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월 28일(월)
마신 양: 막걸리---> 비싼 술로 마무리.
안좋았던 점: 아침에 눈이 안떠져서 테니스를 못감. 좀 심하게 마셨던 것 같다.

자기 하고픈대로 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별로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는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대로 사는 삶에 조금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직장에서도 내 시간을 낼 수 있고, 처자식이 없으니 그 이후의 시간도 내 자유다. 휴일날 집에서 하루종일 뒹굴든, 낮술을 마시고 뻗어 자든 내가 마음 먹기에 달렸다. 그렇긴 하지만 이따금씩 사는 게 내 의지대로 안될 때가 있음을 느낀다.

어제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민아, 오늘 회 떠놓을 테니까 빨리 와"
다섯시쯤 학교에서 빠져나와 기차역으로 가는데, 전화가 온다.
"민아, 오늘 한잔 어때?"
집에 가서 회를 먹는 것도 좋지만, 2월의 마지막을 술과 더불어 불사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 그러자고 했다. 여느 때처럼 난 열심히 수다떨고 더 열심히 마셨다. 문제는 어제가 아니라 오늘이었다.

오늘 아침, 겨우 눈을 뜬 나는 가슴벅찬 스케줄을 짰다.
12시까지: 독서
12-2시: 글쓰기
2시-4시: 농구 보면서 러닝머신
4시 이후: 독서

특히 중요했던 건 농구. 농구광인 나에게 오늘 벌어지는 경기는 놓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정도 빅게임이라면 한시간 동안 10킬로는 달릴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며 가슴이 부풀었다. 그런데 누나가 애들을 데리고 점심 때 온단다. 누나가 오면 팬티만 입고 뛰는 게 불가능하고, 애랑 놀아줘야 할 것 아닌가. 난 엄마한테 '죽어버리겠다'고 협박, 누나를 못오게 만들었다. 조금 있다가 여동생이 전화를 했다. 온단다. 내 협박에 못이겨 엄마는 외출을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애들을 많이 낳아 놓으니 휴일만 되면 교대로 융단폭격이다. 오늘 같은 날 어디 야외로 놀러 갈 일이지 왜 우리 집에 오는 걸까? 점심 한끼 해결하고 좀 쉬다 가려는 속셈인데, 거듭 말하지만 엄마가 팔이 부러져 오른팔밖에 못쓰는 상황이 아닌가.

2시쯤, 난 TV를 보면서 러닝머신을 했다. 3킬로쯤 달렸을 때 엄마가 다가왔다.
"어쩌냐. 여동생이 이 근처까지 왔다고, 들른단다"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동생은 매제, 애 둘과 함께 들이닥쳤다. 러닝머신을 포기하고 샤워를 하고 나오니까 엄마는 부엌에서 "왜 집에 있으면서 나간다고 거짓말을 했냐"는 여동생의 추궁을 받으면서 로스고기를 자르고 계셨고, 매제는 TV를, 애 둘은 벤지를 괴롭히고 있었다. 3.1절을 애랑 놀아주며 보내기가 정말 싫었던 나는 약속이 있다고 집을 나왔고, 지금 PC방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좋아하는 농구 경기도 못보고, 운동도 못하고. 코가 비뚤어지게 술을 마시고 싶지만, 그래봤자 내 손해일 뿐이라는 생각에 참고 있는 중이다. 왜 삶은 내 마음대로 안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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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3-01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슬프고 처연한 글 정말 오랜만에 읽는 것 같아요.
흑흑 마태우스님, 지금 PC방인가요?
저도 마음가는 대로 하자면 어두운 극장 객석에 혼자 푹 파묻혀
영화를 보고 있어야 합니다.

마태우스 2005-03-01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흑흑.. 제 슬픔을 알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곳 피씨방에는 저같이 가출한 사람들이 꽤 있는 듯하네요. 사실 극장 생각도 했는데요, 오늘 휴일이라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더이다. 사람 많을 때 혼자 영화보면 좀 처연해 보이잖아요. 밥은 피씨방 근처의 분식집에서 카레덮밥으로 떼웠답니다.

마태우스 2005-03-01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누나 아들한테 전화가 왔는데요, 우리집에 왔는데 어디냡니다. 여동생이 누나한테 전화해서 누나네까지 부른 모양... 집나오기 정말 잘했단 생각이 듭니다. 저 오늘 애볼 기분이 아니거든요.

파란여우 2005-03-01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마음이...아파요....가까운데 사시면 같이 묵찍빠라도 하면서 노는 건데....흑

니르바나 2005-03-01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착한 매제를 생각해서 마태우스님 참으세요.
일요일은 참으세요가 아니고 공휴일은 참으세요가 되었군요.

부리 2005-03-01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 마태야. 니가 참아라!

부리 2005-03-01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저 묵찌빠 잘해요^^
니르바나님/그러겠습니다. 님을 봐서 참지요^^

로드무비 2005-03-01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어디서 방황을 하고 계신지...흑.

마태우스 2005-03-01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 불러서 술마시려다, 어머님이 속상해하실 것 같고, 벤지도 많이 힘들 것 같고, 저도 배가 고프고 해서 집에 가려구요 지금. 근데 이 피씨방 너무 잘되요.

울보 2005-03-01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이 놀아주세요..
부리님의 위로도 안되나요.
날은 점점 추워지는데 아직도 방황을 하시나요..
이젠 컴백홈하시지요.....

마태우스 2005-03-01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께요. 이제 그만 글쓰고 집에 가렵니다. 친구가 술마시자고 해서 지금 이리로 오고 있다는데, 오지 말라고 전화를 해도 안받는군요. 그래도 갈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