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신문에서는 ‘칭찬 릴레이’라는 코너를 연재한다. 한 사람이 인터뷰를 하고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을 추천한다. 그 사람이 또다시 인터뷰를 하고... 알라딘의 사부이신 가을산님이 영광스럽게도 날 추천해 주셨다.


1. 첫 번째 어려웠던 점

가을산님도 그렇지만 기자분 역시 내가 알라딘에 대해 말해주길 바랐을 것이다. ‘귀염성을 앞세운 서재질로 알라딘을 평정한 의사’라는 내용으로 쓰면 독자들에게 어필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난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리 학교 사람들도 그렇고, 기사를 볼 모교 사람들이 뭐라고 할 게 뻔했다. ‘그렇게 시간이 많아?’라면서. 그래서 난 다음과 같은 요구를 했다.

-알라딘에 관해 언급하면 안된다.

-독서클럽에 가끔 리뷰를 올리는데, 바빠서 거의 못올림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많다고 써달라.

-그밖에 ‘기상천외함’을 의미하는 기사는 안되고, 성실히 연구를 하고 있다는 쪽으로 써달라.


사실 알라딘 얘기를 뺀다면 굳이 날 인터뷰 할 필요가 없다. 내가 그거 말고 특이한 점이 뭐가 있는가. 술을 좀 마시지만 나보다 더 마시는 사람이 부지기수고-과연 그럴까-눈이 작은 건 ‘칭찬’이라 할 수 없다. 이렇듯 제약이 많은 열악한 조건에서 기자분이 할 수 있는 건 기생충에 대한 책을 썼다는 것밖에 없었다. “내가 산 거 말고는 별로 안팔렸다”는 말 대신 “꽤 책이 많이 팔렸습니다”라는 말을 집어넣은 건, 그렇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 때문이었으리라.


2. 두 번째 어려운 점

과연 누구를 다음 주자로 선정하느냐가 나로서는 정말 어려웠다. 말이 칭찬이지, 기사거리가 될만한, 좀 특이한 구석이 있는 의사를 섭외해야 했으니까. 처음엔 방송인으로 활약 중인 표 모 씨를 하려고 했는데, 그다음 칭찬할 사람을 정하는 게 자기로서는 어렵다며 한사코 고사했다. 난 마음이 다급해졌다. 기자분께 전화.

“저, 그럼... 제 동기 여학생인데요, 여자로서는 처음 과대표를 했구요, 본4 때 괴테하우스를 다니고...공부도 아주 잘 했어요. 인턴 마치고 갑자기 독일로 가서 철학을 공부했죠. 독일인과 결혼했는데, 우리나라 와가지고 지금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어요.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위로 연구소’. 이쯤되면 훌륭하지 않나요?”

하지만 그녀가 전화를 안받는데다 기자 분이 사정이 급하다고 해서 무산되었다.


다음 후보는 다이어트 클럽을 운영한 적이 있고, 컴퓨터로 필름을 전송받아서 판독을 대행하는 병원을 최근에 연 내 친구 (그러니까 그 병원엔 컴퓨터만 한 대 달랑 있고, 전국의 병원에서 그 병원으로 엑스레이 영상을 보낸다..), 하지만 그 역시 거절을 했다.

“정말 미안한데...나 요즘 너무너무 바쁘거든. 인터뷰 하다가 화낼 것 같아. 정말 미안해”


그 다음에 생각했던 건 내가 책을 낸 출판사의 편집주간. 의사의 길 대신 신문사의 대표가 되어 탁월한 칼럼들을 쓰고 있으니 특이할 만도 했다. 그러나.

“의협신문과 저희 신문이 라이벌이라, 그쪽에서 싫어할걸요. 그보다는 다른 사람을 하는 게 낫겠어요”


내가 속한 써클 후배 중 유머 감각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 있었다. 유머에 대한 철학을 기사화해도 충분히 재미있을 법했는데, 연락이 안되서 무산. 나중에 통화가 되었지만 그땐 이미 늦었다.


머리가 아파왔다. 써클 주소록을 뒤지다 생각난 게 또다른 써클 후배였다. 난 당장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단 미녀구요...방사선과 전공했는데 지금 한방병원에 있어요. 양의학과 한의학이 서로 협동해서 환자를 치료한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거든요.... 그리고 문학소녀예요. 제가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게 써클지에 실린 그녀의 글을 보고 나서였어요...연예인들도 단골이 많습니다”

좀 약할 것 같아 이 말도 해줬다. “조만간 시집을 출간할 예정이어요”

그러고 나서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그녀는 순순히 수락을 했고, “여차여차 말을 했으니 무조건 맞다고 하라”는 내 말에 알았다고 답을 했다. 그녀의 말, “그런데 난 누굴 칭찬하면 될까요? 칭찬할 사람이 없는데...”

그거야 그녀가 감당할 문제니 난 모르겠다^^


3. 에필로그

인터뷰를 하고 나서 그녀가 전화를 했다. “형, 왜 그런 거짓말을 했어?”

얘기인즉슨, 기자가 이러더란다.

기자: 독일 갔다오셨다지요?

그녀: 네?

기자: 독일 사람하고 결혼하지 않았어요?

그녀: 네??


호호, 그 기자는 다른 사람과 그녀를 헷갈린 거다. 하기사, 내가 워낙 여러 명을 얘기해 줬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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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2005-05-14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자들은 좋겠어요. 마태님같은 분을 인터뷰도 할수 있구요. 저 기자 아니어두 제가 인터뷰 요청하면 받아주실거죠?

울보 2005-05-14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주변에는 역시 특별한 사람들이많네요,,,
ㅎㅎ 그런데 그 기자 기자 맞아요,
아무리 마태님이 여러명을 추천을 했기로서니 기자가 메모를 하고 잘 하고 가야지ㅡ,,,

물만두 2005-05-14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기사가 보고 싶네요^^

moonnight 2005-05-14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하셨단 말을 꼭 해야할 거 같은 분위기.. ^^; 칭찬하기도 정말 힘이 드는군요. 옛날에 TV에서도 그런 프로가 있었잖아요. 그거 보면서 괜히 부담스러워져서 누군가 나를 추천할까봐 두려워졌던 기억이 나네요. 물론 그럴 일은 절대 없었지만요. ^^ 그나저나 그 신문 읽고 싶어요. >.<

Daisy 2005-05-16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런이런..
이런 비화가 숨어있었다니...
추천받은 것은 감사한데, 이거 참.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할까요?

형한테 댓글달려고 오늘 여기 가입했습니다. (사실, 전 여기와 라이벌인 * 24의 오랜 단골인데..)
암튼, 이 곳에 실린 방대한 형의 독서량에 너무나 감탄을 금치 못하고, 덕분에 제게도 분발하게끔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주 방문할께요. 파이팅!!!


마태우스 2005-05-17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Daisy님/그 정도의 힌트에 여길 찾아오다니, 닉네임을 빨리 바꿔야겠구나^^ 학교에서 알면 나 죽거든... 그래 스물넷 생활을 청산하고 여기서 놉시다. 여기서 문학소녀의 꿈을 활짝 피워 봅시다
문나이트님/저도 그래요. 누군가 저를 추천하면 쑥스럽죠. 칭찬할 만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는데...
물만두님/기사 봐봤자 별거 없어요^^
울보님/제가 하도 여러명을 추천해서 헷갈렸나봐요
줄리님/아유 저에 대해 모르는 게 없으시면서 무슨 말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