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기차역에 가려고 버스를 탔다. 내려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이르다. 음, 그렇다면 시간을 좀 당겨서 먼저 떠나는 기차를 타볼까? 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학생 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를 추월해서 달려간다. 질 수 없다고 생각해 속도를 올렸지만 녀석은 겁나게 잘 달린다. 달리기에서 중요한 것은 지구력이고, 내가 또 지구력 하나는 알아주는 놈 아닌가. 조금 있으면 뒤처지겠지 싶어서 열심히 따라갔다. 에스컬레이터에 서서 잠시 쉬려 했는데 그놈은 성큼성큼 걸어올라가고 있다. 나도 걸었다. 판매창구 앞에 도착했을 때 내 체력은 바닥난 상태였다. 어찌나 심하게 뛰었는지 멀미가 나려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녀석을 찾았다. 그는 이미 표를 산 듯 생수를 마시고 있었다. 천천히 뛰어도 먼저 떠나는 기차를 타기에 충분했는데, 별 희한한 놈을 만나서 아침부터 힘들었다...고 생각하려 했는데, 사실은 내가 더 이상하다. 젊음에서 비교가 안되는데 왜 굳이 경쟁하려고 했을까.
따지고보면 난 참 경쟁을 좋아하는 것 같다. 주량도 약하면서 술자리에 가서는 꼭 남이 한잔 마시면 나도 한잔 마셔야, 혹은 내가 앞서나가야 직성이 풀리고, 삼겹살을 먹을 때도 남보다 더 빨리, 많이 먹어야 한다. 고등학교 때는 버스에서 1등으로 내리겠다는 희한한 목표를 세워서-그렇게 하면 대학에 잘 간다는 강박적 사고가 있었다-무리하게 내리느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도 했다. 매사가 다 그런 식이다. 술일기의 카운트가 느는 것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원래는 술을 덜먹으려고 쓰는 건데-책도 무슨 책을 읽느냐가 아니라 몇권을 읽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경쟁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오늘 아침이나 술자리에서처럼 무모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즐거워야 할 서재질도 주간 서재의 달인 순위를 확인하랴, 즐찾이 몇명 늘었나를 체크하랴, 심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니 무엇을 위한 서재질인가 의문이 생긴다.
이건 물론 나만의 책임은 아니다....라고 생각하련다. 이게 다 우리 사회가 나에게 그걸 강요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어릴 적부터 협동 대신 남을 이겨야 산다고 주입받은 애가 커서까지 그런 심리적 압박을 받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내가 학생 때, 난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전자오락을 좋아했다. 원하는 전사를 골라 상대방과 싸워야 하는 그 오락은 경쟁을 좋아하는 내 적성에 딱 맞았다. 오락에 도가 튼 나는 친구들이 고른 전사를 수도 없이 두들겨 팼고, 그러면서 희열을 느꼈다. 요즘 오락실에 가보니 스트리트 파이터는 퇴조하고 ‘틀린그림 찾기’가 인기다. 몇 번 해봤는데, 참 좋은 게임인 것 같다. 스트리트 파이터가 둘간의 싸움이라면, 이건 둘이서 협동해서 틀린 그림을 찾아내는 아주 좋은 게임이다. 당사자가 아니라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다가도 ‘저게 틀리네요’라고 가르쳐 줄 수도 있으니, 무식하게 싸우는 것 대신 이 게임이 활성화된다면 사람들간의 협동심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더 이상 나같은 불행한 사람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