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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평점 :
출판사 일로 거기 사람들과 어울린 적이 있다. 마침 그 출판사서 책을 출간했던 선배 의사도 와 있었는데, 그는 자기 책이 내용은 훌륭한데 출판사에서 제목을 잘 못붙여서, 그리고 마케팅이 엉망이라 안팔린 거라고 불평을 했다. 마케팅이야 그렇다쳐도, 이상한 제목이 붙는 동안 자신은 뭘 했는지 이해가 안갔다. 더 이해가 안가는 건 그의 다음 말이었다.
“난 지하철 타는 사람들 보면 이해가 안가. 자기 차가 없으면 택시라도 탈 일이지 왜 붐비는 지하철을 타?”
나이만 많이 먹었지, 말하는 건 영락없이 부잣집 막내아들이다. 어떻게 그런 말을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할 수 있담?
그 비슷한 소리를 어떤 여자애한테서도 들었다. <아침마당>에 출연했을 때, 같이 나온 출연자의 말이다.
“전 지하철 타고 졸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한심해요. 그 나이 쯤 되면 자기 차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전세 사는 사람들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빌딩이 여러 채 있어 그거 관리하면서 유유자적하는 남편감을 원한다는 그녀는 “내집을 마련하고 한칸씩 늘려가는 것도 행복이 아니냐”는 시청자의 항의전화에 이렇게 대답했다.
“집이 여러 채 있더라도 한 채 한 채 늘려나가는 것도 행복일 수 있다”
차가 편하고 좋은 거라는 걸 모르는 게 아니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서 하루를 산다. 높은 분들은 이해를 못하겠지만, 남에게 이해받고자 삶을 사는 건 아니다. 산동네에 사는 사람들보고 “왜 이런 데 살아요?”라고 묻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모레의 여자>의 주인공은 학교 선생인데, 그는 하루라도 모래를 치우지 않으면 모래로 덮혀 버리는 동네에 갇히게 된다. 그는 모래를 치우며 척박한 삶을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들 역시 선택할 만한 다른 대안이 없어서 그렇게 살고 있으리라. 난 이 책을 미녀 여친에게 선물받았는데, 고강한 내공을 가진 에피메테우스님이 “올해 읽은 최고의 책”이라고 했던 게 기억에 남아 경건한 마음으로 읽었다. 재미도 있고 나름의 심오함도 갖춘 책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명작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책 역시 내게 약간의 현기증을 남겨 주었는데, 문학적 수준이란 건 왜 이렇게 향상되지 않는 것인지, 나도 명작을 읽고 “유레카!”를 외칠 그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