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학교에서 지금 가지고 있는 미이라는 보존상태가 무척 좋은 편이라, 각종 연구의 소재가 되고 있다. 하지만 학교를 통해 공문이 오가는 게 영 귀찮은지라 미이라를 좀 더 효율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 형식적인 연구소가 만들어졌다. 연구소가 만들어지면 뭔가를 해야 하므로, 러시아에서 고분 출토에 전문성을 가진 분을 우리나라에 초청했다 (우리가 초청했는지 아니면 오는 김에 강연을 하는 건지 난 모른다). 지난 금요일 오후 두시부터 그분의 강의가 있었다.
그때부터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맘먹고 부른 건데 사람이 하나도 없을까봐. 학장님 이름으로 많이 참석하시라고 메일을 돌렸지만, 실제로 병원 사람들 중 그 강의에 올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시간대도 평일 2시고, 살아있는 사람을 다루기도 바쁜 판에 미이라에 누가 그렇게 관심이 있겠는가? 이럴 때 편하게 동원할 수 있는 게 바로 학생들, 학장님은 나한테 “예과 애들 좀 오라고 해”라고 하셨다. 예과생이 시간이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시간도 나름대로 소중하며,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희생되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더구나 금요일은 수업이 없는 날이라 대부분 자기 집에 가있을 시간이었다. 마음이 아팠다.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지난 화요일날 과대표와 그 친구들을 불러 점심을 샀다. 매우 미안하다고 얘기를 하면서 그 얘기를 했다. 학생들은 다른 경로로 얘기를 들었다면서 그러겠다고 했다.
강의실에 도착해보니 학생들 80명이 없었다면 정말 썰렁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 이외에 온 사람은 여섯명이 전부. 학생들은 불평을 해댔다. “온 사람만 손해야!” 예과 조교는 출석을 부르고 난리였지만, 그 출석이 과연 어디에 사용되는지는 나도 알지 못했다. 내가 중고생 때, 전두환이 외국에 오갈 때마다 태극기를 흔들러 나간 적이 있다. 그게 그렇게도 싫었던 내가 다 커서 그런 짓을 하다니, 정말 미안했다. 강의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우리보다 훨씬 더 미이라에 관심이 적은 학생들이 그걸 열심히 듣길 바라는 건 말이 안됐다. 학생들은 자거나 다른 책을 읽었다. 그래도 그분이 영어를 못하는지라 강의는 러시아어로 진행이 되었고, 러시아과 교수가 동시통역을 해준 것이 다행이었다. 나나 학생들이나 영어로 했다면 그나마도 못알아들었을 테니까. 강의가 끝나고 질문이 오갔다. 여간해서는 질문을 안하는 나도 질문을 하나 했다. 그래야 해서 했는데, 질문들 중 가장 날카로웠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학생들을 아무 때나 동원할 수 있다는 발상은 문제가 있다. 참석자가 적을 게 예상된다면 조그만 세미나실을 빌려서 하면 될 일이었다. 우리야 연구소가 아무 일도 안한다는 걸 보여 줬고, 그 강사도 적지않은 강사료를 받았겠지만, 하루를 희생하면서 강의에 참석한 학생들은 도대체 무얼 얻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