽으려고 발바둥을 친 흔적이 꽤 자주 발견된다. 어려운 책을 읽느라 날을 많이 잡아먹은 달에는 반드시, 금방금방 읽히는 책들을 읽음으로써 열권을 채운 것. 책에 탐닉한 지 이제 십년, 그만큼 권수에 집착했으면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건만, 난 왜 아직도 실적주의에 목을 매는 것일까.
그래서 올해는, 몇권을 읽었나에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매달 열권은 읽자’는 신화에 매몰된 나머지 읽을 엄두를 못냈던 책들을 다 읽어버리자. 그 일환으로 집어든 것이 강준만 선생의 <나의 정치학 사전>이다. 강준만 선생이 책을 그다지 어렵게 쓰는 분은 아니지만, 이 책의 대단한 점은 페이지 수가 무려 750쪽이 넘는다는 거다. 신자유주의, 문명충돌론, 포퓰리즘, 끝도 없이 나열되는 주제들에 대해 줄을 벅벅 긋다보면, 내가 지금 취미로 책을 읽는 것인지 아니면 공부를 하는 것인지 헷갈려 버린다. 마라톤 골인지점을 지나기 전 ‘눈물고개’가 있는 것처럼, 700페이지를 넘기고 나니 지겨움이 극에 달해 나머지 부분을 해치우는 걸 차일피일 미루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어느날 새벽 난 이 책을 다 읽었고, 다 읽은 기쁨에 자리에서 일어나 타잔이 코끼리를 부르는 소리를 냈다.
사실 내가 사람 노릇을 약간이나마 하게 된 것은 다 강준만 선생 덕이다. 그분은 내게 세상을 바로 보는 법을 가르쳐 줬고, 책을 통해서 많은 가르침을 줬다. 이 책 역시 내가 모르면서 아는 척을 했던 수많은 주제들을 내게 가르쳐 준다. 뜨거운 분노와 기발한 풍자가 그분 글의 특기지만, 여기서는 시종 무미건조한 문체로 담담히 지식을 전달하는데, 가장 인상깊게 읽은 한대목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 방대한 책의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잘나가던 국회의원이 어느날 갑자기 한국 정치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화끈하게 정계 은퇴를 선언한다. 박수가 쏟아진다. 언론은 다른 의원들도 그런 자세를 배우라고 공박까지 해댄다. 그러나 그 의원은 변호사이기 때문에 그런 화끈함을 보일 수 있었다는 건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문제는 정치를 그만두면 돌아갈 곳이 없는 정치인들일 것이다. 정치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은 의원들이 생계수단을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에 대해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라는 딱지를 너무 쉽게 붙인다...정치인이 정치에 의해 사는 측면에 대한 공공적 논의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