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세 마리를 기른다.
이 셋에 대한 내 애정이 다 같은 것은 물론 아니다.
내가 가장 예뻐하는 녀석은 둘째인 팬더,
털 색깔의 조화가 완벽하고 얼굴도 균형이 딱 잡힌데다 결정적으로 놀 줄 안다.
늘 공을 가지고 와서 나한테 놀자고 한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늦게 와도 난 팬더가 놀자고 하면 시간을 내서 놀아준다.
이 녀석의 단점은 버릇이 좀 없다는 것.
개의 본분은 부르면 오는 것일진대, 팬더는 아무리 불러도 오질 않는다.
비싼 개답게 먹는 걸로 꼬여도 넘어가지 않는다.
그를 움직일 수 있는 건 우리가 ‘절대공’이라고 부르는 그 공 뿐.
팬더가 절대공을 지키고 있는 장면. 미용 후의 모습이다
그런데 어제 오후, 팬더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녀석이 확 달려들더니 내 얼굴을 물었다.
너무 아파서 거울을 보니 피가 뚝뚝 떨어진다.
순간 화가 났다.
난 아직 팬더에게 한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는데,
어젠 너무 화가 나서 야단을 쳤다.
“저리 가! 앞으로 내옆에 오지 마!”
보통 이런 일이 있으면 내 화를 풀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개뿐 아니라 모든 생물의 본분이건만,
팬더는 비싼 개답게 좀 달랐다.
나한테서 퇴짜를 맞자마자 아내 옆으로 가서 애교를 떨었으니까.
한시간이 지나고 두시간이 지났다.
팬더가 없으니 일의 능률은 오히려 떨어졌다.
안되겠다 싶어 화해를 시도했다.
원래 화해란 가해자의 사과가 전제돼야 하지만, 그건 원칙이 그럴 뿐
실상은 아쉬운 사람이 먼저 시도하는 게 화해다.
하지만 팬더는 닫아버린 마음을 다시 열지 않았고,
새벽이 될 때까지 한번도 내 곁에 오지 않았다.
팬더의 삐짐은 오늘까지 계속됐다.
안되겠다 싶었던 난 퇴근 후 팬더에게 계속 빌고 있는 중이다.
순간순간 “민아, 정신차려! 잘못한 건 팬더야!”라는 이성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어쩌겠는가.
털도 없고 얼굴도 못생긴 내가 약자고, 약자기 빌어야 하는 게 이 세상의 이치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