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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토토 - 개정판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김난주 옮김,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나라에서도 백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창가의 토토>에 대해 그다지 뛰어나지도 않은 리뷰 하나를 보태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난 이 책이 무척이나 반가웠으며, 평소 내 생각과 일치되는 면이 있어 참 좋았다.
일본에서 유명 방송인으로 활약 중인 구로야나기 테츠코가 쓴 이 책은 저자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기술한 것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주인공인 토토는 주의력이 매우 산만해 정상적인 수업을 받을 수 없는 아이였다. 책상 서랍을 끊임없이 열었다 닫았다 하고, 수업 시간임에도 창문가에 서서 지나가는 친동야 아저씨-돌아다니며 음악을 연주하는 아저씨?-를 불러 이야기를 나눈다. 제비에게 말을 걸기까지 하니 선생님의 인내가 한계에 달할 수밖에. 그 결과 토토는 여기저기서 퇴학을 당하는데, 의학에서는 이런 아이를 주의력결핍장애(ADHD) 환자로 분류하고, 교감신경 흥분제인 리탈린을 처방한다. 물론 그 약이 효과가 있어 집중력이 높아지고 학업성적이 향상된다고는 하지만, 산만함이라는 것은 애들의 전형적인 속성이고, 게다가 아직 어린 아이에게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약을 먹인다는 게 과연 좋은 것인지 의문이었다.
전형적인 ADHD 환자인 토토는 열린 교육을 지향하는 ‘도모에 학원’에 들어간다. 학생들이 하고 싶은 공부를 알아서 하고, 그럼으로써 잠재되어 있던 재능을 꽃피울 수 있게 해주는 그 학원에서 토토는 마냥 행복했고, 결국 훌륭한 사람이 된다. 책날개의 설명에 의하면 저자는 “60대의 나이에도 항상 재치있는 화술과 원기왕성함 때문에 zip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는데, 그녀의 사례는 ADHD로 진단된 아이의 치료는 약보다는 열린 교육이라는 걸 입증해 준다.
사실 주의력이 산만해 보이는 아이에게도 자신의 세계는 있다. 그의 행동들은 그러니까 그 세계에 대한 응답일 터, 하지만 지금 우리의 교육은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세계를 버리라고 요구한다. 그 결과 아이들의 창의력은 갈수록 실종되고, 그들은 결국 권위에 복종하는 사람들로 자라난다. <창가의 토토>가 공전의 판매고를 올린 까닭은 창의력을 고갈시키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이 전적으로 틀렸다는 데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막상 자신의 아이가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남들이 보기에 산만한 행동을 한다면, 두들겨 패고, 심지어 리탈린을 먹여서라도 얌전하게 있기를 요구할 것이다. 그 약으로 인해 부모의 만족도는 커질지라도, 그로 인해 잃는 것도 분명히 있다. 확실한 것은 토토가 자라던 시절에 리탈린이 있었다면, 오늘의 구로야나기 테츠코도, 수천만을 감동시킨 명저 <창가의 토토>도 존재하지 않았으리라는 거다.
현재 미국에서는 500만명의 아이가 리탈린을 먹고 있다. 학업성적을 올려주는 약으로 둔갑해 마구 남용되고 있는 것. 주변 의사들에게 물어보면 다들 “ADHD에게는 반드시 리탈린을 먹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런 아이들에게 리탈린만이 답이 아님을 내게 가르쳐 준 유일한 사람이었으며, 이 책이 반가웠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좋은 책을 선물해준 어느 아가씨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