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모임을 거의 안하다시피 하는데 왜 카드값은 그렇게 많이 나오는가,
지난 일년여 동안 날 괴롭힌 수수께끼였다.
답을 알아내진 못했어도 카드결제일은 어김없이 다가오는데,
어디서 돈 나올 곳이 없을까 머리를 굴리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원래 기업은행 통장이 있었는데 학교에 입주한 은행이 바뀌면서
기업은행을 거의 이용하지 않게 된 게 말이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어 ARS를 확인해보니 놀랍게도 21만원이라는,
알토란같은 돈이 입금돼 있다.
잘됐다 싶어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통장을 해지하기로 했다 (통장과 현금카드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천안에 있는 여러 개의 기업은행 지점 중 내가 택한 곳은 나사렛대 지점.
좀 한적한 곳에 있어서 차 세우기가 편하리라고 생각해서였는데,
과연 그랬다.
차를 세우고 은행에 가서 별 생각없이 번호표를 뽑는 순간,
어디선가 광채가 나는 게 보였다.
“뭐지? 누가 플래시를 비추나?”라는 생각에 빛의 근원지를 봤더니,
이럴 수가.
매우 청초한 미녀가 앉아서 고객을 마주하고 있다.
천안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무시하는 거지 뭐)
천안, 그것도 코딱지만한 나사렛대 지점에
그런 미녀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었다.
이왕이면 그 미녀한테 업무를 보려고 했지만
세상 일이란 건 뜻대로 안되는 법,
달랑 두 개 있는 창구 중 내 번호를 누른 쪽은 안미녀 쪽이었다.
“해지해 주세요”라고 말을 하고 난 뒤
그냥 취소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오해가 있을까봐 미리 말하자면 그녀한테 뭐 어떻게 하겠다는 건 절대 아니다.
내게는 절세미녀로 소문난-사실은 내가 소문낸, 실체는 확인된 바 없는-아내가 있는데
내가 왜 다른 여자를 생각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괜히 해지했나?’라고 후회한 이유를 난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