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배기 딸이 된 엄마
신희철 지음 / 창해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추석 다음날, 잠에서 깨어나신 어머님이 말씀하신다.

“라디오에서 책소개를 들었는데, 그것 때문에 잠을 못잤다”

무슨 책이기에? 엄마의 언어로 얘기해 본다.

[엄마가 치매에 걸려서 딸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돌보는 거야. 딸이 시집을 안갔나봐? 지성으로 엄마를 돌본데. 근데 엄마가 치매 걸리기 전에 천원만 내면 들어가는 무도장에 다녔어. 거기서 엄마가 남자를 하나 사귀었는데, 남자가 한번 와보고는 다시 안오더래. 딸은 좀 서운했데. 아프면 다 그렇지 하고 이해는 했지만서도. 그런데 나중에, 그 남자한테서 전화가 왔어. 자기도 많이 아파서 누워 있었다고. 아저씨-딸은 아저씨라고 부른대-가 오는 날이면 엄마의 표정이 훨씬 밝고, 곱게 화장도 하고 그랬대. 어느날은 그 남자랑 같이 무도장에 갔대. 예전에 입던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그 두분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춤을 추는데, 딸의 눈에는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는 거야. 이게 오마이...뭐라던가 거기 연재되었는데, 그렇게 인기가 많았대나?]


오마이뉴스에 들어가 <다섯살배기 딸이 된 엄마>로 검색을 해봤다. 몇꼭지를 읽는데 눈시울이 화끈해졌다. 당장 교보에 달려가 책을 샀고, 어머님이 먼저 보시고 내가 봤다. 기차를 타고가면서 책을 읽었다. 이따금씩 창밖을 보며 눈물을 말려가면서. 치매, 행여 우리 할머니나 어머니에게 닥치지나 않을까 하는 그 무서운 병. 그분들을 위해서 치매가 오지 말았으면 하고 바라는 게 아니라, 행여 내가 간병하느라 고생할까봐, 라는 지극히 이기적인 목적으로 오지 않기를 바라는 병. 하지만 일남오녀의 넷째인 당찬 딸은 어떻게 4년이 넘도록 어머님을 간병했을까? 저자의 말이다.

“치매란 아이로 돌아가는 병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이 놀면서 집안을 어질렀다고 화를 내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이가 되어버린 엄마가 집안을 뒤죽박죽 해놓았다고 화를 낼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엄마는 아이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말이다...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사랑으로 키워주고 보살펴준 것처럼, 엄마가 똥오줌을 싸는 갓난아기로 돌아온 지금 나 또한 그만큼의 사랑을 엄마에게 드릴 수 있을까?”


이런 류의 책을 읽으면 늘 그렇듯이, 엄마에게 잘 못했던 스스로를 반성해본다. 그리고 만에 하나 어머님이 편찮아지신다면 저자처럼 나도 엄마를 잘 돌봐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안다. 그게 이때 뿐이라는 걸. 엄마가 치매에 걸린 게 “효도를 할 기회를 준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저자같은 사람, 이 세상에 그리 흔하지 않다. 저자를 본받겠다는 거창한 생각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라도 엄마에게 더 신경을 써드리는 것, 그렇게만 된다해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은 있지 않을까. 효자가 아닌, 평범한 아들의 결심이다.


* 내 생각과 달리 이 책은 그리 많이 팔리지 않은 것 같다. 내용이 뻔하다고 생각해서일까? 유명 미술가의 이름을 딴, 황당한 음모로 점철된 책이 불티나게 팔리는 현실에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이 책이 이렇게 사장되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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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9-23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음모의 책이 뭔데요? 궁금 궁금

마태우스 2005-09-23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앗 안주무시고 뭐하세요? 그 음모의 책은.... 으윽.... 등을 찌르다니....
-죄송합니다 웃찾사를 봤더니...-

마늘빵 2005-09-23 0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들 늦은시간까지...ㅋㅋㅋ

마태우스 2005-09-23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웃찾사 보구요, 뭐 준비할 게 좀 있어서 컴을 하는데 컴을 하니까 서재질을 하게 되잖습니까^^

마태우스 2005-09-23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한테 잘하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되네요. 오늘 엄마가 새벽에 어디 가신다고해서 시간이 있으니 차로 모셔다드리겠다고 했어요. 엄마는 싫다고 하셨구, 지하철을 타시겠답니다. 그러다 제가 삐졌어요. "앞으로 집에서 절대 밥 안먹어!@"라고 선언했습니다. 역시 잘해드리는 건 어렵습니다.

paviana 2005-09-23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밥 안먹어를 아직도 협박용으로 사용하시는 구여운 마태님...
마태님 덕분에 어머니가 늙지 않으실 듯해요..

드팀전 2005-09-23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책을 발견하셨나봐요.기분좋으시겠네요.ㅆㅆ
치매...아...너무 무서워요.... 본인에게도 가족에게도.
치매를 개인과 가족에게 전부 책임을 떠넘기는건 사회가 너무 무책임한거 같아요.우리는 좋은일은 다 사회가 갖고 힘들때 전부다 가족안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 같아서..진짜 열받아요.정부는 치매노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

클리오 2005-09-23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노인문제나 육아문제가 심각하면 사회적으로 팍팍 지원하면 될거 아니여요... 혼자 감당해야 되니까 힘들고 그러는거지... 그래도 치매는 역시나 정말 무서워요.. 흑...

로드무비 2005-09-23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모녀 KBS 인간극장 지지난주 주인공이었어요.
정말 재밌게 봤는데......
마태우스님의 인간미란 정말......^^

하루(春) 2005-09-23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약간 '러브 어페어' 같은 스토리군요.

kleinsusun 2005-09-23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0원 내면 들어가는 무도장...가슴 아파요.
그게 그 "엄마"가 한 최대의 사치인지도 몰라요. ㅠㅠ
왜 엄마들은 자식들에게는 그렇게 헌신하면서 자신을 위해서는 그렇게 아끼실까요?
그래도....그 엄마에게 남친이 있어서 다행이예요.
이 책 읽어보고 싶네요.Thank to!

마태우스 2005-09-25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맞아요 그게 최대의 사치겠죠. 엄마들이 자식 생각 안하고 그냥 쓰시면서 사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떤 기사가 생각나요. 행정수도 결정지인 연기, 공주 지역에선 자식들이 평소엔 찾아오지도 않다가, 땅값이 오르니 갑자기 발길이 잦아졌다고...
하루님/러브 어페어를 안봤는데요, 이런 내용인가요?
로드무비님/아, 이분이 인간극장에 나왔군요..으음...
클리오님/치매는 정말 무섭죠. 국가가 책임을 져줘야 하는데, 우리 국가에게 그런걸 기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분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어요.
드팀전님/우리는 국가가 우리에게 뭔가를 해줄 리가 없다는 신뢰를 갖고 있지요 호호.
파비아나님/그거 말고는 달리협박할 방법이 없어요 흑...

하루(春) 2005-09-25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가 한번 와보고는 다시 안오더래. 딸은 좀 서운했데. 아프면 다 그렇지 하고 이해는 했지만서도. 그런데 나중에, 그 남자한테서 전화가 왔어. 자기도 많이 아파서 누워 있었다고. --> 이 부분이 비슷해요. '러브 어페어'를 보실 기회가 왔으면 좋겠네요. 제목에서 분위기가 이미 많이 풍기듯, 로맨스예요.

마태우스 2005-09-26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감사합니다. 러브 어페어 한번 빌려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