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배우를 동생으로 둔 지인 덕분에 연극 ‘맥베스’를 봤다. 다 아는 내용인데 뭐하러 보나, 심드렁한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어릴 적에 읽은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고, 그 덕분에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다. 병사들이 머리에 나뭇가리를 꽂고 이동하는 장면에서야 ‘아, 이게 그거구나!’는 걸 깨달았을 정도. 하긴,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나눈 대화를 보면 내가 뭘 헷갈린다는 걸 알 수 있다.

지인: 맥베스 내용 알아요?

나: 당근 알죠. 범인이 이아고잖아요.

지인: 그건 오델로죠!


마녀 셋으로부터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맥베스는 결국 왕을 죽이고 권력을 찬탈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예언의 속성에 대해 잠시 생각을 했다. 전쟁에서 공을 세워 영주로 봉해진 맥베스가 그 예언을 듣지 않았다면 현재 위치에 만족하면서 잘 살지 않았을까? 하지만 예언으로 인해 마음이 들뜬 맥베스는 무리한 수단으로 왕이 된 뒤 누가 자기를 죽이지나 않을까 불안에 떨면서 폭정을 펼친다. 그러니까 예언에는 어느 정도 자기 충족적인 속성이 있다. 경제가 어렵다 어렵다 하면 소비가 줄어들고 진짜로 경제가 어려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몇 년 전, 내 책이 대박난다고 했던 박수무당의 예언을 쫓아 사재기를 그리도 열심히 했지만, 쪽박만 찬 적이 있다. 예언과 택도 없는 소리의 차이는 이렇듯 될만한 걸 된다고 하느냐에 좌우된다.


스코틀랜드를 도탄에 빠뜨리던 맥베스는 결국 살해 위협을 피해 영국으로 도망갔던 왕자에게 살해됨으로써 생의 종지부를 찍는다. 악이 몰락하며 끝이 나는 연극을 비극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맥베스’가 왜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 포함되는 것일까? 4대 비극이 시험에 잘 나왔던 것은 비극의 대명사인 ‘로미오와 줄리엣’이 정작 4대 비극에서는 빠져있기 때문, 하지만 두 연인이 사랑을 못이룬 채 죽은 게 비극이 아니라, 정의가 실현되는 맥베스를 오히려 비극이라고 분류한 과거의 가르침이 난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억지로 이해를 하자면, 원래 그럴 마음이 없었던 맥베스를 마녀들이 부추켜 왕에 대한 욕심을 갖게 함으로써 파멸에 이르렀으니 비극일 수도 있겠다.


‘바쁘다 바빠’ 시리즈로 연극을 보기 시작한 탓에 연극 하면 ‘라이어’나 ‘보잉보잉’처럼 웃기는 것만을 연상했지만, ‘맥베스’같은 소위 정통극도 그런대로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또 이런 걸 볼 것이냐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표 한 장에 3만원-난 할인권이 있어 2만1천원에 봤지만-씩 되는 걸 볼만큼 내 마음이 여유롭지는 않다. 술값은 그보다 더 비싸도 척척 내면서 연극 관람료는 왠지 아까운 그런 마음, 연극 하면 늘 배고픈 이미지만 떠오르는 건 나같은 사람이 워낙 많아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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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11-27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마태님이 쓰신 글을 보다보니 저도 리어왕, 맥베스, 오델로를 섞어서 기억하고 있었군요ㅡ..ㅡ;;

chika 2005-11-27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베스하면 생각나는거 하나. 상상력이 부족한 저로서는 도대체 나무를 짊어진 병사들이 어떻게 숲이 움직이게 하는 것같은 효과를 낼까, 가 궁금했는데 로마에서 올리브 나무를 보고 알았어요. 띄엄띄엄 심어져 있는 나무들이 하나씩 짊어지고 움직이면 숲이 움직이는 것 같겠더라고요.
좀 엉뚱한 댓글인가요? ^^;;;
문화라는 건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의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문화가 아니라고봅니다. 아무리 훌륭한 연극이라 해도 내가 즐길 수 없다면 그건 내게 있어 문화가 아닌게지요, 머.
연극보면서는 과자도 먹으면 안되는데 영화보면서는 과자 씹어먹는 소리, 전화받는 소리, 애기 떠드는 소리내도 된다는 인식도 좀.. 그래요. (근데 왜 자꾸 댓글이 엇나가고 있는지.. =3=3=3)

플레져 2005-11-27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극관람료를 아끼는 마태우스님...
그래서 제가 연극을 더 할 수 없었어요. =3

모1 2005-11-27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번에 누군가의 블로그 글을 보니까 그 4대 비극..일본에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하더군요. 영문학자분들도 그래서 기막혀한다고...(매년 화제의 사건 몇가지 등등...나름대로 순위매겨 뽑고..하는 것보면 일본은 순위놀이를 상당히 즐기는 것 같아요.)

soyo12 2005-11-28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번에 하는 맥베드 보셨나봐요.
저도 한번 정식으로 보고 싶다 생각하면서
막상 세익스피어 작품은 연극으로 접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4대 비극 정말 이해 안가는 선정이었다는 전 솔직히 리어왕 보면서 왜 비극인 지 이해를 못했어요.^.^
4대 뮤지컬이란 것도 일본 선정이라던데,
음 일본사람들이 4란 숫자를 좋아하나요? ㅋㅋ ^.~

마태우스 2005-11-28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요님/안녕하세요? 연극 얘기를 해야 님의 댓글을 볼 수 있겠군요^^ 4대비극 선정은 누가 한건지 네이버엔 안나왔던데....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요, 마녀로 나온 분들이 가슴 한쪽을 드러내서 좀 민망했다는...남들은 예술로 보겠지만 전 얼굴이 화끈...
모1님/아, 일본에서 만든 거군요. 으음,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그렇게 된 건지,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왜 그런 걸 금과옥조처럼 받들며 시험에 내고 그랬는지...
플레져님/죄송합니다. 제가 님을 연극무대에서 떠나게 했군요! 알라딘에선 절대 떠나심 안되요!
치카님/전 아무 소리도 안냈어요. 억울해요....글구 병사들이 머리에 나무 단 거, 겁나게 웃겼어요^^
깍두기님/님 연배라면 충분히 헷갈릴만 하죠. 40이신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