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도 칠 줄 아는 대통령에겐 성질이 너무 더러워 포기하다시피 한 딸이 있다. 그녀의 담임으로 부임한 최지우는 그녀를 바로잡아보려고 애쓰는데, 최지우의 성깔 또한 만만치 않아 대통령 딸의 잘못을 빌미로 대통령에게 숙제를 내주기도 한다. 둘은 사랑에 빠지고, 결국 잘된다.

이건 영화를 굳이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얘기, 그런 뻔한 영화이기에 극장에 갈 마음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엊그제 케이블 TV에서 밤늦게 하기에 조금 보고 자려다가 계속 봤다. 그렇다고 끝까지 본 건 아니고 한 3분의 2 정도는 본 것 같다. 영화는 진짜 뻔한 내용이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목하 열애중이라 그런지 이 영화도 재미있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내 나이 비슷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고, 그 중에서 연애 중인 사람도 한둘이 아님에도 영화가 흥행에 실패한 이유가 뭘까?
첫 번째 이유로 영화가 너무나도 뻔하다는 거다. 스토리가 진부하면 사건이라도 참신해야 하건만, 영화에 나오는 사건이란 것도 우리가 익히 봐오던 거다. 최지우가 탄 버스에 대통령이 올라타고, 술집에서 경호원을 피해 둘이 달아나는 장면 등은 50년 전에 개봉했던 <로마의 휴일>에서도 나오는 대목이 아닌가. <슈렉2>나 <인크레더블>에 나오는 장면들만큼의 기발함을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그 반의 반 정도라도 머리를 써야 하는 게 아닐까. 대안 없는 비판은 공허하니, 내가 몇가지 사건을 제시하겠다. 최지우가 밤길을 걷는데 깡패들이 나타난다. “어--- 좀 생겼는데?” 야비하게 내뱉는 깡패들 앞에서 최지우는 공포에 질린다. 이때 경호원과 함께 나타난 대통령, 어디서 났는지 피아노를 집어던진다. 피아노에 깔려 신음하는 깡패들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최지우는 대통령에게 폭삭 안긴다. 이름하여 <피아노 던지는 대통령>. 이거, 진부한가? 좋다. 다른 대안을 제시한다. 대통령을 사사건건 물고늘어지던 언론과 야당은 최지우와의 스캔들을 빌미로 대통령을 탄핵하고, 보수 집단의 브레인으로 부상한 헌재는 “대통령으로서 지켜야 할 품위 유지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탄핵을 가결시킨다. 졸지에 할 일이 없어진 대통령은 주위의 권유로 피아노 장사가 된다. 일명 <피아노 파는 대통령>. 잠깐만 생각해도 이렇게 좋은 생각이 나는데, 한 사흘만 생각한다면 뭔가 대단한 게 나올 것 같지 않는가? 이 영화의 스탭들은 도대체 몇초나 생각을 하고 시나리오를 썼을까.
둘째. 시대가 달라졌다.
이 영화가 권위주의적 시대, 그러니까 70, 80년대에 만들어진 거라면 조금은 성공했을지 모른다. 조금만 잘못 보이면 쥐어 터지고, 심지어 죽기까지 하던 시대에 살던 우리들에게 영화 속의 안성기처럼 인자한 대통령을 갖는 건 꿈이었다. 그때라면 이 영화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이 어디 그런가. 현 대통령에게서 과거 대통령들의 서슬프름을 찾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대통령에게 “등신”이라고 하는 국회의원이 있는 판이고, 국민들의 절대 다수도 대통령을 안주삼아 열심히 씹어대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 이런 영화가 히트할 턱이 없다. 한가지 더 지적을 하자면, 인자하게 그려지긴 했어도, 대통령이 자신의 사랑을 위해 사적으로 공권력을 동원하는 대목이나 교장이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벌벌 기는 장면 등은 좀 구시대적이다. 시대는 변했지만 감독의 정서는 여전히 70, 80년대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결론: 다시 말하지만 돈이 없으면 머리라도 써야 한다. 이렇게 뻔하디 뻔한 스토리에 안주해서야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
사족1: 난 최지우가 이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드라마에 나올 때마다 왜 하필 쟤일까 탄식하곤 했는데, 이 영화에서는 참 예뻤다.
사족2: 내 휴대폰 벨소리는 닭울음 소리다. “꼬끼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최지우 휴대폰의 벨소리가 바로 그거다. 영화 속의 휴대폰이 울렸을 때, 난 내 전화가 온 줄 알았다.