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1월 6일(목)
마신 양: 소주, 겁나게 많이
작년 말, 학교 복도에서 선배를 만났다. 농담으로 “제가 여기온지 벌써 6년이 되었는데 술 한잔 안사주시고 너무하십니다” 그 선배는 정말 미안해 하면서, 아예 지금 날을 잡잔다. 뭐 그렇게까지... 하지만 선배는 수첩의 1월 6일에 표시를 해버렸다. 그래서 어제 마셨다. 6년치를.
사실 나는 안마셨으면 했다. 술을 며칠 안마시다보니 지금의 페이스를 계속 유지하고픈 마음이 생겨 버려서. 작년에 한 약속이니 까먹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첩에 적었지만, 올해는 새 수첩으로 바꿨지 않았을까. 전날까지 연락이 없어 취소된 줄 알고 좋아했는데, 당일날 낮에 전화가 온다.
“오늘 약속 잊지 않았지?”
그래서 난 한시간 40분간 전철을 탄 끝에 분당에 갔고, 그 선배와 동료선생, 나중에 나온 내 초등학교 동창이자 선배의 부인과 즐겁게 술을 마셨다. 생각해보니 마시기 잘한 것 같다. 그 선배는 다음달에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하니, 어제가 아니었으면 술마실 기회가 없을 뻔했다.
언젠가 약속이 있어 홍대앞을 지나다 보니, 사람들 수십명이 진을 치고 있었다. 무슨 콘서트라도 하나 싶었지만, 알고보니 그들은 불닭을 먹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중. 문에 붙어 있는 종이를 보니 예약된 팀은 20팀이 훨씬 넘었다. 그 뒤 불닭집이 우후죽순으로 생겼지만 사람은 여전히 많았고, 난 한번도 그곳에 들어가본 적이 없다. 불닭을 먹었다, 는 친구를 난 그저 부럽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다 어제 드디어 불닭집에 갔다. 분당 수내역 부근의 불닭집에는 마침 테이블 하나가 비어 있었고, 우리는 ‘우리처럼 나이 많은 사람이 없겠군’이란 덕담을 주고받으며 테이블에 앉았다. 뭘 시켜야 할지 몰라서 불닭과 불오징어, 그리고 맥주 2천cc를 시켰다.
“이렇게 시키면 되나요?”
종업원의 말이다. “매우실테니 누룽지도 같이 시키는 게 좋아요”
정말 그랬다. 불닭은 진짜로 매웠고, 매운 것을 좋아하는 나도 입안이 얼얼해 먹는 게 힘들 정도였다. 맥주를 마시면서, 그리고 누룽지를 떠먹으며 우린 불닭을 먹었다. 불닭이 갑자기 뜨는 이유가 뭘까? 선배의 말이다. “원래 경제불황에는 자극적이고 매운 음식이 유행을 하지”
글쎄다. 우리가 정말 어려웠던 외환위기 때 매운 게 유행했는지 난 기억이 없다. 그보다는 장사가 잘되니 너도나도 불닭집을 차리는 거라는 게 사실에 가깝지 않을까? 대부분의 매출이 여름에 이루어지던 닭 시장의 판도를 바꾼 찜닭집 <봉추>, 한때는 불닭집이 그랬던 것처럼 바깥에 사람들을 길게 세워놓곤 했었지만, 지금은 그때만큼은 인기가 없고, 우후죽순으로 난립했던 찜닭집도 어느덧 사라졌다. 불닭도 2-3년 후에는 비슷한 운명에 처하지 않을까. 좌우지간 어제의 매운 느낌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 같은데, 맵긴 정말 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