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차를 타러 영등포역에 갈 때면, 에스컬레이터가 끝나는 곳에서 교회 관련 유인물을 나눠주는 아주머니를 볼 수 있다. 그런 걸 보면 괜히 싫은 감정이 일어나, 손을 내미는 척하다 머리를 매만진다든지 하는 나쁜짓을 하기도 하고, 싫다는 감정을 실은 채 째려보기도 한다. 물론 내가 어떻게 하든 믿음으로 충만한 그 아주머니는 개의치 않는 듯하다.
천안역에는 기차역 계단을 다 내려간 곳에 멋지게 생긴 아저씨 한분이 서있다.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예수님 믿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며 인사를 한다. 코도 크고 눈도 부리부리한 그 아저씨를 처음 본 건 작년 11월경으로 기억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옷차림에 일말의 변화가 없다. 검은색 바지에 올리브색 바바리, 그는 언제나 그 차림이다. 가끔은 교인인 듯한 사람이 지나가다 말고 그의 손을 잡은 채 “고생한다”는 인사를 하기도 하는데, 잠깐만 걸어도 추워 죽겠는 올 겨울에 아침부터 기차역 광장에 몇시간을 서 있으려면 얼마나 추울까. 직장은 있는지, 옷은 가끔 빠는 건지도 궁금하지만, 그가 과연 자발적인 믿음에서 그런 일을 하는 건가가 가장 궁금하다.
위에서 언급한 두 사람은 지하철 같은 데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약간 맛이 간듯한 사람과는 분명 다르다. 그렇긴 해도 그런 식의 전도로 과연 신도들이 올까 하는 데는 회의적이다. 그러고보면 기독교인들 중에는 좀 요란하게 전도를 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를 대학 신입생 때, 화학과 3학년이라는 사람에게 붙잡혀 1시간 동안 하느님 얘기를 들었었다. 그는 다음에 또 만나자며 시간과 장소를 정했고, 나는 그와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까지 했다. 마음속으로는 어서 이 지긋지긋함에서 벗어나기만을 바라면서. 그 사슬에서 날 구해준 것은 우리 어머니(그러고보면 난 마마보이?), 어머님은 내가 의대 공부를 해야 한다며, 바빠서 도저히 기독교 써클을 할 수 없다면서 그를 물리쳤다.
“아이, 어머님. 왜이러십니까. 서민 군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며 어머니 팔을 붙잡던 그의 목소리가 지금도 내겐 공포로 남아있다.
자신이 찾은 구원의 길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런 강압적인 방식보다, 자신이 모범을 보임으로써 전도를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남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사람들이 대부분 기독교인으로 밝혀진다면, 굳이 사람 많은 곳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고, 기차역 앞에서 떨면서 인사를 할 필요도 없을텐데. 궁금한 거 한가지 더. 날이 풀리는 4월이 되면 그 아저씨는 뭘 입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