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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불온한가 - B급 좌파 김규항, 진보의 거처를 묻다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5년 9월
평점 :
최근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이 뭐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김규항의 <나는 왜 불온한가>를 읽다가 답을 찾았다. ‘감명’이라는 점에 있어서 난 지금까지 그가 쓴 <B급 좌파>만한 책을 만나본 적이 없다. 그의 글은 온몸으로 쓴 것같은 진정성이 느껴지며, 그래서 오랜 기간 머리에 남아 내 삶을 지배하는 힘을 가진다. <시네21>에 칼럼을 쓴 지 얼마 안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연대생이 가장 만나보고 싶은 사람 1위’를 차지한 걸 보면 그의 글이 가지는 카리스마가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을게다. 그의 책이 광고나 매스컴의 도움 없이도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순전 김규항의 이름값에 기인하는데, 아쉬운 것은 그의 과작으로, 별 되지도 않는 글을 쓰는 모 인사(39세)가 다섯권의 책을 낸 반면 김규항의 책은 이제 겨우 두 번째다. 그나마도 “제도지면에 글이나 끼적거리는 일로 사회적 허명을 얻어가는 일이” 자의식을 건드린다며 제도연론에 글쓰는 걸 중단했으니, 세 번째 책이 나오려면 얼마나 더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9월의 마지막 날, <나는 왜 불온한가>의 마지막 책장을 넘겼다. 바르게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성찰하게 해주는 그의 책은 이번에도 기대를 충족시켰다. 그의 책을 통해 난 내가 빠져있던 독선에서 벗어났으며, 내가 미처 생각 못했던 세상의 진리들을 깨우쳤다. 먼저 ‘독선’. 난 알고 지내는 민노당원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니들 열명이나 국회 갔는데 하는 일이 뭐야? 하는 게 없어 보이거든. 왜? 언론이 보도를 안해주니까. 그러니까 니들, 언론 플레이 좀 해. 언론을 외면해서 도대체 뭘 할 수 있겠어?”
사실 이건 강준만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한 것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틀린 말이었다. 저자의 말이다.
“좌파도...언론 같은 오늘의 제도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그의 의견은 실은 이치에 닿지 않는 무리한 훈수다. 좌파란 오늘 시스템의 테두리 안에서 개혁하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늘 시스템을 변화시키려는 사람들이다. 좌파임을 천명한 순간부터 오늘 시스템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에게 오늘의 시스템을 활용하는 일은 선택이나 적극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 다음 깨우침. “예수의 부활은 그가 지금 여기 우리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구절은 기독교의 역할을 다시한번 상기시켜 주며, “개혁은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야만과 폭력성을 제거하여 합리화하는 운동”이라는 저자의 말은 노무현의 당선이 세상을 바꿔 줄 것을 기대했던 날 부끄럽게 만들었다. 다음 대목도 음미할 가치가 있을 것 같다.
“민주고 반민주고 이념이고 정치고 다 떠나서, 김선일의 죽음 이후에도 파병을 말하는 모든 세력은 우리의 적이다. 우리는 기꺼이 그들과 싸워야 한다. 그게 우리가 치러야 할 우리의 전쟁이다(259쪽)”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글을 잘쓰는 비결을 살짝 공개한다. “내가 뒤늦게 글쓰기를 시작했으면서도 알아먹게 쓸 수 있었던 데는 그 일-<뿌리깊은 나무>를 창간호부터 폐간호까지 모두 모은 것-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글을 잘쓰고 싶은 이여. 이 잡지를 찾아다니라. 전에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322쪽에 나오는 “방에서 배 깔고 누워 책을 본다”는 대목은 내가 이 책에서 이해하지 못한 유일한 구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