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TV는 디지털이 아니다. TV를 보다가 ‘HD' 표시가 나오면 그래서 샘이 난다. DVD도 없고, 꽤 오랫동안 비디오도 없이 살아야 했다. CD 플레이어가 없어서 선물로 받은 CD를 운전할 때만 들어야 하는 아픈 사연까지 합치면, 난 도무지 문화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으로 보일 것 같다. 남들은 내게 ‘홈 시어터를 갖추라. 술값만 아끼면 된다’고 하지만, 술값 아끼는 게 가능했다면 버얼써 재벌이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누나한테서 비디오 플레이어를 빼앗은 뒤로는 내게도 비디오를 볼 능력이 생겼지만, 비디오 가게가 차타고 15분 거리에 있는데다 비디오가 없던 시절이 너무 길다보니, 보고싶은 영화는 웬만하면 개봉관에서 보려고 노력한다. 한때 내 여친이었던-방금 전 말고 그 전의 전의 전-여인네가 “영화를 보기 위해 날 만나는 거냐”고 했을만큼.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본다해도 놓치는 영화가 있기 마련이고, <매치스틱 맨>이 바로 그런 영화였다.

돈도 안냈는데 계속 나오는 캐치원에서 해준 이 영화를 보고나서 난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를 왜 몰랐을까 탄식을 했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사기 수법은 연방 감탄을 자아내게 했고, 막판의 반전은 <유주얼 서스펙트>에 버금간다. '식스센스'의 반전이 사람을 멍하게 만들며, 극장을 나가서 "그게 무슨 말이었어?"라고 묻게 만드는데 반해, 이 영화의 반전은 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만큼 명쾌하고 재밌다. 카리스마보다는 인간적인 매력에 호소하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도 돋보이고, 미모는 좀 떨어지지만 케이지의 딸 안젤라로 나오는 앨리슨 로만도 능청맞게 연기를 잘해낸다 (지금 알았는데 앨리슨 로만은 ‘밀리온 달러 키드’에 나왔었다. 올해였다면 그녀가 아카데미상을 받았을 수도 있었겠다^^). 감독이 리들리 스콧임을 알고나니, 영화를 볼 때 너무 배우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감독이 누군지도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족: ‘맨’으로 끝나는 시리즈 중 재미있게 본 영화들
1위: 슈퍼맨 2(그땐 내가 어렸던 관계로....)
2위: 스파이더맨(거미줄이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3위: 러닝맨(근육질의 스타가 각광받던 시절의 작품이죠)
4위: 어...맨으로 끝나는 영화가 왜 이렇게 생각이 안난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