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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선물로 받아서 읽은 <헌법의 풍경>은 ‘법 얘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할 수도 있구나’는 걸 깨닫게 해준 좋은 책이다. 괜히 무섭고 나를 옥죄는 사슬로만 여겨졌던 법이 사실은 괴물로 변할 수 있는 국가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 그런 좋은 취지의 법이 우리의 무지와 법 집행자들의 편의주의에 따라 왜곡되어 행사되었다는 것 등등을 알 수 있었는데, 이렇게 좋은 책을 왜 진작에 사서 읽지 않았는지 후회가 된다.
유려한 필체로 쓰여진 이 책 곳곳에서 저자는 우리 법조계의 아픈 부분을 서슴없이 지적하는데, 저자는 이 책을 쓸 수 있었던 비결을 이렇게 설명한다.
“제가 법률문화를 형성하는 여러 주체 중 어느 집단에도 제대로 속해있지 못한 까닭”이 그 하나고, “박사학위가 없을 뿐 아니라 취득할 마음도 없는 저에게는 우리 학계에 발을 붙일 학문적 끈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게 두 번째 이유이며, 자신이 “결코 일류가 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건 세 번째 이유다. 쉽게 말해 법조계 내부에서 크게 될 전망도, 자질도 없으니 마음껏 법조계를 비판할 수 있다는 건데,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나 스물다섯에 사법고시를 합격했던, 충분히 잘나갈 수 있던 사람이 무료 법률상담을 하는 비주류의 삶을 살게 된 계기를 나름대로 찾아봤다. 답은 다음 구절에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의 기록 <죽음 앞에서>를 읽고...초등학교 시절 섭렵한 이이녕의 <일제 36년>, 이영신의 <광복 20년>...고등학교 때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나 김남식의 <남로당 연구>.....서울대 근처의 사회과학 서점들에서는 황석영이 TMs 광주민주항쟁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그런 책들만 읽다보니 하늘은 어두워져만 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책을 읽었기에 그는 좌파(이하 우리나라 기준)가 될 수밖에 없었고, 좌파가 된 이상 특권층에 속하는 법조계에서 버텨나갈 수가 없었던 거다. 그가 검사직을 1년만에 때려치운 것, 2년간 아내를 내조하며 전업주부 생활을 한 것, 미국서 돌아와서 변호사 개업 대신 한동대에 들어가 강의를 하게 된 것 등도 좌파 법률가가 걷는 필연적인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아이를 장차 엘리트로 키우고 싶다면 어린애가 책을 열심히 읽는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교과서만 달달 외우는 게 제일이라는 가치관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알라딘 분들의 이념적 지향도가 전부 좌파 리버럴에 모여있듯이, 책을 읽다보면 결국엔 좌파가 될 수밖에 없고, 그런 사람들은 특권을 누리며 살기보다는 양심과 정의에 따라 사는, 겁나게 피곤한 삶을 영위할 테니까 말이다.
학생들에게 마이클 크라이튼의 예를 들면서 “의학드라마, 의학소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나에게, 존 그리샴의 예를 들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우리 상황을 배경으로 우리 사건들을 다룬 법정영화, 법정소설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고 말하는 저자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나와 동년배인 저자 덕분에 멀게만 보이던 법과의 거리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점도 고마워해야겠지만.
* 이 책을 선물해 주신, 유난히 피부가 흰 그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