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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실천문학사 / 2003년 6월
평점 :
복돌님이 선물해주신 조지 오웰의 산문집 <코끼리를 쏘다>를 읽었다. 약간 지루하게 읽었긴 하지만 나름의 장점이 많은 이 책에서 내가 새로이 알게 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오웰의 사상에 대해 알 수 있었다.
<1984년>과 <동물농장>을 쓴 작가답게 오웰은 전체주의를 증오해마지 않았으며, “예술이 정치와 관계가 없다고 하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이다(83쪽)”라고 말하기도 했다. 즉 오웰은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87쪽)”기 위해 애썼으며, 정치의식을 갖기 전에 쓴 작품을 가리켜 오웰은 이렇게 말한다.
“정치적 목적이 결여된 곳에서 내가 화려한 문체, 의미없는 문장...등에 유혹당한 생명없는 소설을 썼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90쪽)”
둘째, 오웰의 치열한 작가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책상머리에서 상상만 가지고 글을 쓴다. 그가 쓴 <대통령..> 어쩌고 하는 책을 보면 저자가 청와대의 기본적인 구조도 모른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반면 오웰은 글을 쓰기 위해 오랜 기간 부랑자 생활을 하는데, 신분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사투리를 쓰는 등의 노력을 한다. 다른 부랑자와 똑같은 곳에서 자고 먹는 것은 물론, 유치장까지 간다. 살인자의 심리를 알기위해 살인을 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작가가 주인공의 체험을 똑같이 다 할 필요는 물론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 노력은 필요하며, 소설의 리얼리티는 거기서 생겨난다.
셋째, 당시의 문학판이 지금과 매우 흡사했음을 알았다.
문학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진 강준만 덕분에 난 현대문학의 위기는 비평의 위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비평의 위기는 비평가들이 문학권력과 야합함으로써 일어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오웰은 이렇게 말한다.
[(소설을 안읽는 이유가) 광고 목적으로 고용된 삼류 서평가들이 써놓은 형편없는 단평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Z라는 작가가 책을 쓰고 그 책은 Y에 의해 출판된다. 그리고 주간지 W에 X가 그 책에 대한 단평을 쓴다. 만일 그 단평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Y는 그 단평을 책광고에 싣지 않는다. 따라서 X는 ‘잊을 수 없는 걸작’이라고 쓰지 않으면 일자리를 놓치게 된다(94쪽)]
그러니 우리 문학의 위기는 이미 오래 전 영국에서 경험한 것, 여기에 대해 오웰은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내놓는다.
“많은 소설비평이 아마추어 비평가에 의해 행해진다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이들은 더 진지한 서평을 한다는 것이다(100쪽)”
책과 금전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아마추어 비평가의 등장은 오웰의 시대에는 이루어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그의 해결책은 인터넷의 발달에 의해 실현될 수 있게 되었는데, 수없이 쏟아지는 독자서평이 무시못할 권력을 행사하게 된 작금의 현실은 머지않아 문학의 위기가 끝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해준다. 물론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헬리콥터를 위한 변명>인가 하는 책을 쓴 사람처럼, 평소 인터넷서점 사람들과 친해놓은 뒤 책을 대량으로 살포하게 되면 인정에 약한 사람들이 무조건 별다섯을 주는 일이 벌어지지 않겠는가.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많이들 한다. 아는 사이라 해도, 그리고 책을 선물받았다 해도 과감히 별 둘을 줄 수 있는 차가운 머리, 문학을 살리기 위해서 꼭 갖추어야 할 도구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