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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로 읽는 한국 사회문화사 - 모던 뽀이에서 N세대까지
마정미 지음 / 개마고원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옛날 신문을 읽었다’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다. 신문과 마찬가지로 광고 또한 그 시대를 엿볼 수 있는 거울인 터, <광고로 읽는 한국 사회문화사>라는 타이틀이 붙은 이 책 역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1886년부터 시작한 이 책이 본격적으로 재미있기 시작한 것은 역시나 내 기억이 미치는 1970년대부터였다.
옛날의 광고와 지금 광고간 가장 큰 차이는 기법에 있다. 과거의 광고가 “사방에 병있는 자 찾아오시오”라든지 “파리 화장품이 도착되었사오니 한번 구경하여 주심”처럼 읍소에 가까운 반면, 요즘의 광고는 철저하게 이미지로 승부하며, 도대체 뭘 광고하는 건지 이해가 안된다. 예컨대 광고 사상 한획을 그었다는 TTL 광고, 전문가들이야 그게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성장해가는 자아의 확장과정을 표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언정, 나같은 사람은 그저 모델로 나온 임은경의 청순함만 느낄 수 있을 뿐 전화기를 사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안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K가 이 광고로 대박을 친 걸 보면 이 광고가 10대들에게는 강한 호소력을 던졌나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내게 강하게 어필했던 추억의 광고들을 다시금 음미하게 되었다. 몇 개만 뽑아본다.
-12시에 만나요 브라보콘: 이거, CM 송으로 아주 유행했었다. 브라보콘과 12시가 무슨 관계인지도 모른 채 따라 불렀던 것 같다. 문제 하나. 괄호 안에 들어갈 말은? “12시에 만나요 브라보콘/둘이서 만납시다 브라보콘/( )데이트 해태 브라보콘”
-남편 귀가시간은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 최진실을 스타로 만들어 준 삼성전자 VTR 광고의 문구다. 가부장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이 광고가 의미가 있는 건 그전까지만 해도 광고모델은 스타들이 부업으로 하는 거였지만, 이제 무명이라도 광고를 바탕으로 스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거다. 지금은 최고의 스타가 된 이영애도 처음에는 ‘산소같은 여자’를 내세운 마몽드의 모델이었듯이.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곽규석과 구봉서가 모델로 나와 서로 라면을 권하는 흐뭇한 모습은 삼양에 일방적으로 뒤져 있던 농심라면의 인지도를 크게 올리는 데 기여했다. 미래에 이런 책이 나온다면 진라면이 차승원을 내세워 점유율을 역전시켰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농심은 결국 ‘사나이 대장부가 울긴 왜울어’란 카피와 함께 신라면을 히트상품으로 만들었고, 열세를 면치 못하던 삼양은 1989년에 터진 우지라면 사건으로 결정적인 타격을 받는다.
15,000원의 책값이 좀 비싸 보이긴 하지만, 읽는 동안 내가 자랐던 시대를 회고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을 내게 선물해주신 흑백TV 님께 감사드린다.
덧붙이는 말.
-동아일보가 광고탄압을 받을 당시 백지광고를 메웠던 수많은 광고문안들-예컨대 ‘약혼했습니다. 우리의 2세가 태어날 때 아들이면 동아로, 딸이면 성아(여성동아)로 짓기로 했습니다’-을 보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때 광고를 냈던 사람들은 지금의 동아일보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18페이지에 보면 ‘학질(말라리아)은 염병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염병은 가끔씩 유행했던 장티푸스를 뜻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