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거 재탕입니다. 죄송합니다. 사정이 많이 어려워서요.

일시: 9월 15일(목)
누구와: 친구 두명과
마신 양: 맥주--> 소주

학생 때, 그리고 조교 생활을 할 때 난 크리스탈 호프라는 술집을 다녔다. 학교를 안간 적은 있어도 저녁 때면 꼭 크리스탈 호프를 갔으니, ‘다녔다’는 표현이 전혀 과장이 아니다. 시작은 알 수 없지만 그곳은 의대생들의 아지트 비슷한 곳이 되었고, 그래서 내가 들어서면 이런 풍경이 펼쳐지곤 했다.

A: 야, 너 왔구나. 오늘 학교는 왜 안왔어?

나: 그냥. 어, B형, 안녕하세요?

C: 나한테는 왜 인사 안해?


주인아주머니는 의대 애들한테 유난히 살갑게 대했고, 거기 오는 모든 학생들 이름을 다 외웠다. 의사국시를 볼 때마다 커피를 싸들고 시험장 앞에서 기다리기까지 했으니, 가히 의대생들의 대모라 할만했다. 물론 ‘장사속’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외상이 가능한데다 값도 싸고 서비스도 잘주는 곳이라 나쁠 이유는 없었다. 군대에 가느라 대학로를 떠난 뒤 크리스탈 호프가 문을 닫은 걸 알고나서,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른다.


몇 달 전, 대학로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다 쏟아지는 비를 피하느라 맞은편 호프집에 들어간 적이 있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을 때 난 잠깐 동안 어리둥절했다. 그 어리둥절은 곧 반가움으로 바뀌었고, 난 그분과 옛날 추억을 회상하느라 나랑 같이온 두 미녀의 존재를 잊을 정도였다.


“크리스탈 아줌마가 다시 술집을 열었다!”

난 이 얘기를 과거의 전우에게 했고, 지난 목요일 옛날 멤버 셋이서 그 술집을 찾았다. 반가운 시기를 지나자 아주머니의 넋두리가 시작되었다.

“옛날엔 정말 돈버는 게 땅짚고 헤엄치는 것만큼 쉬웠지‘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못했다.

“내가 왜 그만둬서 늘그막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

어두침침한 분위기, 허름한 식탁과 싸디 싼 가격은 그때와 다름없었지만,

“옛날 멤버들은 안와요?”

“길가다 명태(가명)를 만났어. S대 교수 됐다면서? 한번 오라고 했는데 알았다고 하더니 안오더라. 복어(가명)도 그렇구”


그 말을 하는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서운함이 엿보였지만, 이제 어느덧 사회의 기득권에 자리잡은 사람들이 굳이 이곳을 찾을 이유는 없어 보였다. 미녀 종업원이 서빙을 하는 좋은 술집이 많은 터에 왜 거기를 가겠는가. 나만 해도 그곳의 음식이 그다지 입에 맞지 않았다. 그렇게 맛있던 해물떡볶이는 그저그런 맛이었고, 한조각만 있어도 500cc를 너끈히 마시게 해줬던 쥐포구이도 이제 물린다. 안주 맛은 똑같은데 내 입맛이 변한 거겠지?


아주머니가 왜 그만두었는지 난 물어보지 않았다. 아주머니가 그만두지 않고 계속 크리스탈 호프를 열었다면, 그곳은 지금도 의대생의 메카로 군림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난 괜히 후자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크리스탈이 더 이상 맞지 않게 된 우리처럼, 화려함에 길들여진 지금 애들에게 크리스탈의 낡은 이미지가 어필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지만, 어쩌면 그 당시 추억을 우리끼리만 독점하고픈 욕망도 후자 쪽을 선택하는 이유가 아닐까. 그렇게 추억에 집착하는 것 역시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이리라. 57세, 어느덧 60을 바라보게 된 크리스탈 아주머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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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10-02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재순위 28위..불안하십니까?.흐흐^^

하루(春) 2005-10-02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썬데이 매직이군요.

부리 2005-10-02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저희들 삶이 다 그렇죠 뭐...^^
하루님/하핫 다 아시면서..^^

부리 2005-10-02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사실 제가 오늘 아침 순위만 보고 40위로 생각했어요. 근데 28위입니까 마태가?

하루(春) 2005-10-02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사람들의 취향을 빨리 간파해야 성공한다죠.

쪼코케익 2005-10-03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 님=부리 님 인가요? 여기 드나들기 시작한지 며칠 안 되어서요. 마태우스 님께서 사라지시고 부리 님이 나타나신데는 사연이 있는 건가요?

마태우스 2005-10-03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레네님/제가 좀 바쁜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저랑 부리가 아주 친합니다
하루님/하루님의 취향을 빨리 간파해야 할텐데요^^

모1 2005-10-03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간 서글프기도 하네요. 세월의 흐름으로 인해 추억이 잊어져가는 가는 그런 느낌도 들어서요.(별상관없는 댓글들을 계속 다는 듯한 느낌도 드는데..마태우스님..이해해주세용~~~)

마태우스 2005-10-05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1님/상관없기는요. 서글프단 느낌, 저도 가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