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Q정전.광인일기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5
루쉰 지음, 정석원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동호대교 남단, 안세병원 근처에 ‘공을기(孔乙己)’라는 중국집이 있다. 내가 가장 신뢰하는 초등학교 사이트의 맛집란에 올라 있는 곳인데, 우리 초등학교가 좀 럭서리한 면이 있고, 위치가 강남이니까 비싸겠다 싶었다. 큰맘 먹고 한번 갔는데 과연 비쌌고, 그럼에도 빈자리를 거의 찾아볼 수 없을만큼 유명한 집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치마 옆을 튼 미모의 종업원들 때문에 밥먹는 것에 집중을 하기 힘들었는데, 맛이 아주 대단하다기보다 다른 데서는 맛보지 못할 특이한 맛이 있었다.
밥을 먹다가 사촌형이 “공을기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했다. 종업원을 불러 물어본다. 뜻을 꼭 알고 싶다기보다는, 미녀와 말을 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었다. 종업원 역시 모른단다. 내가 지적 호기심으로 충만한 사람이 아닌지라, 그날 이후 공을기에 대해 알아보거나 한 적은 없다.
루쉰의 명성을 들은 것은 리영희 선생을 통해서였다. 내가 존경하는 리영희 선생이 루쉰을 존경한다니, 정말 대단한 사람인가보다 싶었다. 그 뒤부터 한번도 루쉰을 잊은 적이 없었는데, 검색을 하다가 그가 쓴 <아Q장전>이 있기에 사버렸다. 무지하게 어려울 거라는 공포심에 읽기를 미뤄오던 끝에, 안읽은 책을 쌓아두는 책꽂이에서 ‘눈감고 뽑기’로 잡힌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아, 그런데 그 단편집 중에 ‘공을기’가 있는 거다. 반갑고 신기했다. 공을기는 책에 나오는 술집에 자주 들르는 주인공의 이름이었다.
책을 읽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무식한 삶을 너무 오래 살아온 나로서는 ‘유식한 체 해보려’는 것도 목적이 된다. 내가 이 책을 좀 미리 읽었다면 사촌형과 매제, 그리고 남동생 앞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텐데.
“공을기는 루쉰이 쓴 <아Q장전>에 나오는 소설 제목이죠. 외상값 달아두고 죽던가 그랬죠 아마”(너무 정확하게 얘기하는 것보다는 말꼬리를 약간 흐리멍텅하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유식해 보인다)
읽히기는 쉽게 읽히되 숨은 뜻을 파악하는 게 영 어려운 책이었지만, 읽고 나니 오래 된 외상값을 갚은 듯한 뿌듯함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