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나 보다가 자려고 했는데, 캐치원을 틀어보니까 <아무도 모른다>를 막 시작하는 참이다. 소스라치게 놀란 나, 주무시는 할머니를 깨워서 모시고 왔고, 1박2일의 여행에서 돌아와 전화통을 붙잡고 계시는 어머님까지 불렀다. 나야 봤지만 내가 없으면 안보실까봐 자리를 지키고 앉았다. 가끔씩 할머니한테 상황 설명을 해드리면서. 다행히 소리가 크게 들려 할머니는 일본말 대사를 다 알아들으셨다.
두 번째 보는 것의 좋은 점은 영화가 좋은 영화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다는 것-두번 봐서 또 재밌으면 진짜 좋은 영화다-과 연기를 누가 잘하는지 식별이 가능하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좋은 영화였고, 주인공으로 나온 남자애의 연기는 다시봐도 일품이었다.
오늘사 내가 깨달았던 점. 처음 영화를 볼 때 난 아이를 버리고 떠난 어머니만 욕을 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말도 없이 도망갔다는 두명의 아버지를 엄마와 똑같이 욕하기로 했다. 아내에게 아이 넷을 맡기고 도망간 남편, 다른 남자를 좋아하게 되면서 아이 넷을 버린 아내, 악함의 정도를 비교하는 게 불필요해 보이지만 어머니가 아빠보다 특별히 더 나쁜 건 아니지 않을까? 할머니와 어머니가 여자만 일방적으로 욕을 해서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여간 할머니는 예쁘디예쁜 그 아이들이 나올 때마다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저런 애들을 놔두고 엄마가 다른 데로 도망갔다니, 그게 사람이냐?”
난 이렇게 답변했다.
“우리 엄마도 호랑이같은 나를 놔두고 어제 1박2일로 놀러갔잖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영화는 우리나라에 수입이 안되는 품목이었다. 그때 지배층이 내게 주입시킨 편견은 일본영화는 순전 폭력과 섹스로 점철된 이류라는 것. 하지만 막상 들어온 일본영화들을 보면서 난 놀라고 또 놀란다. “오겡끼데스까?”란 대사가 인상적인 <러브레터>, 보는 내내 폭소를 터뜨리게 했던 <웰컴 미스터 맥도널드>... 도대체 무슨 권리로 그들은 이런 즐거움을 오랜 기간 박탈한 것일까. 영화의 질에도 일본영화의 흥행성적이 그다지 좋지 못한 이유는 나처럼 편견을 주입받은 사람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